통일 신라 수도였던 경주는 고려와 조선시대조선 시대까지도 지방 관리층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고려 왕조에서 개경을 수도로 삼으면서, 과거에 중요했던 도시들을 준수도로 우대했는데 동경이라 불린 경주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서경(평양), 남경(한양)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고려 충렬왕 7년(1281)부터 1910년까지 630년간 경북 경주부에 부임한 관리 명단이 고스란히 기록‧보존돼 왔다.
경주부 부임한 관리들 명단·행적 등 담아
지역사 및 당대 인사·정치 엿볼 수 있어
경상도영주제명기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이런 명단을 일컬어 ‘선생안(先生案)’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조선시대 각 기관이 전임 관원의 성명·관직명·출생 시기·본관 등을 기록한 책이다. ‘선생’이란 이를 작성한 현임 관원보다 전임자라는 의미다. 이 같은 선생안은 여러 지역에서 내려오고 있지만 ‘경주부사선생안’이 가장 오래됐고 조선왕조 의궤(儀軌)에 버금가는 장정(裝幀)과 크기 등 보존상태도 뛰어나다. 경주부 관리들의 향토 자부심과 역사 전승 노력이 읽히는 대목이다.
문화재청은 28일 경주부사선생안과 또 다른 관리 명단인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불교 경전 '재조본 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역대 관리들의 명단인 ‘선생안’이 보물로서 지정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왜구를 비롯한 외적 침략이 잦았던 경주부에선 임진왜란(1592~1598) 전부터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황 연구사가 “당시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읽힌다”며 전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날짜는 음력).
1510년 4월 4일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상황에 백성들이 성에서 돌을 마구 던졌다. 왜적들은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방패로 막으려 했지만 조선인들이 큰 돌을 마구 던지자 대패했다. 이때 왜적의 목을 벤 것은 330여급이다.
같은 해 6월 25일
일본이 너무 심하게 밀어붙여 조선이 패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경주부 관리와 백성들이 남은 병사를 거느리고 큰 깃발을 산 위에 꽂아 드날리며 나팔을 불면서 분위기를 휘몰아치니 왜군이 큰 군대가 오는 줄 알고 도망쳤다. 왜군을 많이 포획했다.
경주부사선생안에는 이 같은 기록과 함께 참여했던 호장들, 절도사 명단이 기록돼 있다. 황 연구사는 “전임자 행적이나 명단을 기록함으로써 이후 후임자들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유물 3건에 대해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