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천도교(동학) 재단 학교를 다녔다. '시천주(侍天主)…'로 시작하는 주문을 외우면서 동학군 활약상을 배웠다. 선생님은 "우금치 전투 당시 동학군은 주문만 외우면 총알이 비켜 간다고 생각했다. 1만~2만명이 죽창 들고 진격하다가 1분당 600발 나가는 일본군 기관총에 몰살했다"고 했다. "항일, 반(反)봉건도 실력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우금치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을 세웠다. 그 시절에도 동학은 '반란'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 부친이 동학 접주를 지냈다고 하고 전두환 대통령도 '전 장군'인 전봉준을 좋아했다고 한다. 동학혁명만큼 명예로운 대접을 받는 사건도 드물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난데없이 동학혁명 참가자와 후손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며 특별법을 만들었다. 훼손된 명예가 없는데 무슨 명예 회복인지 의아했다. 정치 목적으로 허공에 주먹질하는 듯했다. '동학 심의위원회'는 3600여 참여자와 1만여 후손을 찾아 등록했다. 고손자까지 후손으로 인정했다. 선대 증언과 족보 등으로 심사했다고 하지만 증·고조부 행적을 정확하게 아는 후손이 얼마나 있을까. 있기는 있었다. 학정으로 동학혁명을 불러일으킨 탐관오리의 증손녀가 노무현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역사 코미디'는 한술 더 뜬다. 광주에선 100년을 불러온 명문고 교가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권력이 된 전교조가 작사·작곡가에게 '친일' 딱지를 붙이면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어도 '적폐'라는 것이다. 제주도에선 학교 21곳이 교목으로 지정한 향나무가 모조리 잘려 나갈 판이다. 근거도 불분명한 '식민 잔재' 꼬리표가 붙은 탓이다.
▶그제 전북 정읍시가 동학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월 10만원씩 수당을 지급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정읍이 동학혁명 중심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됐고 그 이익을 유족과 나누는 차원"이라고 했다. 유족으로 등록된 93명에게 연간
▶이 뉴스에 "임진왜란 승전지로 유명한 명량이나 한산도 인근 지자체도 유족을 찾아 수당을 줘야 한다" "병자호란 때 능욕당한 '환향녀' 유족은 언제 신청받느냐"는 댓글이 달렸다. "고려 때 '망이·망소이 난'도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도 있다. 웃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