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없는 김천 산부인과 지난달 16일 경북 김천제일병원 신생아실에는 아기 침대 2개만이 놓여 있었다. 지난해까지 13개의 침대가 있던 곳이다. 이 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2016년 451명에서 지난해 249명으로 급감했다. 분만 건수가 줄어 적자 경영이 지속되자 병원은 올해 안에 분만실을 폐쇄할 계획이다. 김천=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16일 경북 김천제일병원 2층 산부인과 병동. 지난해까지 아기 침대 13개로 꽉 찼던 신생아실엔 침대 2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날까지 4월 들어 태어난 신생아는 6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매달 약 20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올 들어서는 신생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지난해 말 김천시에 유일하게 있던 이 병원의 산후조리원이 문을 닫으면서 산모들이 인근의 대구나 서울로 분만 병원을 옮겼기 때문이다. 김천에서는 마음 편히 아이를 낳고 몸조리할 시설이 사라지면서 출산을 앞둔 여성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임신 24주 차인 박모 씨(37)는 “출산이 임박한 32주 차부터는 친정이 있는 전남 순천이나 서울의 분만 병원에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3월까지 김천시에 출생신고된 신생아 255명 중 228명(89.4%)이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 1025명 중 776명(75.7%)이 원정 출산한 지난해보다 산모들의 부담이 더 커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0.98명까지 떨어지면서 지방의 출산 인프라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신생아가 한 명이라도 태어난 병원은 2013년 706곳에서 지난해 569곳으로 5년 새 19.4% 감소했다. 출산율이 떨어지자 운영이 힘들어진 산부인과는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고, 아이 낳을 곳이 부족한 여성들은 출산을 망설이거나 장거리 원정 출산까지 감수하는 것이다.
이런 원정 출산 비율은 전남과 경북이 가장 높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 지역 신생아 1만1200명 중 3981명(35.5%)이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 경북은 1만6100명 중 5171명(32.1%)이 타지에서 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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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분만 시설 이용이 어려운 지역을 ‘분만취약지’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분만취약지는 1시간 내 분만실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전국에서 시군 33곳이 그런 형편이다. 상주시, 영천시 등 기초지자체 11곳이 포함된 경북이 가장 많다. 지원 사업에 선정된 산부인과에는 시설비 10억 원과 6개월 기준 운영비 2억5000만 원이 지원된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이렇게 약 380억 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지원 대상 시군에서 태어난 신생아 5478명 중 해당 병원에서 분만한 경우는 1282명(23.4%)에 불과했다. 병원만 있을 뿐 산후조리원 등 다른 인프라가 없다 보니 가까운 병원이 있어도 외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만 수가 등 산부인과 운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병원급 산부인과의 자연분만 기준 건강보험 수가는 약 40만 원 정도다. 응급 수술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현행 수가 체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는 소규모 병의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의 출산 인프라를 단기간에 갖추기 힘들다면 원정 출산이 불가피한 산모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의원은 “타 지역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에게 출산 전 1∼2주가량 병원 주변에서 숙박할 수 있는 바우처 등을 지급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천=박성민 min@donga.com / 조건희 기자
김천=박성민 min@donga.com / 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