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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이재광・이재익・우성종

화이트보스 2020. 1. 21. 17:34



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이재광・이재익・우성종

“너 아주, 제대로 밥맛이구나?!”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엄격하게 선별한 품질 좋은 쌀을 맛있게 도정하고 보기 좋게 포장해 파는 청년들이 있다. 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이재광·이재익 형제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이들은 농사에서도 ‘청년스러움’을 강조한다. 농촌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청색의 작업복을 맞춰 입고, 청결을 외친다. 쌀 포장도 ‘혼코노미’에 맞춰 소포장으로 바꿨다. 뿐만 아니라 질 좋은 벼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드론 농법으로 생산성을 높였다. 논의 수위 조절에 센서를 활용하는 스마트 농법도 연구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청년 농부들이 농촌의 풍경을 바꿔가고 있다.
왼쪽부터 우성종, 이재익, 이재광. © 서경리
맥주 캔에 담은 750g짜리 쌀

맥주 캔에 담긴 쌀을 본 적 있는가? 1kg, 4kg 10kg 단위의 쌀 포장은 본 적 있어도 750g짜리 맥주 캔에 담긴 쌀을 본 이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캠핑족’과 ‘나홀로족’을 위해 4~5인용으로 소포장된 ‘캔 쌀’, 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청년 농부가 판매하는 ‘촉촉한 쌀’이다.

포장만 특이한 게 아니다. 쌀 중에서도 맛 좋기로 유명한 ‘가와지 1호’ 쌀만 쓴다. 일산의 한강 하류, 비옥한 평야에서 자란 우리나라 전통 햅쌀이다.


“일산신도시를 개발할 때 땅속 깊은 곳에서 볍씨가 발견됐다고 해요. 전문가가 감정한 결과 약 5000년 전의 가와지 볍씨로 추정했고요. 고양시에서 발굴된 가와지 볍씨는 한반도의 가와지 벼농사가 고양시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입니다.”(이재광)

2002년부터 경기도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가와지 쌀은 멥쌀보다 찰지고 쫄깃한 밥맛을 자랑한다. 밥을 지었을 때 하얗게 윤기가 흐르고, 단맛이 나며, 밥 향이 좋고 식감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일산쌀 농업회사법인은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이재광 대표는 “같은 품종의 쌀이라도 지리적인 환경과 토양의 상태, 벼의 취급 방법, 도정 방식 및 가공법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질 좋은 쌀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더했다.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논에 우렁이를 풀어 벼를 재배하고, 게르마늄 비료를 써서 토양의 미생물 증식을 돕고 유해 세균 증식을 억제한다. 또 엄격하게 위생법을 지키고 저온 순환건조가 가능한 최신식 도정 시설로 쌀을 가공해 최상의 맛을 내려 노력한다.

서른셋의 이재광 대표는 젊은 나이지만 제법 땀 좀 빼본 10년 차 농부다. 2009년 건축학도로 사회에 나온 그는 미래를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할아버지가 6·25 전쟁 때 북에서 피란 내려와서 터를 잡은 곳이 이곳 일산이에요. 80년대에 아버지가 물려받아 기계화 영농을 시작했고, 제가 2009년부터 그 뒤를 이어받았죠. 부모님을 돕다 보니 농촌에 젊은 일손이 부족한 현실이 보였어요. 다른 산업보다 청년들에게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이재광)


‘한국식 팝콘’ 현미칩 개발

한국 토종 볍씨 종자인 가와지 쌀로 만든 현미칩. 기름에 튀기지 않고 구워 맛이 담백하다.
이재광 대표가 농사일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미 집안의 논 절반 이상이 신도시 개발로 팔린 상태였다. 일산에 신도시가 늘어나며 논밭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났다. 한때 20만 평(661,157㎡) 넘는 논에서 벼를 재배했지만, 농부의 길을 결심한 그의 손에 들어온 땅은 7000평(23,140㎡)이 전부였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조바심에 부지런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업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고, 농촌진흥청 같은 농업 관련 기관에서 기술과 농사의 기초도 익혔다. 그의 노력을 인정한 아버지가 일찌감치 수익 배분을 통해 그의 입지를 다져주자, 이 대표는 탄력을 받아 주도적으로 도정과 판매를 맡고, 기존의 유통 방식인 정부 수매 방식에서 직접 거래로 전환을 이끌어냈다.

동생 이재익 씨가 농업에 뛰어든 건 한참 뒤다. 요리사를 꿈꾸며 외식 조리를 공부한 그는 음식 맛을 결정할 신선한 재료를 찾던 중 자연스럽게 형을 따라 2014년 농업에 발을 들였다.

“쌀은 잘 팔렸지만, 농사 규모가 작다 보니 생산량이 적어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았어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상품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이재광)

모내기 작업이 한창인 일산쌀 청년 농부들.
형제는 본격적으로 가공식품 사업에 촉을 세웠다. 누룽지, 조청, 유과, 막걸리 등 쌀로 만들 수 있는 갖가지 가공품을 찾아다니던 중 현미칩을 맛보고 둘은 ‘유레카!’를 외쳤다. 얇게 구워 바삭하고 담백한 현미칩은 방부제와 첨가물, 색소가 들어가지 않아 간식용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2016년 말부터 시제품이 나온 2018년까지 이어졌다.

“염도 0.1% 차이로 싱겁거나 짠맛이 결정돼요. 샘플링도 여러 차례 했죠. 한 번 할 때마다 쌀이 5~10kg 드니까 샘플 양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주워 먹었는데, 나중에는 배가 불러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니까요. 현미칩은 질리지 않고 계속 손이 가는 한국식 팝콘 같은 느낌이에요.”(이재익)

처음에는 포장지가 준비 안 돼 뻥튀기 비닐에 담아 주변에 시식을 돌렸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형제는 포장지를 개선하고 다양한 판로를 열어 가공식품 사업에 더욱 힘을 싣기 시작했다.


마켓컬리, 네이버 스마트팜, 아이디어스…

2018년 차세대 농어업경영인 대통령상을 받은 일산쌀 농업회사법인 이재광 대표(오른쪽 두 번째).
가공식품을 만들면서 매해 벼농사도 지어야 하는 형제에게는 함께 땀 흘릴 청년 농부들이 필요했다. 스물아홉 살인 우성종 씨는 이들 사업이 한창인 2019년 첫발을 들였다. 그가 합류하면서 일산쌀은 마켓컬리와 네이버 스마트팜, 아이디어스 같은 젊은 층을 겨냥한 다양한 판로로 확장 중이다.

“일산쌀 농업회사법인은 농업 분야의 스타트업과 다름없어요. 미래에는 농업 관련 창업이 뜰 거라고 봤죠. 좋은 기회에 함께 회사를 키워보자 해서 의기투합했어요. 마케팅 부서를 담당하고 있지만, 농번기에는 함께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가공에 힘을 보탭니다.”(우성종)

이재광 대표는 일산쌀 농업회사법인을 청년 농부를 위한 인큐베이팅 센터로 만드는 게 목표다. 농업을 꿈꾸거나 알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가까이에서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더 많은 청년이 농촌으로 향하면 농업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제 인생 신조는 ‘일단 해보자’입니다. 재거나 머뭇거림 없이 생각한 대로 시도하고 실천하려 합니다. AI를 접목한 스마트팜이 늘면서 일손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분명 줄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상품을 어떻게 판매하느냐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같은 품종의 쌀도 포장과 판매 루트에 따라 판매 추이가 달라지니까요. 청년 농부들이 할 몫이죠.”(이재광)

가을 들녘에 선 청년 농부들.
동생 이재익 씨는 ‘정직’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농부는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은 기본을 지킨다는 약속이에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죠. 젊은 농업인의 상품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한두 번 사주겠지만, 사업으로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쌀의 품질과 맛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해요. 정직하게 농사짓고 정직하게 가공해 팔아야 우리를 믿고 사주는 고객이 생깁니다.”(이재익)

“납득 가능한 제품을 만들자”. 이들이 내건 구호다. 맛과 질의 평준화뿐만 아니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농업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 청년 농부들의 과제다. 이들은 이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지금도 현장에서 애쓰고 있다.

  •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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