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16 22:12 | 수정 2020.04.16 23:31
두어 해 전 여름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지역을 다닐 때 여요(餘姚) 땅의 왕양명(王陽明·1472~ 1529) 선생 옛집(故居)을 방문했다. 유교를 새롭게 정비한 양명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마음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6세 때 유배지 귀주(貴州) 용장(龍場)에서 정진 끝에 심법(心法)을 깨쳤다고 한다. 임종 때 "이 마음이 환히 밝은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此心光明 亦復何言)"라는 한마디만 남길 정도로 그 경지가 만만찮다. 이런 성향인지라 절집과 인연도 적지 않았다. 50세 때 장쑤성 진강(鎭江) 금산사(金山寺)에 들렀다. 사찰 이름이 곧 당신의 법명이 된 금산(金山)대사의 사리가 봉안된 비밀의 방을 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50년 동안 개방한 적이 없다는 이 방의 벽에 적혀 있는 글 때문이다.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開門猶是閉門人)."
세상은 넓고 이야깃거리도 많다. 중국 명나라 때 일이지만 한반도에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해온다. 조선 후기 조엄(趙曮·1719~1777) 선생은 동래부사와 경상감사를 역임했다. 과도한 세금과 과잉 행정은 스스로 경계하였고 잘못된 관행의 시정을 위해 무던히 애썼다. 늘 백성 편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1763년과 1764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고구마 종자를 가져왔다. 보관법과 재배법까지 그의 문집인 '해사일기(海槎日記)'에 상세하게 전한다. 고구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인지라 흉년이 들 때마다 식량을 대신하는 먹거리로 환영받았다. 그 공로는 뒷날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묘소 입구에 건립된 동상의 모티브가 된다. 줄기와 잎을 드리운 고구마를 손에 쥔 모습이다. 수많은 관리가 수십 차례 통신사로 오가면서 수시로 고구마 간식을 대접받고도 갖고 올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비심이 남달랐던 당신 몫이 되었다. 동래부사 시절 금정산 범어사(梵魚寺)를 방문했다. 40년 전에 열반했다는 낭백(浪伯) 선사가 머물던 방문 앞에서 유언에 따라 봉인을 풀었다. 벽에 적힌 한 줄 문장을 마주하고는 전율했다. "이 문을 닫은 자가 이 문을 열 것이다(開門者是閉門人)." 선사는 기찰(譏察·현재 부산 금정구 부곡3동) 마을 큰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물과 음식, 잠자리 그리고 옷가지와 짚신까지 제공하는 선행을 평생토록 베풀었다.
세상은 넓고 이야깃거리도 많다. 중국 명나라 때 일이지만 한반도에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해온다. 조선 후기 조엄(趙曮·1719~1777) 선생은 동래부사와 경상감사를 역임했다. 과도한 세금과 과잉 행정은 스스로 경계하였고 잘못된 관행의 시정을 위해 무던히 애썼다. 늘 백성 편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1763년과 1764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고구마 종자를 가져왔다. 보관법과 재배법까지 그의 문집인 '해사일기(海槎日記)'에 상세하게 전한다. 고구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인지라 흉년이 들 때마다 식량을 대신하는 먹거리로 환영받았다. 그 공로는 뒷날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묘소 입구에 건립된 동상의 모티브가 된다. 줄기와 잎을 드리운 고구마를 손에 쥔 모습이다. 수많은 관리가 수십 차례 통신사로 오가면서 수시로 고구마 간식을 대접받고도 갖고 올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비심이 남달랐던 당신 몫이 되었다. 동래부사 시절 금정산 범어사(梵魚寺)를 방문했다. 40년 전에 열반했다는 낭백(浪伯) 선사가 머물던 방문 앞에서 유언에 따라 봉인을 풀었다. 벽에 적힌 한 줄 문장을 마주하고는 전율했다. "이 문을 닫은 자가 이 문을 열 것이다(開門者是閉門人)." 선사는 기찰(譏察·현재 부산 금정구 부곡3동) 마을 큰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물과 음식, 잠자리 그리고 옷가지와 짚신까지 제공하는 선행을 평생토록 베풀었다.
동틀 무렵 KTX역까지 마중 나온 30년 절친(절친구)과 함께 기찰삼거리를 찾아갔다. 현재 '금정농협기찰지점'에서나 그 이름을 만날 수 있는, 없어지다시피한 지명인지라 토박이만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반이 챙겨 온 세세한 구전 이야기는 물론 살뜰한 기록자료
덕분에 제대로 된 답사가 되었다. 곧바로 범어사로 갔다. 숲속의 비석거리에는 아침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서 일렬로 서 있는 다섯 개의 공덕비를 비춘다. 가운데 있는 약간 큰 비석이 조엄 공덕비다. 낭백 부도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쨌거나 '닫은 자가 열었다'는 그 문은 두 어른을 이어주는 환생의 비밀통로였다. 가장 궁금한 그 자리는 어디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