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문을 닫은 자가 다시 열 것이다

화이트보스 2020. 4. 17. 10:37


문을 닫은 자가 다시 열 것이다

조선일보
  •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0.04.16 22:12 | 수정 2020.04.16 23:31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두어 해 전 여름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지역을 다닐 때 여요(餘姚) 땅의 왕양명(王陽明·1472~ 1529) 선생 옛집(故居)을 방문했다. 유교를 새롭게 정비한 양명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마음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6세 때 유배지 귀주(貴州) 용장(龍場)에서 정진 끝에 심법(心法)을 깨쳤다고 한다. 임종 때 "이 마음이 환히 밝은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此心光明 亦復何言)"라는 한마디만 남길 정도로 그 경지가 만만찮다. 이런 성향인지라 절집과 인연도 적지 않았다. 50세 때 장쑤성 진강(鎭江) 금산사(金山寺)에 들렀다. 사찰 이름이 곧 당신의 법명이 된 금산(金山)대사의 사리가 봉안된 비밀의 방을 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50년 동안 개방한 적이 없다는 이 방의 벽에 적혀 있는 글 때문이다.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開門猶是閉門人)."

세상은 넓고 이야깃거리도 많다. 중국 명나라 때 일이지만 한반도에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해온다. 조선 후기 조엄(趙曮·1719~1777) 선생은 동래부사와 경상감사를 역임했다. 과도한 세금과 과잉 행정은 스스로 경계하였고 잘못된 관행의 시정을 위해 무던히 애썼다. 늘 백성 편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1763년과 1764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고구마 종자를 가져왔다. 보관법과 재배법까지 그의 문집인 '해사일기(海槎日記)'에 상세하게 전한다. 고구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인지라 흉년이 들 때마다 식량을 대신하는 먹거리로 환영받았다. 그 공로는 뒷날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묘소 입구에 건립된 동상의 모티브가 된다. 줄기와 잎을 드리운 고구마를 손에 쥔 모습이다. 수많은 관리가 수십 차례 통신사로 오가면서 수시로 고구마 간식을 대접받고도 갖고 올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비심이 남달랐던 당신 몫이 되었다. 동래부사 시절 금정산 범어사(梵魚寺)를 방문했다. 40년 전에 열반했다는 낭백(浪伯) 선사가 머물던 방문 앞에서 유언에 따라 봉인을 풀었다. 벽에 적힌 한 줄 문장을 마주하고는 전율했다. "이 문을 닫은 자가 이 문을 열 것이다(開門者是閉門人)." 선사는 기찰(譏察·현재 부산 금정구 부곡3동) 마을 큰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물과 음식, 잠자리 그리고 옷가지와 짚신까지 제공하는 선행을 평생토록 베풀었다.

[東語西話] 문을 닫은 자가 다시 열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동틀 무렵 KTX역까지 마중 나온 30년 절친(절친구)과 함께 기찰삼거리를 찾아갔다. 현재 '금정농협기찰지점'에서나 그 이름을 만날 수 있는, 없어지다시피한 지명인지라 토박이만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반이 챙겨 온 세세한 구전 이야기는 물론 살뜰한 기록자료 덕분에 제대로 된 답사가 되었다. 곧바로 범어사로 갔다. 숲속의 비석거리에는 아침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서 일렬로 서 있는 다섯 개의 공덕비를 비춘다. 가운데 있는 약간 큰 비석이 조엄 공덕비다. 낭백 부도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쨌거나 '닫은 자가 열었다'는 그 문은 두 어른을 이어주는 환생의 비밀통로였다. 가장 궁금한 그 자리는 어디쯤일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6/20200416042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