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궁 뒷동산 '부여 부소산성', 왕도 실체 밝힌다
박정규 입력 2020.04.22. 14:42
백제 왕실이 후원(後苑) 역할을 했던 '부여 부소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다음달 다시 이뤄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부여 부소산성을 비롯한 부여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적인 조사를 통해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서울=뉴시스] 박정규 기자 = 백제 왕실이 후원(後苑) 역할을 했던 '부여 부소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다음달 다시 이뤄진다. 이를 통해 백제왕도의 구조 등을 밝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화재청은 부여군, 백제고도문화재단과 함께 백제 사비기 왕궁의 배후 산성으로 알려진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호)의 성벽 구조와 내부 시설물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다음달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22일 밝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10-1번지 일원에 있는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으로 알려진 사비의 추정 왕궁지인 부여 관북리 유적의 북쪽 배후에 있는 산성이다. 부여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핵심 위치이면서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자 왕실의 후원 역할도 겸했던 곳이다.
부소산성은 1980년부터 2002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조사를 통해 백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산성의 구간별 축조 방법과 축조시기를 밝혀냈다.
백제시대에는 포곡식(산 정상부에서 계곡을 포용하고 내려온 능선부에 성벽을 축조하는 방식) 산성을 만들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테뫼식(산 정상부를 둘러서 쌓는 방식) 산성 2개, 조선시대에는 테뫼식 산성 1개로 점차 축소해 운용한 점이 파악됐다. 성벽 내부에서는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건물지·저장구덩이·우물지 등 다양한 성내 시설물도 확인됐다.
이번 부소산성 발굴조사는 이후 약 20여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조사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성과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성이 만나는 지점과 서문지로 추정되는 지점이 대상이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시기별 성벽 축조 양상의 차이, 서문지 주변 성벽 구조 등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예상이다. 또 부여지역의 역사적인 성격을 조망하면서 유적 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을 앞으로도 연차적으로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부여 부소산성을 비롯한 부여지역 핵심유적에 대한 단계적인 조사를 통해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k76@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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