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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대위의 성공 조건

화이트보스 2020. 5. 2. 11:16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 조건[여의도 25시/최우열]

최우열 정치부 차장 입력 2020-04-28 03:00수정 2020-04-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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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회의에서 김종인 비대위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최우열 정치부 차장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앞둔 미래통합당 안팎에서 갑자기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과거 뇌물수수 사건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가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때 구속된 뒤 확정판결을 받은 전력 탓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2012년 김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박근혜 비대위에서 일할 때도 정치권을 달군 적이 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청산론’을 띄운 김 전 위원장과 친이계(친이명박)계가 맞붙으면서다.

8년 만에 현실 정치로 ‘소환’된 김 전 위원장의 뇌물 사건, 이와 관련된 인적 쇄신 파동의 발생과 해결 과정은 총선 폭망의 충격을 딛고 1년 10개월 남은 대선을 준비해야 할 통합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1년 12월 김종인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이상돈 비대위원과 함께 “전직 당 대표 및 MB 정부 실세는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듬해 1월부터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들은 직전 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표와 합세해 ‘김종인 이상돈 사퇴론’으로 반격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임명한 권영세 사무총장은 사태가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걸 막기 위해 홍 전 대표를 만났다. “당을 나가라는 게 아니다”라며 달랬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권 총장에게 동화은행 사건을 꺼내들며 “너도 검사 출신인데 네가 자백받은 범죄자(김 전 위원장)한테 공천 달라고 심사받을 수 있겠나”라고 분노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친박근혜) 학살 공천’을 당했던 만큼 친이계를 내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몇 차례 당 회의에서 “쇄신 과정에서 단정적으로 누구는 쇄신 주체이고 누구는 대상이라고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MB 청산론에 힘을 실은 게 아니라 오히려 김종인 이상돈을 겨냥했다. 공천 심사가 시작되고 이재오 공천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김종인 위원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박근혜 위원장은 친이계 핵심인 이 의원의 공천을 확정했다. 여기에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도 자기 지역구에 공천을 받으면서 ‘김종인 저격’ 인사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박근혜 위원장이 김종인 위원의 MB 청산 이슈를 통제하지 못했다면, 최대 계파였던 친이계의 조직적인 반발로 총선, 대선 가도에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금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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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장면이 가능했을까. 지금의 평가와는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 당시만 해도 대선 주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비대위 안팎의 갈등을 통제했기에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당을 박차고 나간다는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을 수차례 붙잡기도 하며 결국 2012년 대선까지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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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통합당은 강력한 리더십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정치세력도 없는 ‘진공상태’다. 자연히 김종인 비대위가 보여줄 리더십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벌써부터 “비대위가 하는 걸 봐가며 뒤집으면 된다”(당내 인사들), “원치 않으면 굳이 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김 전 위원장)라고 하며 신경전도 시작됐다. 특히 2012년의 ‘MB 청산론’처럼 이번 총선에도 김 전 위원장은 ‘교육비 지원 공약’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 등의 민감한 이슈를 당내 인사들과 합의 없이 ‘단독 드리블’로 띄웠다. 기존의 메커니즘을 거부하는 ‘김종인 리더십’엔 균형추가 없으면 자칫 내부 분란의 ‘자폭탄’으로 터질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린다. 실제로 총선에서 김종인 당시 선대위원장은 소통보다는 ‘라떼는 말이야’형 리더십을 보여줬다.

우여곡절 끝에 통합당 전국위원회가 비대위를 추인하면 이제 제1야당은 김 전 위원장 손에 당의 쇄신과 2022년 대선의 ‘터 닦기’까지 맡기게 된다. 김 전 위원장이 리더십과 함께 통합당 구성원들과 어떤 소통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보수 폭망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가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