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원장, 원전 감사 맡았던 국장 교체하며 쓴소리]
총선때 나흘간 휴가냈던 崔원장, 복귀하자마자 전격 인사
그날 회의 열고 "정부 주요정책이라도 책임 물을땐 물어야"
주변선 "선거전에 감사 끝내려했던 崔, 외압 불만 표출한 것"
최재형 감사원장은 '4·15 총선' 전날(14일) 돌연 나흘간의 휴가를 떠났다. 헌법기관장이 총선일 휴가를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최 원장의 휴가 시점은 감사원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회에 올려 9일과 10일, 13일 세 차례 논의를 거치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보류 결정이 난 다음 날이었다. 이 때문에 감사원 안팎에서는 "감사원장이 총선을 의식해 감사 발표를 미루고 도피성 휴가를 갔다" "아니다. '원전 감사'에 개입하려는 외압에 대한 항의성 휴가다"는 말이 나돌았다.

최 원장의 이례적인 행보는 4월 18일 휴가에서 복귀하고 이틀 뒤(20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인사에서 그 배경과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최 원장은 '원전 감사'를 진행해온 이준재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산업금융감사국장으로 전보했다. 이어 유병호 심의실장을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령내 '원전 감사'의 마무리를 맡겼다. 이 국장은 감사원 선임 국장 자리로 옮겨 형식상 영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가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령난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데다, '원전 감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뤄진 인사여서 문책 성격이 있다고 감사원 안팎에서는 평가한다. 유병호 신임 공공기관감사국장은 감사원 내에서 대표적인 강골이자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지방행정감사1국장 재직 시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감사를 담당한 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주의 처분을 했다. 이에 박 시장이 재심의를 청구할 정도로 강력 반발했다. 이 때문에 감사원에서는 "최 원장이 원전 감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선수를 교체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 원장이 이 인사 당일 감사원 실·국장 등 30여 명의 간부들 앞에서 털어놓은 말은 인사 배경을 더 선명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울분을 토로하듯 '성역 없는 감사'를 주문했다고 한다.
감사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원장은 아흔이 넘은 부친(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92)과의 21년 전 일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1999년 6월 우리 해군이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을 선체를 충돌하는 방법으로 밀어내면서 긴장이 고조돼 있을 때 최 원장은 부친이 갑자기 인천 제2함대로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고 한다. 당시 제2함대 사령관은 부친의 해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시절 제자였다. 부친이 2함대 사령관에게 "대원들 사기는 어떠냐"고 묻자, 사령관은 "맹렬히 짖으면서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는 사냥개들의 끈을 잡고 있는 기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부친은 "그러면 됐다"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실·국장들에게 "그 당시 사령관이 느꼈던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 감사원에도 필요하다"며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정부에 부담이 되는 감사에 주저하는 감사원 조직과 간부들을 사실상 질책하는 말이었다.
이어 최 원장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감사원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사관으로서의 야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감사원장의 대행자로서 감사에 임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감사 대상의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연한 자세로 감사에 임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등 정치권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조직 문화를 비판한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심의하는 감사위원회는 현재 대부분이 친정부 인사로 채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명 중 1명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 김진국 전 민변 부회장이고, 1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신이다. 총리실 국정운영실장(1급)으로 있던 임찬우 위원도 지난 2월 감사위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