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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어린이 빚’을 생각한다

화이트보스 2020. 5. 12. 10:45



김광일의 입] 어린이날에 ‘어린이 빚’을 생각한다

입력 2020.05.05 18:00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참 슬픈 말이다. 우리나라가 극빈국으로 분류됐던 시절 얘기다. 초근목피(草根木皮), 말 그대로 풀뿌리라도 캐 먹어야 했던 시절, 무료로 배급되는 것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가족에게 돌아갈 몫을 챙겨야 했다.

그런 슬픈 과거가 아니라 하더라도 거저 준다는 데 싫다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나라에서 곳간을 털어서 돈을 뿌린다는 데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여당과 야당이 밀고 당기는 씨름을 한 게 아니다. 여당과 기재부가 밀고 당기다가, 혹은 그러는 척하다가 결국 여당 주장대로 전 국민 100%를 대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어제부터 시작된 재난지원금은 이달 한 달 진행될 것이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도 구청에서 안내장이 도착했다. 은행 ‘신용카드•체크카드 계좌’로 받으려면 어떻게 하고, ‘선불카드’로 받으려면, 또 ‘상품권’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하라는 얘기가 적혀 있다. 마스크를 구입할 때처럼 출생연도 마지막 숫자를 요일에 맞춰 신청해야 한다.

결국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 원씩 지급될 예정인데, 여기에 덧붙여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교육청까지 현금 지급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경기도는 특정 가구에 따라 300만 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그러나 모두들 총선 결과에 취해 있거나, 아니면 총선 결과에 망연자실하고 있거나,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정작 그 엄청난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물론 코로나 경제 위기를 넘어가려면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 감당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을 용도 변경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것도 고스란히 국가 채무로 남게 되는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올 한 해에만 늘어나는 적자 국채가 자그마치 120조 원이다. 기왕에 안고 있던 나라 빚이 730조 원인데, 여기에 120조 원을 더하면 850조 원이 된다. 그 돈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는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어서 감각적으로 느낌이 오지 않는 상상 밖의 액수다. 그냥 손쉽게 개인으로 환산해보는 게 빠르다.

850조를 우리나라 국민 숫자로 나누면 한 사람당 빚이 1640만 원,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당 6560만 원이다. 그러니까 올해 들어 4인 가구는 1년 만에 920만 원의 빚을 더 떠안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우리가 가구당 100만 원을 받아 챙기는 사이에 사실은 920만 원 빚을 더 지게 되는 셈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저녁으로 세 개 줬다 네 개 줬다, 그렇게 불만을 잠재웠다는 송나라 고사처럼, 저 개인적으로 갑자기 원숭이 취급을 받는 느낌마저 듭니다만, 아무튼 4인 가구 기준으로 올 한 해 나라에서 100만 원 받고 대신 나라 빚은 920만 원 떠안게 됐다는 것이, 아침에 100만 원 받고 저녁에 920만 원 빚 독촉장 받게 되는 기분인 것이다.

문제는 그 나라 빚을 누가 갚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가구의 세대주로서, 가장으로서 지게 될 6560만 원 나라 빚, 올해만 더 안게 될 920만 원 나라 빚, 이 돈은 누가 갚게 될 것인가. 한국은행에서 5만 원 권을 마구 찍어내면 해결되는가. 괜히 어리석고 실없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다. 결국 내 아들, 내 손자가 감당해야 할 빚이다. 어린이날인 오늘 그런 고사리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빚인 것이다. 저 아이들이 직장 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게 되는 때쯤이면, 지금 나라 빚을 흥청망청 늘이기만 했던 정부 책임자들은 80대 90대 호호백발 노인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을 뿌리는 일 못지않게 경기를 부양하고, 경제 체질을 바꿔서, 다시 말해 ‘미래 상환 능력’을 물려줘야 하는 일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지금 당장 ‘물고기’를 나눠주는 일도 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그물과 낚싯대’를 마련해주고 그 사용법을 물려주는 일이 절실한 것이다. 그리고 어장을 잘 관리해서 미래에도 우리 어장에는 물고기가 풍부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재정 건전성도 ‘묻지 마 현금 살포’ 앞에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이란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5/20200505019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