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채 급증] [2]
정부·여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나랏빚을 더 내 씀씀이를 늘려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OECD 평균 부채 비율이 109%인 반면 우리는 42% 수준이기 때문에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지난해 초대형 예산 편성을 지시하면서 '40% 마지노선'의 폐기를 주문했었다. 민주당 일각에선 부채 비율을 60%까지 높여도 된다는 주장도 한다. 역대 정부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40%' 방어선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보다 재정 여력에 여유가 있다는 주장은 저출산·고령화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선진국도 고령화 전엔 국가부채 비율을 낮게 유지했었다. 독일은 1972년에 65세 이상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그해 채무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1975년과 1990년에 각각 '고령사회'가 된 영국과 프랑스의 해당 연도 부채 비율은 44%, 36%였다. 이 나라들은 그 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천문학적 비용 증가로 국가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의 '고령사회' 시점은 2018년이다. 선진국보다 30~40년 늦게 진입했지만,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선진국들의 재정 악화 코스를 그대로, 더 빠르게 밟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생산인구 감소로 세입이 줄어드는 반면 노인복지·의료비 등에 투입돼야 할 정부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컨대 65세 이상에게 최대 월 30만원을 주는 기초노령연금 지출의 경우 지난해 약 15조원에서 2045년엔 101조원으로 7배나 늘어나게 된다. 이 기간 중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기 위해 납세자 1인당 연간 36만원을 내지만, 2045년엔 24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동시에 노인돌봄 서비스, 노인일자리 사업 같은 각종 복지 지출과 의료비도 급속도로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보장 범위를 대폭 확대한 '문재인 케어'가 더해지면서 건보료 지출이 급증하고,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4년 바닥나게 된다. 국민연금도 2057년 적립금 고갈이 예정돼 있다. 건보와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더 걷거나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나랏빚이나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처지인데 3년 전 한국은행은 소비세를 제외한 세금 수입이 50년 뒤엔 지금보다 연간 47조원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생산 인구가 감소해 경제 성장이 둔화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정적자가 늘어나 국가부채를 팽창시키게 된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50년 국가채무 비율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높은 85.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정치권이 새로 눈을 뜬 대규모 현금 살포 정책을 더하고 기초연금 증액까지 반영하면 실제 채무 비율은 100%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1~2%대 아래로 내려가면 국가부채는 더 크게 늘어난다.
국민이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 형태로 떠안는 국민부담률도 현재 GDP의 27% 수준에서 30년 뒤엔 40% 이상으로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가만히 있어도 고령화 등의 인구구조 변화에 의해 지금 선진국보다 더 심각한 고부채·고부담 국가가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는 통화 발권
20~30년 뒤의 일이라고, 자식 세대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국가부채가 악화될수록 경제 현장에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 부작용이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국가부채를 더 키우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콜레스테롤이 혈관을 터뜨리기 전에 환자는 온갖 질환을 앓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