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안에서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 이브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밖의 이야기에는 이브가 첫 여성이 아니라는 대목도 있다고요. 그럼 누구입니까?
- “‘릴리트’라는 여성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신이 창조한 첫 인류가 ‘아담과 이브’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하와’라고도 부르죠. 그런데 성경 밖의 이야기에는 이브 이전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신이 창조한 첫 인류는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아담과 릴리트’라고 말합니다.”
- ‘릴리트’가 최초의 여성이란 말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 “유대 민족의 옛이야기에 등장합니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는 계시를 기록한 책이라고 합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유대 민족에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후대에 문자로 기록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거기에도 계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겠네요. 단군신화도 처음에는 구전으로만 전해졌죠.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다가 어느 시기에 문자로 기록된 것이거든요. 단군신화, 고조선 건국 하면 5000년 전의 역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문자로 기록된 건 고려 시대의 역사서 『삼국유사』『제왕운기』 등이거든요. 지금으로부터 불과 800년 전에 기록된 겁니다. 그러니까 구전되는 신화와 문자 기록 사이에는 그만큼의 시차가 있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성경 이야기는 아니고, 유대 신화의 이야기군요.
- “지금은 성경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유대 신화 아야기를 하는 거에요. 구약의 모세오경은 흔히 모세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유대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400년 사이에 문자로 기록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유대 신화는 이런 유대 민족의 구전과 전승에 기반한 내용입니다. 이 유대 신화에는 성경과 달리 ‘릴리트’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7~10세기에 기록된 중세 유대교 문헌인 『벤 시라의 알파벳』에도 아담의 첫 아내였다는 릴리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릴리트는 가나안 지역 일대에서는 여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어요. 물론 성경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 유대 신화에서 릴리트가 왜 ‘최초의 여성’인가요?
- “유대 신화에 따르면 하느님이 흙으로 빚어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합니다. 남자는 아담, 여자는 릴리트였어요. 다시 말해 성경이 아닌 성경 밖의 유대 신화에서는 아담의 첫 아내는 이브가 아니라 릴리트라고 돼 있어요.”
- 그럼 유대 신화에서는 이브는 창조하지 않고, 릴리트만 창조한 건가요?
- “아닙니다. 먼저 아담과 릴리트를 만들었어요. 그것도 아담과 릴리트를 흙으로 동시에 창조했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릴리트가 아담의 곁을 떠나버려요. 그래서 하느님이 아담이 잠들었을 때 아담의 갈비뼈로 다시 여자를 창조합니다. 그게 이브라고 해요. 신화 이야기니까 성경과 차이가 좀 있죠.”
- 릴리트는 왜 아담의 곁을 떠났나요? 부부싸움이라도 했나요?
- “네, 맞습니다. 부부 싸움을 했어요. 그것도 엄청 심하게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부부 싸움’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럼 두 사람이 왜 싸웠을까. 이게 아주 뜻밖입니다. 출발은 ‘잠자리의 주도권’ 문제였어요. 릴리트는 불만이 많았거든요.”
- 정말 뜻밖의 이유네요. 그 시대에 그런 주제로 싸울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요. 릴리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었나요?
-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아담이 원할 때는 언제든 잠자리에 응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부부 관계를 가질 때 항상 남성 상위 체위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릴리트가 아담에게 따졌어요. ‘당신과 나는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나만 부부 관계를 할 때 당신 밑에 누워야 하느냐?’ 요즘 시각으로 보면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에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말하잖아요.”
- 이 말을 듣고 아담은 뭐라고 했나요?
- “아담은 이렇게 답했어요. ‘나는 너보다 윗사람이다.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그랬더니 릴리트가 이랬어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동등하다.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 뒤에 릴리트는 아담을 떠나버렸어요.”
- 와, 릴리트 정말 멋있네요. 사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요.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우열을 가릴 요소가 딱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자신이 우월하다고 주장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당당함인 것 같아요. 요즘은 정말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남아있는 성평등 문제들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 “네에, 맞습니다. 겉으로는 ‘성관계에 대한 불만’으로 비치지만, 속을 깊이 따져 보면 ‘인간의 본질적 평등’에 대한 불만이거든요. 하느님이 인간을 지을 때, 당신의 모습을 본 따 짓잖아요. 겉모습을 본딴 게 아니라, 속성을 본딴 거에요. 그게 ‘신의 모상’ ‘이마고 데이(imago Dei)’ ‘이미지 오브 갓(image of god)’ 이라고 하는 ‘신의 속성’이거든요. 그걸 인간에게 불어넣었어요. 그러니까 남자의 속성과 여자의 속성은 무엇과 닮았죠? 신의 속성과 닮았어요. 왜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왜 본질적으로 평등한가? 남자의 속성과 여자의 속성과 신의 속성이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서구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뭐에요? ‘자유와 평등’이죠. 그 뿌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인간은 생겨날 때부터 자유의지가 있고, 생겨날 때부터 신의 속성을 통해 평등하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누가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죠. 지금 보면 릴리트의 사고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진취적이고, 시대를 앞서 나간 사고였어요.”
- 아담의 곁을 떠난 릴리트는 어디로 갔나요?
- “릴리트는 홍해의 한 동굴로 가서 악마를 만나게 됩니다. 궁금하죠?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뤄볼게요. 릴리트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릴리트와 이브는 어떻게 달랐을까. 릴리트는 어떻게 악마의 연인이 되는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그게 인간의 역사에서 시사하는 바는 뭔가.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담의 첫 아내, 이브가 아닌 릴리트’라는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어쩌면 릴리트 이야기에 불편해하실 분도 계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건 성경의 이야기는 아니구요. 성경 바깥의 이야기입니다. 유대 민족에게 구전되는 신화 이야기입니다. 동영상으로도 확인해 보세요. 다음 편에서는 릴리트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 이브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 보겠습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