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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전사자 포피 추모…우린 ‘현충일 아이콘’ 왜 없나

화이트보스 2020. 5. 30. 10:53

 

미·영 전사자 포피 추모…우린 ‘현충일 아이콘’ 왜 없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0.05.30 00:02 수정 2020.05.30 00:13 | 688호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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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9〉 100년 된 ‘포피 캠페인’

군인의 실루엣과 양귀비꽃이 그려진 ‘우리가 잊지 않도록(lest we forget)’ 깃발. [AP=연합뉴스]

“지난 17일간 내가 체험한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 즉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 대해 기록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이곳에 온 첫날 17일간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면 단연코 불가능하다고 했을 것이다.”

1차대전 참전한 군의관 추모시
‘포피’ 언급 뒤 보훈 캠페인 승화

런던탑 도랑 88만8246개 장관
워싱턴DC엔 64만5000개 빛나

6·25전쟁 70주년 올 현충일엔
온 국민 아우를 브랜드 찾았으면

디지털 포피배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유럽의 격전지 벨기에 플랑드르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캐나다인 존 매크레가 8만7000명이 전사했던 당시의 참혹했던 전투를 회고하며 한 말이다. 그는 친구가 전사했던 플랑드르 들판에 핀 꽃을 주제로 ‘프랑드르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추모 시를 썼다. 이 시에 등장하는 꽃이 바로 포피(poppy), 즉 양귀비꽃이었다. 이 꽃은 전쟁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군인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미국 현충일인 5월 마지막 주 월요일과 영연방 국가의 종전 기념일인 11월 11일을 전후해 국민이 공유하는 추모의 상징이 됐다.

호국 영령의 숫자 소중히 기억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포피월(poppy wall). 3

종전 2년 후인 1920년부터 시작된 포피 캠페인은 올해로 100년째를 맞이했다. 100년간 이어져 온 보훈 캠페인이다. 현충일 또는 종전일에 남녀노소 누구나 양귀비꽃 모양의 배지나 천으로 만든 모형을 달고 다닌다. 각국에서 ‘포피데이(poppy day)’라고 부르는 이유도 양귀비꽃 달기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포피 캠페인이 탄생하게 됐을까? 매크레 중령의 추모시는 1915년 12월 펀치(punch)라는 영국 잡지에 게재됐다. 당시 이 시를 읽은 조지아대 교수이자 시인이었던 모이나 벨 마이클은 시에 쓰여있는 양귀비꽃이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해 소수의 동료와 작은 추모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들은 백화점에서 천으로 만든 양귀비꽃 조화 10달러어치를 구매해 사용했다. 이후 반응이 좋자 재향군인을 위한 모금 캠페인 차원에서 양귀비꽃 형태의 배지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영국 등 참전국 재향군인 조직에 의해 1922년부터 포피 캠페인이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양귀비꽃은 보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떠한 이해관계나 이념, 세대 간의 인식 차이 없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나누는 핵심 매개체가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지는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100년이 지난 2014년 영국에 설치된 추모작품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2019년 11월 한 소녀가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스퀘어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양귀비 꽃을 헌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중세 성채 유적인 런던탑을 둘러싼 도랑은 빨간색의 물결로 가득 채워졌다. 88만8246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전사자의 숫자)의 세라믹으로 제작된 포피가 만든 광경이었다. 여기에 설치된 세라믹 포피는 영국 국민과 예술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이었다. 이 기념 작품을 위해 포피를 35파운드 가격(한화 6만원)으로 구입하는 펀딩사업에 영국 국민이 동참했다. 그 결과 총 250여억원가량의 기금이 조성됐다. 이 추모작품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포피에 대한 애정,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았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2019년 캐나다 오타와 국립전쟁묘지의 한 무명용사 묘에 양귀비꽃이 놓여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에서는 2018년부터 금융사인 USAA가 후원해 설치한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포피월(poppy wall)이 주목을 받았다. 64만5000개의 인공 양귀비가 매년 벽을 가득 채웠다. 이 숫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는 과정 중 전사한 미군의 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가상공간에 포피를 채우는 이벤트로 대체했다. 2018년 캐나다 오타와의 연방의회 건물 외벽에도 미디어 아트로 11만7000개(1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군 전사자의 숫자)의 포피가 묘사되었다.

보훈 캠페인의 특징 중 하나가 희생자의 숫자를 특히 소중히 다룬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호주 연합군과 함께 1915년 4월 25일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날인 앤잭데이 바로 전날을 포피데이로 지정했다. 포피데이를 앞두고 사람들은 일주일 또는 하루 전 자발적으로 옷, 모자, 장신구 등에 포피를 달고 다니면서 추모의 마음을 나눈다. 애국심을 표현하는 가장 능동적인 실천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포피는 대중에게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상기시키는 보훈 브랜드가 되었다. 포피데이를 지정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 상징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포피 샵을 통해 판매한 제품 수익금 전액은 재향군인 및 보훈 사업에 사용된다. 캐나다의 경우 매년 그해에 배포된 캠페인 상징 포피의 숫자를 발표하는데 천으로 만든 양귀비가 연간 약 2000만개에 달한다. 해외에 체류 중인 캐나다인들을 위해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포피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영미권 국가에선 포피데이 지정

서울 용산 전쟁 기념관 앞마당의 동상. [중앙포토]

100년을 이어오면서 이 포피 캠페인도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접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모바일 세대를 위해 2018년부터 디지털 포피를 선보였다. 배지 인증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배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캠페인 참여를 늘리기 위한 대책 중 하나다. 옷에 착용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구매하여 누군가에게 선물도 할 수 있도록 해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보훈 캠페인의 특성상 특정일 하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2주 정도 일정 기간 캠페인을 유지하려면 인증된 디지털 배지가 효과적일 수 있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자는 취지에도 적합하다.

현충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하다. 한 국가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시각적 약속이자 기억의 상징을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투영시키는 노력의 결과가 포피 캠페인이다. 우리도 이제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보훈의 가치와 상징을 찾고 이를 이어갈 수 있는 보훈 캠페인을 모색할 때다. 올해가 6·25전쟁 70주년이다. 무엇을 공유하고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 갈 것인지, 더 나아가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상징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17만8569명(한국군 13만7899명, 유엔군 4만670명)의 전사자와 아직도 찾지 못한 12만3000여 호국 영웅들의 유해를 우리 국민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추모작품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포피에 대한 애정,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았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2019년 캐나다 오타와 국립전쟁묘지의 한 무명용사 묘에 양귀비꽃이 놓여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에서는 2018년부터 금융사인 USAA가 후원해 설치한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포피월(poppy wall)이 주목을 받았다. 64만5000개의 인공 양귀비가 매년 벽을 가득 채웠다. 이 숫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는 과정 중 전사한 미군의 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가상공간에 포피를 채우는 이벤트로 대체했다. 2018년 캐나다 오타와의 연방의회 건물 외벽에도 미디어 아트로 11만7000개(1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군 전사자의 숫자)의 포피가 묘사되었다.

보훈 캠페인의 특징 중 하나가 희생자의 숫자를 특히 소중히 다룬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호주 연합군과 함께 1915년 4월 25일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날인 앤잭데이 바로 전날을 포피데이로 지정했다. 포피데이를 앞두고 사람들은 일주일 또는 하루 전 자발적으로 옷, 모자, 장신구 등에 포피를 달고 다니면서 추모의 마음을 나눈다. 애국심을 표현하는 가장 능동적인 실천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포피는 대중에게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상기시키는 보훈 브랜드가 되었다. 포피데이를 지정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 상징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포피 샵을 통해 판매한 제품 수익금 전액은 재향군인 및 보훈 사업에 사용된다. 캐나다의 경우 매년 그해에 배포된 캠페인 상징 포피의 숫자를 발표하는데 천으로 만든 양귀비가 연간 약 2000만개에 달한다. 해외에 체류 중인 캐나다인들을 위해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해 포피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영미권 국가에선 포피데이 지정

서울 용산 전쟁 기념관 앞마당의 동상. [중앙포토]

100년을 이어오면서 이 포피 캠페인도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접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모바일 세대를 위해 2018년부터 디지털 포피를 선보였다. 배지 인증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배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캠페인 참여를 늘리기 위한 대책 중 하나다. 옷에 착용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구매하여 누군가에게 선물도 할 수 있도록 해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보훈 캠페인의 특성상 특정일 하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2주 정도 일정 기간 캠페인을 유지하려면 인증된 디지털 배지가 효과적일 수 있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자는 취지에도 적합하다.

현충일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하다. 한 국가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시각적 약속이자 기억의 상징을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투영시키는 노력의 결과가 포피 캠페인이다. 우리도 이제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보훈의 가치와 상징을 찾고 이를 이어갈 수 있는 보훈 캠페인을 모색할 때다. 올해가 6·25전쟁 70주년이다. 무엇을 공유하고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 갈 것인지, 더 나아가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상징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17만8569명(한국군 13만7899명, 유엔군 4만670명)의 전사자와 아직도 찾지 못한 12만3000여 호국 영웅들의 유해를 우리 국민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며 공공소통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2015~16년 중앙SUNDAY 및 중앙일보와 진행했던 공공프로젝트 ‘작은 외침 LOUD’를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 기반의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찾기에도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