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쓰레기 늘자 재활용 單價 하락… 업체는 두 번 운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13 03:00
재활용 선별장 현장 체험해보니
지난 10일 오전 서울 은평구 수색 재활용 집하장에서 재활용 선별 작업을 체험했다.
이달 초 충북 청주시 분평동 한 아파트에 작은 쓰레기산이 생겼다. 폐(廢)플라스틱을 모아둔 100L 비닐봉투 수십 개가 일주일 넘게 방치되면서 더미를 이룬 것이다. 이 아파트는 기존 수거 업체와 지난달 계약이 끝난 뒤 신규 업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관리사무소는 재활용품을 가져다 파는 수거 업체가 가구당 최소 1500원을 주길 바라지만, 업체들은 "500원 이상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마찰은 시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다. 청주시 수거·선별 업체 10여곳이 모인 '청주시 공동주택 재활용품 수집·운반 협의회'는 지난 10일 "시가 세금을 들여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수거하지 않으면 9월부터 해당 품목 수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작업 거부' 선언이다.
코로나 사태로 택배와 배달 음식이 늘어나면서 쓰레기 처리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재활용 업계는 늘어난 일감이 결코 반갑지 않다. 단가가 하락하면서 작업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무튼, 주말'이 쓰레기 재활용 현장을 찾았다.
쓰레기는 늘고 단가는 떨어지고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수색 재활용 집하장(1326평). 쓰레기를 가득 실은 5t 트럭들이 아침부터 들락거리고 있었다. 메주 띄우는 냄새가 났다. 이미 작업을 마치고 출고를 기다리는 쓰레기 230여t이 쌓여 있었다. 쓰레기를 한데 모으는 지게차 뒤로 전단과 음료캔이 뒹굴었다.
이곳은 은평구에서 수거한 재활용품을 모아 선별하는 일종의 재활용 허브. 구민들이 배출한 쓰레기는 이곳에서 운명이 갈린다. 유리병, 플라스틱 등 상품성이 좋은 폐기물은 재활용 업체에 팔려 재생원료로 새 삶을 얻는다. 반면 오염이 심해 상품성이 없는 폐기물들은 고형 폐기물 연료가 되거나 소각된다. 쓰레기로선 이 집하장이 다음 생을 결정하는 '운명의 심판대'다.
"입고되는 쓰레기가 20% 정도 늘었어요. 요즘은 주 6일은 기본이고 쓰레기가 몰리는 날은 일요일도 일해요."
엄덕진(62) 운영소장이 말했다. 수색 집하장은 원래 하루 30t을 처리하도록 설계됐지만 최근에는 매일 60t가량 재활용 쓰레기가 들어오고 있다. 특히 스티로폼, 종이 등 각종 포장재는 코로나 이전보다 2~3배 늘었다.
작업이 끝난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다. 수색 집하장은 하루 30여t을 처리하도록 설계됐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하루 60여t이 들어오고 있다.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운영은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활용 폐기물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본 적자만 4000여만원. 이유는 이렇다. 우선 코로나로 각국이 방역 절차를 강화하면서 중국과 동남아 등 수출길이 막혔다. 기업 생산 활동이 위축되면서 재생 자원 수요가 줄었다. 플라스틱 원료인 원유 가격까지 급락하며 제조 업체들이 폐자원에서 눈을 거둔 것도 한몫했다.
순환자원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당 289원이던 페트(PET)는 지난달 216원으로, 993원이던 알루미늄캔은 885원으로 떨어졌다. 폐스티로폼을 압착해 만드는 잉곳(ingot) 가격은 653원에서 450원으로 30% 넘게 하락했다. "지금까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싼값에 넘겼지만, 적자가 계속되면 문을 닫는 수밖에요.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만이라도 정부가 폐기물 공공 비축에 나서줘야 합니다."
쓰레기봉투에 대변 묻은 휴지도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선별장에 도착하는 폐기물 중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 비율이 높지 않다. 은평구청에 따르면 작년 이 선별장에 들어온 재활용품 중 돈을 받고 판 쓰레기는 24%. 우리가 집 앞에 내놓는 생활 폐기물 중 '진짜'는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돈을 주고 고형 폐기물 연료(SRF)로 바꿔 쓰거나(67%), 그대로 소각했다(9%).
재활용 비율이 낮은 이유를 알기 위해 직접 선별 작업을 해봤다. 녹슨 철제 계단을 따라 2층 작업장으로 올랐다. 33m 길이의 거대 컨베이어 벨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벨트로 온갖 쓰레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직원들은 플라스틱, 유리병 등 각자 맡은 종류의 쓰레기를 쉴 새 없이 상자에 던져 넣었다.
이날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페트 재질 플라스틱 골라내기. 쓰레기 속에서 페트만 집어내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장갑 낀 손을 쓰레기 더미 사이로 넣어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요즘 작업량이 늘어서 벨트를 평소보다 1.5배 정도 빨리 돌려요. 한눈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거요." 이곳에서 8년째 일한다는 서근식(68)씨가 위로를 건넸다.
투입 10분, 슬슬 플라스틱이 눈에 익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이름이 적힌 일회용 컵을 자신 있게 집어 들었다. 옆자리 선배의 스톱 사인. "그건 재활용 못 해. 너무 얇아서 업체에서 안 받아주거든." 결국 컵을 내려놨다.
서울 은평구청은 구민들이 분리 배출을 철저히 지키도록 안내하는 ‘모아모아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쓰레기 비율이 4배 가까이 올랐다. /은평구청
음식이 담겼던 플라스틱이나 종이, 과일 포장재 등은 꼭 깨끗이 씻어 내놔야 한다. 우유팩도 마찬가지. 그냥 배출하면 다른 재활용품까지 오염시킬 수 있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업체 관계자는 "오염이 심한 제품은 재활용 업체에 보내봐야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는다"고 했다.
도저히 재활용품이라 보기 어려운 것도 눈에 띄었다. 한 폐비닐을 뜯어내자 대변이 묻은 휴지, 썩어 문드러진 사과, 김치국물이 뒤엉켜 쏟아졌다. 다른 비닐에선 깨진 유리조각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10년 경력 작업자는 "봉지에서 고양이 사체가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이날 일을 마친 뒤 기자 옷에서 썩어 문드러진 과일 냄새가 났다.
사정이 이런데 통계상 재활용률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전체 폐기물 재활용률은 87.1% 로 역대 최고. 물론 현실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생활 폐기물은 '수거→선별→처리' 세 단계를 거친다. 정부는 수거 업체에서 선별 업체로 넘어간 폐기물 비율을 지표로 삼는다. '87.1%'란 숫자는 '실제 재활용된 폐기물 비율'보다는 '선별장에 도착한 폐기물 비율'에 가깝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서울시 선별 시설로 반입된 폐기물 중 약 46%는 소각하거나 매립해야 하는 잔재물이었다. 나머지 54%에서 폐비닐 10~20%를 제외한 30~40%만이 값을 받을 수 있는 쓰레기였다.
바람직한 방향은?
지자체들은 다양한 대안을 고심한다. 서울 은평구는 작년부터 '수거→선별→처리' 과정에서 '선별'을 건너뛰는 실험을 하고 있다. 구민 이용이 잦은 곳마다 정해진 시간에 '거점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고, 별도 인력을 배치해 구민들이 분리배출을 철저히 지키도록 유도한다. 수거함에 모인 쓰레기는 선별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재활용 업체로 향한다. 이름하여 '재활용 거점 모아모아' 사업.
작년 10월부터 갈현2동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한 결과,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 비율이 기존 26%에서 97%까지 늘었다. 쓰레기가 섞이거나 오염되지 않아 순도가 높았기 때문. 은평구청 정규환 자원순환과장은 "분리배출로 발생하는 수익을 종량제 봉투로 구민에게 돌려주니, 재활용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며 "7월부터는 이 사업을 구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는 12월부터는 투명 페트병과 비닐을 각각 다른 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분리배출제'가 전국에서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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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2/20200612027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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