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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영웅을 기억하라" 불암산 호랑이 위한 충혼비 섰다

화이트보스 2020. 6. 20. 18:34

 

"열아홉 영웅을 기억하라" 불암산 호랑이 위한 충혼비 섰다

 

 

 

 

 

 

입력 2020.06.20 15:00

6·25 전쟁 발발 당시 훈련중인 육사 생도 1·2기
교육중 전투 투입돼 열흘간 150명 전사
남양주에선 생도가 유격대 조직해 적 교란
지난 17일 "잊지말자"고 충혼비 제작

육군사관학교 생도 1·2기는 비운의 기수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생 당시, 생도 1기는 임관 20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전년 7월에 입교한 1기는 1년 교육과정을 거쳐 곧바로 장교로 투입 예정이었다. 2기의 경우 전쟁 발생 당일 소총 훈련이 예정됐던 입교 25일 차 생도였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육군본부는 “생도를 전선에 투입하라”고 명령한다. 생도 1·2기 539명은 주로 M1 소총을 들고 북한의 전차부대를 막고자 나섰다. 이들의 나이 평균 열아홉살이었다.

서울 태릉에서 북동쪽인 경기도 포천으로 향했다. 경찰대대와 함께 첫 전투를 치른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을 소총부대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함께한 경찰 대대는 발생 10여분 만에 실탄이 떨어져 철수했다. 생도대대는 3시간을 버텼지만 결국 철수한다. 그 사이 의정부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다.

1950년대 초창기 육사 생도들의 모습.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이후 생도대대는 수원과 성남 방어선에 투입되는 등 7월 4일까지 10일간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7월10일 1기생 임관식과 함께 생도대대는 해체됐다.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 북한군 총탄에 전사한 생도는 총 150명이었다. 1기 65명과 2기 85명 등이다.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는 “당시 훗날 유능한 장교로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했던 인재들임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에 투입됐다”며 “혼란 속에 많은 희생을 치른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전까지 1기 48명, 2기 47명 등 95명이 전사했다. 생도대대로 참전한 1·2기 539명 중 절반 가까운 245명(1기 113명·2기 132명)이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를 아시나요
당시 생도대대는 국군 7사단 9연대와 함께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서울 태릉에 집결했다. 엄청난 기세로 남하하는 북한을 막고자 였다. 서울이 점령되자 사관학교장은 남쪽으로 퇴각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혼란스런 분위기에 철수를 못 한 생도 13명 등 20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비공식 부대를 조직하고 ‘게릴라식으로 맞서 싸우자’고 결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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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육군사관학교 정문의 모습.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1기생 강원기·김봉교·박금천·박인기·이장관·조영달·전희택·홍명집·한효준 등 10명, 인적사항이 아직도 확인 안 되는 2기생 3명, 김만석 중사 등 부사관 2명, 병사 5명 등이다. 20명은 내부 투표를 거쳐 최초 유격활동을 제안한 김동원 생도를 유격대장으로 선출했다. 조영달 생도를 제1조장, 박인기 생도를 제2조장, 김만석 중사를 제3조장으로 각각 선출했다. 암호명은 ‘불암산호랑이’로 정했다.

불암산에 있는 사찰인 불암사의 도움을 받아 근처 3개의 자연동굴을 은거지로 활용했다. 7월 11일 첫 공격을 시작으로 7월31일, 8월15일, 9월21일 등 총 4차례 북한군을 교란하는 전투를 벌였다. 북으로 끌려가는 주민 100여명을 구출하고 적의 보급물자를 폭파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강원기 생도를 제외한 19명은 전원 전사했다. 강원기 생도도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1951년 7월 10일 숨졌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싸우는 국군의 모습.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잊힌 영웅, 후세가 기억한다
이때 희생한 육사생도 1·2기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잊혀져 있다. 이에 경기 남양주시는 지난 17일 특별한 충혼비 하나를 만들었다. 호랑이 유격대가 활약한 불암사 입구에 높이 2.5m·너비 0.75m의 충혼비가 세워졌다. 비석 앞에는 사관생도가 착용했던 철모도 놓였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기록에 남기지 않은 것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며 “6·25전쟁 70주기를 맞아 잊혀 있는 영웅을 오랫동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재 육사에 재학중인 생도 10여명도 참석해 자신들 선배의 넋을 기렸다.

경기도 포천에도 ‘육사 생도 6·25 참전 기념비’가 있다. 1.2m 화강암 기단 위에 5m의 비석이 놓여 있다. 이곳은 당시 생도대대가 북한 전차를 막고자 전투를 벌였던 장소다. 포천시 내촌면 국도 47호선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진 국도 87호선을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하면 보인다. 육군은 지난 2002년 첫 전투지에서 유해발굴사업을 벌여 유해 4구와 ‘육사’ 표식이 부착된 철모, 의복 등 유품 557점을 발굴했다. 주기적으로 이곳에서 6월25일이 되면 추모제가 열린다.

지난 17일 경기 남양주시 불암사 앞에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충혼비 제막식이 열렸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 1·2기 등 20명이 비공식 부대를 결성, 북한군과 맞서싸웠다. /남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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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0/20200620005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