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北전장서 산화 국군 유해 147위 귀환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0.06.25. 03:01 수정 2020.06.25. 04:00 댓글 3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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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5시 4분경 공군의 공중급유기(KC-330) 1대가 F-15K 등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빗줄기가 흩뿌리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이날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인수한 국군 전사자 147위의 유해가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후 한미 국방당국은 2019년부터 유해 샘플을 항공편으로 주고받으며 정밀감식을 벌인 끝에 147위의 국군전사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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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北美 공동발굴 통해 하와이로
DNA 감식.. 국군 전사자로 확인
美 거쳐 지금까지 239위 돌아와
강원 인제서 6·25 전사자 유해 수습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잊혀가던 국군 전사자들에 대한 기억이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목숨을 바쳐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웅들의 유해가 전투 현장에서 발견되거나 고국으로 봉환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사진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과 22사단 승리대대 장병들이 22일 강원 인제군 상봉 1240고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에 대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 상봉 1240고지는 1951년 5월 7일부터 13일까지 국군수도방위사단이 북한군 6사단과 12사단을 물리치고 확보한 구국의 현장이다. 인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
24일 오후 5시 4분경 공군의 공중급유기(KC-330) 1대가 F-15K 등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빗줄기가 흩뿌리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이날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인수한 국군 전사자 147위의 유해가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호국영웅들의 귀환 여정은 길고도 지난했다. 이들은 평남 개천과 평북 운산, 함남 장진호 등 주요 격전지에서 미군과 함께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중공군과 사투를 벌인 장진호전투(1950년 11월 26일∼12월 11일)에서 미군 등 유엔군 사상자는 1만7000여 명에 달했는데 그중엔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다수도 포함됐다.
이날 봉환된 국군 전사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7위 중 박진실 정재슬 김정용 일병도 그런 사례다. 박 일병은 1남 3녀 중 장남이고, 정 일병은 4남 2녀 중 둘째 아들, 김 일병은 6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모두 미 7사단 소속으로 장진호전투 중 산화했다.
군 관계자는 “손발은 동상에 걸려 하얗게 변한 데다 수통의 물과 전투식량은 꽁꽁 얼어버리고, 수류탄도 불발되는 최악의 여건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과 끝까지 사투를 벌이다 숨을 거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진호 김동성 최재익 일병, 오대영 이등중사(지금의 병장격)는 당시 결혼해 자식까지 둔 가장이었지만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다 1950년 10월∼1951년 5월 장진호 일대에서 산화한 것으로 관련 기록에 나와 있다.
북녘땅에 영영 묻힌 채 잊혀질 뻔했던 국군 전사자들은 미국이 북한과 유해 공동발굴 작업에 나서면서 귀환의 계기를 맞게 됐다. 1990∼1994년 개천·운산·장진호 일대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와 2018년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에 넘긴 미군 유해에 한국군 전사자 유해가 섞여 있었던 것.
미국은 북한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를 하와이의 DPAA로 가져가 유전자(DNA) 감식 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동양계 유해가 잇달아 확인되자 한국군일 가능성에 크다고 보고, 우리 군 유해발굴감식단에 알려왔다. 이후 한미 국방당국은 2019년부터 유해 샘플을 항공편으로 주고받으며 정밀감식을 벌인 끝에 147위의 국군전사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2012년(12위)과 2016년(15위), 2018년(65위)에 이어 이번까지 미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온 국군용사 유해는 총 239위이다.
박재민 국방차관 등 봉환유해 인수단은 24일 새벽(한국 시간) 하와이 현지에서 필립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DPAA 관계자 등과 함께 유해 인수식을 가졌다.
인수식 직후인 24일 오전 7시경 147개의 승객석에 유해 운구함을 실은 공중급유기가 하와이를 출발한 지 9시간여 만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자 군은 전투기의 엄호 비행 등 최고의 예로 호국영웅들의 귀환을 맞이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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