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8)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Ⅴ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5.09 02:31 [서울신문] 이성량(李成梁)이 병탄을 시도하고, 광해군과 왕세자를 책봉하러 왔던 명사(明使)들의 은(銀) 징색이 이어졌던 것은 광해군 시절 명나라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2008.12.31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5.02 03:41 [서울신문] 우여곡절 끝에 즉위했지만 국왕 광해군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그의 친형 임해군을 처리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사관(査官) 엄일괴 등을 은으로 구워삶아 위기를 넘겼지만, 그것으.. 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2008.12.31
(16)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16)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Ⅲ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4.25 03:51 [서울신문] 명 조정이 왕세자로 승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광해군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1604년, 명나라 제독주사(提督主事) 섭운한(雲翰)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온 조선 사.. 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2008.12.31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4.18 08:41 [서울신문] 광해군은 성공적인 분조 활동을 통해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부왕 선조의 견제 때문이었다. 왜란 초반,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의주까지 파천하기에 급급했던 선조는 .. 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2008.12.31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4.11 09:01 [서울신문]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 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200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