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협약에 맞서 무효를 외치고 꼭 우리의 손으로 간도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
간도는 고구려와 그 뒤를 이은 발해의 땅으로서,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였다. 그러나 발해가 망한 뒤에는 말갈족이 거주하였으며, 여진족이 청을 건국한 뒤에는 이 지역을 그들 조상의 발상지라고 하여 다른 민족의 이주를 금지하였지만, 조선인들이 곳곳에 살고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조선과 청은 국경선을 정하면서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고 간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하였다. 그 후 많은 조선 사람들이 간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에 청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철수를 강요하며 간도가 청의 영토라고 주장하였으나, 조선에서는 간도 관리사를 파견하여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보호하며 다스렸다.
특히, 함경도 지방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간도로 이주하는 우리 나라 농민들의 수가 늘어났다. 간도로 이주한 우리 민족은 간도의 각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학교를 세우고 민족 교육을 실시하여 뒷날 독립 운동의 터전으로 삼았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안동(단둥)과 봉천(선양)간의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가 청의 영토라고 인정하는 간도 협약을 청과 체결하였다(1909). 이로써 간도 지역은 대한 제국의 관할에서 떨어져 나갔다.
말도 안되는 간도협약에 맞서 무효를 외치고 꼭 우리의 손으로 간도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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