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서 마시는 축배, 슬플 때 마시는 위로주, 성찬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감미주, 단결을 다지는 화합주 …
신의 물방울로 찬미되는 알코올은 탄생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희로애락에 빠지지 않는 동반자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술의 신)의 축복은 절제를 요구하며 남용할 땐 사고와 질병이란 비극을 잉태한다.
특히 간질환 환자가 많은 중년 남성의 간질환 사망률은 음주량이 3~4분의 1에 불과한 동년배 여성에 비해 9배나 높다. 간의 날(15일)을 맞아 삶의 향신료인 알코올이 모든 물질의 대사 통로인 간 건강에 미치는 역할을 알아본다.
◆개인차가 큰 간 손상=과음이 간을 해친다는 것은 상식. 그렇다면 적정 음주량은 얼마일까.
의학계에선 남성의 경우 양주와 포도주는 두 잔, 소주는 석 잔, 맥주는 넉 잔이란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여성의 안전 음주량은 이보다 절반이다. 술은 많이 마실수록 간 손상 위험은 커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체질적 요인이다.
실제로 “정밀검사를 해봤는데 간이 예쁘다고 들었다”고 자랑하는 애주가도 있는가 하면,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사망하는 이도 있다. 따라서 외가·친가 등 가족 중에 알코올로 인해 간경변을 앓은 환자가 있는 사람은 평생 적절 음주량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마셔야 한다.
의학적으로 술을 달고 사는 애주가의 약 20%는 음주 경력 10년을 넘기면서부터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고통받게 된다. <그래픽 참조>
단 간이 나빠질지 아닐지는 손상되기 전에는 알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이 누구나 적정 음주량을 지킬 것을 권하는 이유다.
참고로 주량과 간 손상은 별 상관이 없다. 예컨대 소주 한 병을 마셔도 멀쩡한 사람이 한두 잔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보다 간 손상이 적은 것도 아니다.
◆애주가는 음주 문제 인식해야=애주가라면 우선 다음의 항목에 몇 개나 해당하는지 답해 보자.
① 내가 생각해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 ② 주변에서 나를 보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으니 음주량을 줄이라는 충고를 한다 ③ 해장술을 마신 적이 있다 ④ 과음하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만일 이 네 가지 항목 중 두 가지 이상이 해당된다면 당신은 알코올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전문가에게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알코올성 간질환 여부에 대해 정밀검진도 당연히 점검해 봐야 한다.
‘음주문화’가 장려되는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한 명은 정신적으로 알코올 의존이 심각한 상태며 간 손상 가능성도 높다.
◆일단 발병하면 간 손상 진행 빨라=과음으로 인한 간손상은 지방간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일단 이 단계에 접어든 상태에서 음주를 계속하게 되면 급속하게 알코올성 간염→간경화 →간암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첫 단계에서 ‘절대 금주’를 실천해야 한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B형·C형 간염에 비해 치료제도 없고 질병 경과도 나쁘다.
실제로 일단 지방 간염 상태만 돼도 이때부터 절대 금주를 실천해도 환자 절반은 간경변증으로 이행한다. 물론 병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절대 금주’ 원칙은 지켜야 한다.
만일 알코올성 간경변증 상태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합병증이 없더라도 5년 생존율은 60%, 황달·복수 등 합병증이 있을 땐 70%가 5년 이내에 사망한다. 반면 금주를 실천하면 합병증이 없을 땐 사망률이 정상인과 큰 차이가 없으며 합병증이 있는 환자도 5년 후에 50%는 생존한다. 알코올성 간질환이 발병한 환자는 비만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간세포에 지방이 찰 경우 간 손상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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