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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통영 앞바다 '모래 전쟁'

화이트보스 2008. 10. 13. 16:02

부산·통영 앞바다 '모래 전쟁'
국책 사업인 신항만 공사 17일째 중단 상태
7년 동안 욕지도 인근 바닷모래 퍼 와 공사
채취 지역 추가 지정… 어민들 반발에 막혀
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12일 오후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일대 신항만 남컨테이너 부두 2-3단계 공사현장. 부산 신항 공사는 기존의 부산 감천항과 북항을 모두 합친 것(29개)보다 더 많은 30개 컨테이너 선석(船席·선박 접안 시설)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현재 2단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날 공사현장 앞 200m 해상에는 높이가 50m 가량 되는 SCP(Sand Compaction Pile) 해상장비 3대가 버티고 서 있었다. 연약지반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개흙 속에 모래 기둥을 박는 작업을 해야 할 이 장비들은 지난 달 26일부터 17일째 작동을 멈췄다. 공사용 모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못하면 선박 접안 시설인 안벽 건설 등 이후 공정도 연쇄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 지난 8월 19일 부산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 광장에서 대형선망수협₩경남정치망수협 등 7개 단체 소속 어민들이 욕지도 골재채취 단지 지정고시 철회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전국선망선원노동조합

국책사업이냐 어업권이냐

모래가 부족한 것은 이 공사에 공급할 바닷모래 채취를, 주변 어민들이 "어장이 파괴된다"며 반발하며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바닷모래를 채취해 공사용으로 이용하려는 국책사업과, 그에 따른 환경 파괴로 생존권을 위협 받는 어민들의 이해가 충돌한 것이다.

부산 신항 건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모래는 2001년부터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채취해왔다. 매년 530만~1500만㎥씩, 지난 7년 동안 그곳에서 총 5500여 만㎥의 모래를 채취했다. 욕지도 해상을 주조업지로 삼아온 부산과 통영 인근 어민들은 정부에서 해당 수역에 채취 허가를 새로 내줄 때마다 규탄대회를 벌이며 반발했다.

그러다 최근 공사 중단 사태까지 맞게 된 것은 지난 8월 국토해양부가 다시 통영시 욕지도 남방 50㎞ 수역 내 5.48㎢를 골재채취단지로 지정, 고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2010년 2월까지 2640만㎥의 바닷모래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당 수역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이라 멸치·장어·갈치 등 어종이 풍부하고, 좋은 모래 덕분에 어류들의 주요 산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어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형선망수협·경남정치망수협 등 7개 어민 단체들은 정부 고시 발표 직후인 8월 19일 부산공동어시장 광장에서 항의집회를 벌였다. 통영 어민들이 주축이 된 '욕지바다 모래채취반대대책위원회'도 오는 20일쯤 욕지도 앞바다에서 어선 100여 척을 동원한 대규모 해상 시위를 다시 계획하고 있다.

어민들은 채취업체들이 모래 채취를 강행할 경우 어선들을 동원해 해상 봉쇄에 나서는 강경 대응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이러다 보니 채취업체들도 어민들을 자극할까 봐 모래 채취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바닷모래 채취' 갈등 확대될 수도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싸고 어민들과 정부가 대립하는 것은 욕지도 수역뿐만 아니다. 인천 옹진군과 충남 태안에서도 2004년과 2006년 모래 채취가 진행될 때마다 지역 어민들과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한 어민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모래 대체재 개발 등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어민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며 "일본에서는 환경파괴 우려가 있는 바닷모래 채취를 금지하는 대신 가공모래와 재생골재 등을 개발해 모래 대신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래 수급량 중 절반 정도를 바닷모래에 의존하고 있어 당장의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2008년도 국토해양부의 골재수급계획에 따르면, 채취가 허가 된 모래(9821만1000㎥) 가운데 46%(4557만9000㎥)가 바다에서 채취하는 것이다.

북한산 모래 도입이나 중국 등으로부터 모래를 수입하는 것은 공사비를 상승시켜 한계가 있다. 특히 정부는 북핵 문제 등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공급이 수시로 불안정해지는 북한산 모래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대신 연안 지역이나 EEZ에서의 바닷모래를 채취해 보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바닷모래 채취와 관련해 어업·환경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 마산항·울산항 민자부두·포항 신항만·광양항 등 대량의 모래를 필요로 하는 국책사업은 줄줄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 신항에서와 같은 공사 중단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현재 뾰족한 묘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모래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생기는 건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순환골재 의무사용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