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이상향 찾아가는 명상여행
‘이상향’ 샹그리라를 찾아가는 윈난(雲南)성 여행도 매우 독특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윈난성은 중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성이다. 남쪽과 서쪽으로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을, 북서쪽으로는 티베트자치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20여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여느 중국땅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른 곳이다.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원래 모습 그대로 간직한 평화롭기 그지없는 분위기’쯤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윈난성은 패키지 여행으로 쫓기듯 다닐 게 아니라 배낭여행으로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피폐해진 심신을 재충전하기에 최적의 여행지라 하겠다. 윈난성을 구석구석 살펴보려면 한두 달로도 부족하겠으나 꼭 가봐야 할 곳만 간추린다면 쿤밍(昆明), 다리(大理), 리장(麗江), 샹그리라(香格里拉), 그리고 위룽(玉龍)설산과 메이리(梅里)설산이다.
이 코스의 시발점은 윈난성 성도인 쿤밍이다. 쿤밍은 사시사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씨 같다고 하여 춘성(春城)이라고도 한다. 대체적으로 섭씨 8도에서 20도 사이의 온화한 기후를 보이고 있어 연중 꽃이 핀다. 해발 1900m의 고지대여서 중국 내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운동선수단이 겨울철 전지훈련 장소로 자주 찾는다. 쿤밍은 인구 350만여 명의 대도시로 항공 철도 도로교통의 중심지다. 윈난성 각 지역으로 가는 것은 물론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로 날아가기도 쉽다. 수년 전부터 직항로가 개설돼 한국과도 5시간 이내로 연결된다.
기자가 쿤밍에 간 것은 1999년 2월로, 베이징이 출발지였다. 쿤밍까지 48시간의 기차여행이었다. 기차가 베이징 서역을 출발할 때 창밖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자 조금씩 풍광이 달라지더니 창강대교를 건너 강남지역으로 들어서자 몇 시간에 걸쳐 노란 유채꽃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쿤밍에 도착하니 완연한 봄으로 때마침 개최된 세계원예박람회장에는 온갖 꽃이 만발해 있었다. 고위도에서 저위도 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달린 것이어서 48시간 만에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동을 한 셈이다. 또 한 가지 일화.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기차에 탄 손님들도 가지각색. 한 중국인 가족은 라면박스를 여러 개 가지고 기차에 올랐는데, 끼니마다 라면을 끓여 먹더니 쿤밍에 도착할 때는 라면박스들이 다 비워지는 것이었다.
쿤밍시내에도 취호공원, 박물관, 민속촌, 서산용문, 세계원예박람원 등 볼거리가 많지만 필수코스는 스린(石林)이다. 말 그대로 돌의 숲. 2억7000만년 전 바다 속이었던 스린은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오늘날의 기이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수십m 높이로 치솟은 돌의 숲이 무려 5㎞에 걸쳐 펼쳐지고 있으니 대단한 규모다. 돌 사이로 관람객이 다니는 길이 잘 나 있고 전망대도 잘 갖춰져 감상하기에나 촬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쿤밍시내에서 90㎞ 떨어져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다리는 역사시간에 한번 들어봤을 옛 대리국의 고장이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윈난성의 가장 오래된 고도로 13세기 몽고군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다리의 주민들은 바이족(白族). 한때 중원의 중국왕조와도 맞선, 작지만 강한 나라의 후손들로 지금은 소수민족의 하나일 뿐이다. 대리석이 바로 이 지역에서 나는 돌이다
다리는 사람의 귀 모양으로 생긴 얼하이(·#54676;海)호(249㎢로 윈난성 제2의 호수)와 그 주위를 둘러싼 창산(蒼山)이 어우러져 ‘중국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경관이 뛰어나다. 물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자연히 다리관광의 스타트는 유람선을 타고 얼하이 호수를 한바퀴 둘러보는 것인데, 중간에 작은 섬에 내려 호수를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다리 시내에서 볼 만한 것으로는 다리고성(古城)과 숭성사(崇聖寺) 삼탑이 대표적이다. 리장고성과 함께 윈난성의 대표적 고성인 다리고성은 명대에 재건된 것으로, 관광객이 오가는 시내 중심에 있으므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숭성사 삼탑은 다리의 상징과도 같은 3개의 불탑으로 가장 높은 탑은 69m나 돼 멀리서도 잘 보인다. 대리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다리시박물관을 가면 된다.
다리에 가면 쇼핑할 것이 하나 있으니 대리석 도자기다. 대리석 원석덩어리의 속을 파내고 표면을 갈아서 도자기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돌의 빛깔과 무늬가 아름다워 장식품으로 손색이 없다. 한 가지 고려할 점은 돌이어서 무겁다는 사실이다.
다리에서 북쪽으로 더 들어가면 리장과 샹그리라로 가게 된다. 티베트로 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필자는 다리까지만 가봤기 때문에 리장과 샹그리라 그리고 티베트는 다음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영순위로 꼽고 있다.
리장은 다리에서 북으로 150㎞ 떨어진 도시로 나시족(納西族)의 오랜 본거지. 자연 풍광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우선 고성 안의 사람 사는 집과 거리가 인상적이다. 다른 관광지의 고성은 옛 자취만 남은 관광유적일 뿐이지만 리장의 고성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살아 있는 관광명소다. 위룽설산의 눈이 녹은 깨끗하기 그지 없는 시냇물이 고성 안의 이곳저곳을 운치 있게 흐르고 고풍스러운 집들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푸근함과 낭만을 안겨준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곳에 와서 몇 달이고 눌러앉아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리장의 자연경관 중 놓쳐서는 안 될 곳이 바로 위룽설산과 호도협(虎跳峽). 해발 5596m의 위룽설산은 리장시내 어느 곳에서도 그 위용이 잘 보이지만 케이블카를 타면 4500m 지점까지는 쉽게 오를 수 있다. 1년 내내 순백의 자태를 드러내는 위룽설산은 나시족들이 신성시하는 성산. 호도협은 호랑이가 뛰어 건널 수 있을 만큼 좁은 협곡이라는 뜻으로 해발 5396m의 합파설산과 위룽설산 사이에 있다.
샹그리라를 찾아서
윈난성 여정의 마지막 코스인 샹그리라는 관광지로 개발된 지 10년이 채 안 되는 떠오르는 명승지다. 샹그리라라는 지명이 외부세계에 처음 알려진 건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턴(1900~1954)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발표하면서부터. 힐턴은 소설에서 샹그리라를 온갖 종교가 화합공존하며 인간의 갈등과 탐욕이 없는 곳으로 묘사했다. 소설의 앞부분 스토리는 이렇다. “인도의 한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나 백인들이 군용기로 피신했는데, 그중 한 소형비행기에 옥스퍼드 출신의 영국영사 콘웨이 등 승객 4명이 탔다. 이들이 탄 비행기가 페샤워로 향하던 도중 납치돼 모처에 불시착하게 된다. 이들은 짱족 안내인을 따라 첩첩산중을 헤맨 끝에 마침내 기막히게 아름다운 푸른 달빛의 골짜기에 도착한다.”
샹그리라는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찌든 서양인들에게 낙원으로, 이상향으로 다가왔다. 1937년엔 영화로 제작됐고, 194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메릴랜드 주에 지은 별장을 샹그리라로 명명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이다. 정작 힐턴 자신은 샹그리라에 가본 적이 없다. 오늘날의 짱족 자치주 일대를 여행한 탐험가들의 기록에서 소설의 배경을 꾸며낸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비개방지역이던 샹그리라는 1996년 중국 정부가 각계 전문가 50인으로 샹그리라 탐사대를 조직해 소설의 무대를 찾아나서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탐사대는 소설에 묘사된 설산과 대초원, 강과 협곡, 원시삼림, 티베트불교를 기준으로 조사작업을 진행한 끝에 윈난성 중뎬(中甸) 지역이 샹그리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은 2001년 중뎬을 아예 샹그리라로 이름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샹그리라는 중국인 특유의 경제 마인드가 만들어낸 가공의 이상향일 뿐이다.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의 샹그리라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건 사실이고, 티베트인(藏族)들의 순수함이 살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를 찾아가는 명상여행’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도 어울릴 듯하다.
샹그리라의 볼거리는 티베트풍의 불교사원과 설산, 호수, 공원 등 대자연의 넉넉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곳에서 티베트 접경인 더친(德欽)으로 더 들어가면 해발 6740m로 윈난성 최고인 메이리(梅里)설산을 가까이 볼 수 있다.
메이리설산은 짱족이 8대 신산(神山) 중 첫째로 꼽는 산이다. 수백리에 걸쳐 끝없이 이어지는 눈 덮인 봉우리가 장관이다. 특히 메이리설산의 일출장면은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일출시각이 되면 해를 등지고 설산에 부딪히는 빛을 바라보는데, 처음엔 주봉 카와거보에서부터 붉은빛이 서서히 산 아래로 물들다가 다시 점점 하얀빛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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