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중국 명산,명소,문화를 찾아서

창강(長江) 크루즈 여행

화이트보스 2008. 10. 19. 21:17

창강(長江) 크루즈 여행


구이린이 아기자기한 산수화의 고장이라면 창강(長江)은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중국 최장, 세계3위의 강이다. 6300여㎞ 에 달하는 창강 유역의 관광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관광여행을 목적으로 창강을 보려 한다면 창강 크루즈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크루즈 여행이라면 호화여객선을 타고 세계 여러 나라의 항구를 찾아다니는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이같은 크루즈 여행이 창강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필자가 창강 크루즈 여행을 한 것은 1998년 추석 연휴 때였다. 베이징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예약해둔 2박3일짜리 크루즈 유람선에 올랐다. 유명한 장군의 이름을 딴 풍옥상 호였다. 창강 크루즈에 나서는 배들은 호텔처럼 5성급 4성급 하는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고 배 안의 객실도 1등실에서 4등실까지 구분돼 있다. 3성급 배의 1등실을 탔는데, 2인1실로 일인용 침대 2개와 샤워기가 딸린 화장실이 갖춰진 수준급의 방이 배정됐다.


유람선 코스는 창강의 맨 끝 하구도시인 상하이까지 일주일여에 걸쳐 내려가는 것에서부터 하루이틀짜리까지 다양한데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이 충칭에서 이창(宜昌)까지의 2박3일 코스다. 이 코스는 창강 유역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다는 3개의 협곡 즉, 싼샤(三峽)를 품고 있고, 몇 해 전 완공된 싼샤댐을 배를 탄 채 통과하는 이색체험도 해볼 수 있다.


관광은 낮시간에 유람선을 타고 창강 하구쪽으로 내려가다가 도중 잠시 정박하고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충칭~이창 구간의 경우 귀신들의 성이라는 풍도귀성(豊都鬼城),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의 묘(張飛廟), 유비가 죽으며 제갈공명에게 아들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 백제성(白帝城)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3개의 협곡이다. 취탕샤(瞿塘峽, 8㎞ ) 우샤(巫峽, 40㎞ ) 시링샤(西陵峽, 76㎞ ) 구간은 강폭이 좁아져 물살이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장관이다. 강의 양쪽은 때로는 기묘한 봉우리들이, 때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길게 이어지고 안개가 감도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1년 중 절반 이상 비가 내리고 안개에 싸인다.


싼샤와 함께 반드시 보아야 하는 곳이 샤오싼샤(小三峽)다. 우샤 입구에서 창강의 지류인 다닝허(大寧河)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3개의 협곡을 말한다. 이곳은 협곡의 경치가 오히려 싼샤를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다. 지류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수심이 얕아지므로 작은 배로 갈아탄다. 이때쯤 가이드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촉나라 가는 길이었다며 삼국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유명한 시에 당시 촉나라(오늘날의 쓰촨성)로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잘 묘사돼 있다. “아득하게 높구나 촉나라 가는 길은/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네/ (중략) 황학도 날아 넘기 어렵고 원숭이조차 기어오르기를 겁내는구나”


샤오싼샤 지류로 들어가면 지금도 이백이 시에서 언급한 험하기 짝이 없는 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절벽에 나무를 박아 만든 길(古棧道)의 자취가 그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원숭이가 지금도 간간이 보인다.


유람선에는 식당이 완비돼 있어 식사시간마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한다. 배는 밤이 되면 운행하지 않고 물 위에 정박한다. 가볍게 흔들거리는 유람선의 객실 창 너머로 눈부신 달빛이 강물 위에 부서져 내리는 한밤의 정취에, 차마 잠들 수 없어 뒤척인 기억이 10년이 돼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창강 크루즈야말로 최고의 낭만여행이 아닐까.



동화의 세계, 주자이거우(九寨溝)


쓰촨성의 주자이거우(九寨溝)는 물로 이루어진 관광명소이면서도 구이린이나 창강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다. 중국의 다른 관광지처럼 거대하고 웅장하지 않은 대신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때깔이 좋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느낌이다. 50㎞에 달하는 Y자형 계곡에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114개나 펼쳐지고 13개의 폭포가 널려 있다. 오화해(五花海) 오채지(五彩池)처럼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호수들의 물빛이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녹색 푸른색 담황색의 물 빛깔이 호수 주위의 산, 숲과 어울려 선경을 만들어낸다.


주자이거우를 보려면 발품을 많이 들여야 한다. 무공해버스를 타고 계곡 옆에 난 도로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3,4분 간격마다 하차해 호수나 폭포를 둘러보는 식이다. 주자이거우의 아름다운 호수들 중에서도 꼭 봐야 할 것으로 오채지 오화해 외에도 가장 큰 호수인 장해(長海), 회백색의 자작나무 숲에 있는 초해(草海), 대나무로 둘러싸인 전죽해(箭竹海), 그리고 진주탄폭포와 낙일랑폭포를 권하고 싶다. 기자는 여름철에 주자이거우를 갔는데,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호수의 물빛깔과 어울려 더욱 환상적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주자이거우는 9개의 좡족(藏族, 티베트족)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고 1997년에는 세계생물권보호구로 지정됐을 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풍경구 내에서는 무공해차량이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화장실과 휴지통 등이 완벽하게 갖춰져 오염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하루 입장객을 1만2000명으로 제한하는 것도 환경보호 조치의 일환.


600개의 작은 연못, 황룽의 오채지


600개의 작은 연못이 어우러진 황룽의 오채지. 

주자이거우를 보고 난 관광객은 거의가 인근의 황룽(黃龍)을 찾는다. 만약 이곳을 빼먹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황룽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자도 여기에 동의한다. 중국에서는 인근이라 해도 거리가 만만치 않다. 주자이거우에서 황룽은 약 150㎞ 거리로 서울-대전쯤 되는 셈이다. 해발 4000m의 고개를 넘어 민산산맥의 주봉인 설보산(5588m) 기슭까지 가야 한다.


황룽은 계단식 논처럼 생긴 작은 연못(?)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물은 3400여 개나 되는 작은 석회암 연못들을 채우면서 천천히 아래로 흘러간다. 그 옆으로 7.7㎞에 달하는 황룡계곡엔 나무가 울창해 작은 연못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황룽에서 특히 볼 만한 것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채지(五彩池). 600여 개의 작은 연못이 모여 아름다운 물빛의 향연을 벌인다. 위로는 설산이 우뚝 솟아 있고 주변은 온통 나무와 숲으로 꽉 들어차 있어 녹색 계통의 물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오채지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넓은 전망대가 설치돼 감상하기도 매우 편리하다.


황룽 관광에 반드시 유념할 것은 이곳이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라는 사실이다. 관광객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발 3500m의 오채지를 목표로 올라가는데, 유사시에 대비해 모두 산소통을 하나씩 들고 가야한다. 최근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돼 오채지까지 도달하기가 쉬워졌다고는 하나 역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면 황룽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수천개의 형형색색 멋진 연못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며 지나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오채지뿐 아니라 주자이거우와 황룽 지역 자체가 고원에 위치해 있어 평지와는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자도 해발 3500m의 주자이거우 황룽 공항에 내렸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텔에 투숙해 잠을 청해도 편히 잠들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원은 산소만 부족한 게 아니다. 현지인들의 얼굴을 보면 광대뼈 부근이 벌겋다. 장족들은 이런 얼굴빛을 고원홍(高原紅)이라고 한다. 높은 지대에서 살다 보면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