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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재협상, 한·미 모두에 독(毒)이다

화이트보스 2008. 11. 15. 11:45

FTA 재협상, 한·미 모두에 독(毒)이다
무리한 '자동차 요구' 제2의 촛불 부를 수도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노조의 반대를 의식, 선거 캠페인 동안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반복해서 표명해 왔다. 특히 그는 양국 자동차 교역의 심각한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한미 자동차 무역은 자유무역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그의 이러한 행보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주리주 등 주요 접전지에서 보호무역의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유권자들의 품을 파고들었고, 결과는 최악의 금융위기와 맞물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가 보호무역의 벼랑으로 미국 경제를 끌고갈 것으로 전망하는 이는 드물다. 오바마의 통상정책 관련 공약을 보면 그의 가장 큰 관심은 두 가지, 일자리 창출과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다. 그는 상호성 원칙에 입각하여 해외시장을 적극 개방함으로써 미국 내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그에 상응하는 미국 시장의 개방에 대하여 '보호'가 아닌 '보상'을 확대하여 피해자들의 어려움에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의 통상정책은 반덤핑조치를 강화하는 등 보호주의적 색채를 일부 띠긴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공정무역에 입각한 자유무역주의의 공격적 관철이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유세기간 중 취한 입장을 대통령이 되었다고 단기간 내에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는 내년 상반기쯤에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것이고, 자동차 부문에 대한 재협상 요구는 그런 맥락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를 실제 관철시키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역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경우, 쇠고기 추가 협상의 악몽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미국의 자동차 재협상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겨우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에 다시 기름을 퍼붓는 격이 될 수가 있다. 이 점을 미국 또한 모를 리 없다. 재협상 논의는 한미 FTA를 원점으로 되돌리게 되고 그나마 겨우 봉합된 국내 세력 간의 갈등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것이다.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여는, 위험천만의 위기상황을 다시 초래하는 셈인 것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의 요구로 노동 및 환경에 대한 재협상까지 마친 상태에서 한국에 대해 특정 분야의 재협상을 다시 요구하는 것은 향후 대외 협상에 있어서 미국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오바마는 자동차 재협상을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 자동차 3사의 위기는 불공정한 무역 때문이 아니라 약화된 경쟁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전략적 고려가 초당적으로 충분히 반영된, 대(對)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외교적 함의를 안고 있는 한미 FTA를, 미국은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중요성에 비추어 미 의회도 결국은 한미 FTA를 비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 시점은 내년 하반기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야권에서는 기본적으로 미 의회의 상황을 봐가면서 우리도 유연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하더라도 미국측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은 너무 패배주의적이다. 우리가 먼저 비준을 끝낸 다음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하에 미 의원에 대한 개별적인 설득뿐만 아니라 미 재계, 학계, 싱크 탱크, 언론 등에 대한 접촉을 강화하면서 밑으로부터의 여론 조성에 주력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아울러 한·EU FTA를 연내에 조속히 타결함으로써 미 의회를 압박하는 전략도 함께 구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제 관례를 무시하고 미국이 재협상이라는 부당한 요구를 해 온다면, 우리는 주권국가로서 당당히 맞서야 할 것이다.
입력 : 2008.11.14 22:08 / 수정 : 2008.11.14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