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3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실물경기 악화로 이어지면서 자타 공인 세계 1위인 국내 조선산업도 주춤하고 있다. 해외 우량 선주사들도 경영난이 가중돼 신규 발주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취소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대우 등 ‘메이저’ 조선사들의 수주 실적은 ‘제로’였다. 관건은 국내 조선업을 지탱해온 중대형 조선업체들이 어떻게 상황을 타개하느냐에 있다. ‘조선 강국’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황을 이길 이들 업체의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소형 조선업체들은 현금 유동성이 취약해 벌써 직격탄을 맞고 있다. C&중공업은 자금난을 이기기 못해 지난 8월부터 조업을 중단하고 계열사 매각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조선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한국과 중국 등 조선업이 급팽창한 지역을 중심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영증권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2008년 9월 말 현재 전년 동기 대비 수주량이 41%나 감소하며 조선시장 거품이 꺼지고 있다”면서 “장기적 전망도 어두워 조선사 간 M&A 같은 구조조정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한진, 필리핀 공장 내년부터 본격 생산 궤도에
하지만 업계에서는 분석기관들이 발표한 조선업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조선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대형 업체들의 경쟁력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력과 특화 전략을 통해 각 업체가 불황을 타개할 대안을 확보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선박·해운의 수요 또한 신흥 경제4국(BRICs)이 7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10%에 머물러 있다. 조선협회 한종협 본부장은 “미국발 각종 위기가 브릭스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조선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덩치는 작지만, 그만큼 유연한 게 무기다.”
국내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한진중공업은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우리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필리핀 수비크만에 대규모 조선공장을 신설한 한진중공업은 조만간 6개의 초대형 도크를 갖춘 메이저 조선사로 부상할 전망이다. 올해 첫 배를 진수한 필리핀 한진조선소는 내년 초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간다.
특히 한진은 기존 업체들이 5% 안팎의 영업이익을 보고 수주계약을 맺는 것과 달리 12% 선의 수익이 가능한 발주 계약만 체결해왔다. 선별적 수주를 해온 것은 우량 조선사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경기 악화로 이같은 ‘프리미엄’ 전략에 다소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슬림화된 체질 탓에 대응의 유연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팀장은 “창사 70주년을 맞은 조선사로서 기술력과 노하우가 충분하다”면서 “1년에 20척만 수주하면 경영에 무리가 없을 정도라서 이번 침체기를 극복하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SPP조선 - “PC선 기술력 세계 최고” 3년치 물량 확보
STX조선 - 올 8월 인수한 아커야즈를 유럽 거점으로
경남 통영 안정공단에 있는 SPP조선의 경우도 중형 선박만을 특화해 수주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 결과 5만~11만톤급 PC선(제품 운반선)의 경우, SPP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SPP는 경쟁사에 비해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경기에 민감하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200척 수출을 달성하는 등 중견 조선사로서 입지를 굳히며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큰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게 SPP 측 설명이다. SPP조선 엄관영 과장은 “이미 3년치 수주물량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며 “불황기를 어느 정도 예측해 왔고, 그에 대한 방안으로 원가관리 등을 해왔다”고 말했다.
조선사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설비투자만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경험과 노하우가 조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국내 중대형 조선업체들이 메이저 조선사의 최고경영자를 잇따라 영입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외 선주사들도 최고 경영력을 갖춘 CEO와의 거래를 선호하고 있다. SLS조선은 삼성중공업 생산총괄 전무 출신의 최동수(59)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했고, 성동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CEO 출신인 유관홍(63)씨를 영입해 사세를 키웠다. SPP조선은 한진중공업 출신 황민수씨를, 21C조선은 삼성중공업 등을 거친 황계주(56)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하는 등 후발 조선사들의 전문가 영입전도 뜨겁다.
해외 유력 조선사를 사들여 국제 경쟁력을 키운 STX조선은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 생산능력을 갖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STX는 지난 8월 노르웨이의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했다. 아커야즈는 독일·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8개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어 STX의 유럽 거점기지로 역할하게 됐다.
STX의 장점은 ‘스케줄링’ 노하우에 있다고 한다. 선박 건조 공정 사이의 시간을 최소화하는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STX 박한규 팀장은 “경기침체기라고 해서 강제로 인력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비용을 줄이고 장기 투자를 보수적으로 가져가는 등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조선 - “기술만이 살길” 설계 인원 대폭 보강
SLS조선은 지난 8월부터 임원 경비의 30%를 절감했고 통제가 가능한 경비 또는 판공비도 크게 줄였다. 조선 경기 악화에 따른 감량 경영의 하나다. SLS는 후발 조선사들이 대형 선박 위주로 수주하는 것과 달리 중견 조선소 특화 전략을 내걸고 4만5000~5만2000톤급 선박에 대한 수주 및 연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SLS가 건조하는 선박의 규모는 대부분 중형급이다. 지난 10월 10일부터는 ‘77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2008년이 77일 남은 시점에서 ‘선박 7척을 진수하고 7척을 인도하자’는 운동이다. 200여명의 설계사를 비롯한 전체 직원들이 동참해 전사적 위기 극복에 나선 것이다. SLS조선 김상주 과장은 “중견급 조선소로서 이 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앞으로도 큰 배를 만드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SLS는 2011년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도 500여명 수준인 설계 인력을 대폭 보강할 계획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수주전이 가열될 것으로 보고 기술력을 키워나간다는 방침이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조선산업은 30여년 동안 노력한 끝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가 됐다”면서 “경기가 조금 호전된다면 중국과도 기술력이나 국산화 등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에 여전히 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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