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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반 토막'의 저주

화이트보스 2008. 12. 13. 11:02

'집값 반 토막'의 저주
차학봉·산업부 차장대우 hbch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차학봉·산업부 차장대우
전 세계를 신용경색과 디플레이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발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집값 급락이다. 집값이 반 토막 난 지역이 속출하면서 발생한 주택담보 부실과 가계부도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 경기 침체를 초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위기 해소 여부는 일차적으로 미국 집값이 바닥을 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집값 하락이 계속 이어질 경우, 금융부실과 가계 부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집값 하락이 촉발한 금융위기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을 비롯해 영국·스페인·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중국·러시아 등 지난 4~5년간 집값이 치솟았던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과 비슷한 위기 구조를 갖고 있다. 전 세계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던 '저금리→집값 상승→소비 증가→경기호황'의 선순환이 '집값 하락→대출 부실→금융위기→신용경색→내수침체'의 악순환으로 돌변,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특히 현재의 글로벌 동시 집값 하락과 불황은 역사상 초유의 사태이다. 자유무역과 글로벌경제로 인한 경제호황이라는 '축복'이 글로벌 동시 불황이라는 '공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선제적이고 충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친 것 같은' 극단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집값 급등으로 노심초사하던 영국이 주택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주택 구입자에 대한 저리 융자와 감세혜택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집값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와 조세 제도를 도입하던 중국도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천문학적인 건설경기 부양정책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가 경제위기의 공포에 빠져 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글로벌 위기에 둔감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집값이 하락해야 국가 경쟁력이 좋아지고,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이 쉬워질 것'이라며 집값 반 토막론을 주창하고 있다. 야당도 집값이 오를 수 있다며 주택 경기 부양책에 대해 부정적이다. 정부는 "향후 주택공급 부족에 의한 집값 상승이 우려된다"며 엉뚱하게 공급 확대정책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 하는 듯한 시각이 있는 것은 "우리 경제는 건강한데, 미국 잘못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식의 사고가 한몫 하고 있다. 하지만 집값 버블이 전혀 없었던 일본조차도 올해 파산한 상장기업 수가 전후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세계 경제는 연결돼 있다.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 집값 반 토막은 서민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공포와 저주이다. 미국에서 알 수 있듯이 집값 반 토막은 무더기 가계파산, 금융위기, 연쇄 기업부도, 대량실업을 초래한다. 투기꾼, 다주택자, 부유층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떨어져야 하지만 하락 속도와 폭을 조절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오늘의 미국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신속하고 과감한 집값 연착륙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부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서민을 위해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