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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李光耀)가 보는 한국

화이트보스 2008. 12. 19. 09:03

리콴유(李光耀)가 보는 한국
성장·개발 노하우는 강점
反외자 정서는 경계해야
현홍주·前주미대사

▲ 현홍주·前주미대사
싱가포르는 인구 400만에 불과한 도시국가이지만 국가 경쟁력, 기업 환경, 투자 환경에서 세계 1~2위를 차지하는 강소국(强小國)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미 금융중심지로 자리 잡은 이곳에 아시아 지역의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다 한다. 1965년 독립하기 전후부터 이 나라를 이끌어온 사람은 리콴유(李光耀) 총리. 지금은 85세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하나 '스승 장관(Minister Mentor)'이라고 불리면서 아직도 이 나라 국정의 중심에 서 있다.

얼마 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세계 금융계·기업계·정치계 인사들이 이 도시에 모여 현 상황을 진단하고 위기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는 모임이 있었다. 한국의 참석자가 회의를 주재한 리콴유 전 총리에게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방향,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물었을 때 리 전 총리의 답은 명쾌했다.

"한국은 중국이 아직도 갖추지 못한 몇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다. 첫째, 지난 50년 이상 대외지향 경제를 운영하면서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이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중국이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둘째, 한국이 구축한 기업인·정치인·학계·문화계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는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질 수 없는 중요 자산이다. 셋째, 시장경제 운용에 필수요소인 투명성(transparency)· 책임성(accountability)·법의 지배(rule of law) 등에 있어서 한국은 분명히 중국에 앞서 있다.

이 밖에도 한국 경제의 강점은 많다. 다만 한 가지 한국이 유념할 것은 때때로 표출되는 반(反)외국인 정서, 반(反)외국 자본 분위기이다. 이것이 계속되는 한 한국의 많은 장점은 빛을 못 보게 된다. 한국이 강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단점을 보완해 나아가면 국제사회의 신뢰가 튼튼해질 것이고 한국은 국제 경쟁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어찌 보면 너무 타당한 말이고 새로울 것도 없는 처방이다. 하지만 평범한 그의 말에 진리가 들어 있다.

요즈음 우리는 세계를 휩쓰는 금융·경제 위기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부 나름대로 사흘이 멀다 하고 각종 대책을 쏟아낸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에서 혹시 눈앞의 불 끄기에 바쁜 나머지 우리 경제의 큰 틀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많은 국내 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던 기억 때문에 외국 자본에 대해 새로운 장벽을 치거나 국내 자본과 차별적 대우를 하려는 시도는 없는지, 제도 개선을 위해 법과 규정을 만들면서 오히려 투명성이 떨어지게 하는 사례는 없는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직역(職域)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미래 성장산업의 진입을 막으려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미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조건 수용 추종하는 것은 현명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역시 무모한 짓일 것이다.

어차피 현재의 경제위기는 언젠가 고비를 넘기고 우리나라는 다시 성장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공사례로 만든 나라 운영의 기본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아야 한다.

리콴유 전 총리의 충고는 지금까지 우리 경제 발전의 기본동력이 되었던 우리의 강점(强點)을 더 튼튼히 하고 약점을 보완하라는 간명한 것이었다.

1979년 10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두 가지 조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주의자와 협상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위험하고, 카터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로 막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이 '아시아의 현인(賢人)'은 평범한 사리(事理)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