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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않고 12년간 연구… 뇌종양도 그를 놓아주다

화이트보스 2008. 12. 20. 10:54

수술 않고 12년간 연구… 뇌종양도 그를 놓아주다
내년 2월 퇴임… 서울대 종교학과 금장태 교수
투병 중에도 해마다 3권 이상 연구서 집필
각종 학술상 받아… "젊은시절 낭비 후회돼"
책읽는 압박감 벗어나려 도서관에 책 보내
최보식 사회부장 congch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12년간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해마다 3권 이상씩 연구서를 펴낸 서울대 종교학과 금장태 교수. 그는“좋아서 공부하는 것인데, 병을 앓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으로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내가 좋아서 공부를 하는 것인데 병(病)과 연관해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학자는 자기가 공부한 걸로 의미가 있어야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으로 화제가 되면 엉뚱한 자리에 서 있는 것과 같다. 병과 관련된 얘기라면 시작부터 안 하고 싶다."

내년 2월 정년 퇴임하는 서울대 종교학과 금장태(琴章泰·64)교수는 썰렁한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해마다 3권 이상 연구서를 집필해왔고, 올해에만 5권을 저술했다. 그가 받은 서울대 학술연구상, 유교학술상, 다산학술상, 퇴계학국제학술상 등은 그가 이룬 학문적 성취의 편린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이 모두 그가 뇌종양을 앓으면서 투병(鬪病)과정에서 이뤄졌다. 12년 전이다. 1996년 안식년을 맞아 건강검진을 했을 때, 이 병이 발견됐다. 당시 코를 통한 내시경 수술로 종양 일부를 제거했다.

하지만 그는 두개골을 절개하는 2차 수술을 받지 않았다. 학문 연구에 지장이 있을까봐,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말도 들렸다.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이 미화(美化)되는 것을 특히 참지 못했다. "참 민망하다. 제발 그런 얘기는 안하고 넘어갈 수 없나"라고.
"공부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그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종양 제거하고 나서 다시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 얘기를 듣고 겁이 나서 못한 것이다. 수술 과정에서 뇌(腦)를 건드려 잘못될 수도 있고…. 여하튼 수술을 받지 않았는데 그 종양 세포의 진행이 느려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우린 누구나 살면서 어떤 불행을 겪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난 마음 편하게 '이만하길 다행이다'하고 여겨왔다. 사실 내가 내색하지 않아, 학생들도 내 병에 대해 전혀 몰랐다. 나도 병을 잊고 살았고."

하지만 그는 정년이라는 마감시간에 맞춰, 쫓기듯이 저술 작업을 해왔다. 갈수록 시력이 심하게 쇠퇴하고 생각의 집중에 곤란을 느껴온 것이다. 그는 "가능하면 은퇴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무리를 지어보자는 생각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실은 텅 비어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한 대, 대형돋보기, 경전복사본이 전부였다. 그리고 간이의자 대여섯 개. 유일하게 남은 책장 한 개에는 책 몇 권만 달랑 꽂혀있다.

"한때 연구실 안에는 책들이 담과 골목을 만들 정도로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런데 내 병을 알고 난 뒤 '허황된 욕심으로 책을 모아 놓았을 뿐 실제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책을 모아 놓았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치 책한테 빚진 기분이었다. 책을 안 보고 혼자 쌓아 놓고 있느니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도서관에 책을 두는 것이 좋지 않나 해서 보냈다. 필요하면 내가 가서 빌려본다."

그는 "솔직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자유롭고 편하게, 비운다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왜 책을 쓰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몸의 병을 생각하면 이런 연구활동도 가끔은 덧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공부하는 삶 속에서 내가 사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산악인들이 아주 위험한 고산을 등반하는 것도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고 동상(凍傷)이 걸릴지 모르는 위험이 있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일을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공부하는 것도 어떤 비장한 각오에서라기보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선생께서는 어떤 역사적 인물을 좋아하는가?

"유학을 전공한 내게 매력적인 인물은 다산 정약용과 퇴계 이황이다. 다산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개척해볼까를 고민했다. 분투하는 인물은 늘 감동적이다. 반면 퇴계에게서는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내면을 심화시키고 인격적으로 자신을 통제해나가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나?

"젊은 시절을 낭비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다른 삶은 모르겠다. 지금 하는 공부를 낭비하지 않고 철저히 하고 싶다. 내가 그만큼 세상 경험이나 관심이 좁아 그런지 모르겠다."

그에게 정년 퇴임의 소회를 묻자, "책임에서 벗어나고 자유롭고 홀가분한 심정"이라고 했다.

―공부도 습관 아닌가? 정년을 한 뒤에도 똑같이 생활할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런 위험은 있다. 그런데 나는 심각한 한계에 와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책을 쓰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제는 아주 짧은 한시나 고전의 한 구절을 읊고 음미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입력 : 2008.12.20 03:13 /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