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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이 조양강에서 동강이란 이름을 얻기 시작하는 지점인 광하교에서 동강변을 따라 1km 남짓 내려가면 강 건너편으로 수직단애를 드러낸 크고 작은 기암봉 능선이 전개된다. 마치 이제 동강 절경이 시작됨을 맛뵈기로 알리기라도 하는 듯한 풍경이다. ‘맛뵈기’로 비유한 것은 이 기암능선의 규모가 언뜻 보기엔 거대 암릉에서 잘라내버린 자투리인양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강 수면에서 이 암벽 위까지의 수직고는 낮게는 100m에서 200m에 이른다. 뭇사람이 그곳에서의 조망에 찬탄해마지 않는 백운산 남릉의 ‘동강 전망대’와 실은 같거나 더 높은 높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달리 말하면 나팔봉은 동강 전망대에서 전망대로 연이어진 절경 산행지일 수 있다.
11월 초 찾아 오른 나팔봉은 그런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해 주었다. 8폭에 12폭을 더 보탠 듯한 병풍 절벽으로 연이어진 암릉 곳곳에서 짙푸른 동강 물줄기가 몸을 드러내보였다. 상봉은 또한 해발 693.4m란 만만찮은 높이로 불끈 솟아, 전체적으로 하나의 산을 온전히 이루었다.
- ▲ 나팔봉 북동릉의 기암봉 위에서 바라본 나팔봉 정상과 동강 물줄기. 저 앞 귤암리쪽으로 내리뻗은 능선의 기세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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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봉이란 이름은 상봉이 흡사 나팔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모양새라 하여, 혹은 임진란 때 전씨 일가가 이 봉 중턱에 있는 동굴로 피신했다가 난이 끝난 뒤 나팔을 불며 나왔다고 하여 나팔봉이라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엔 ‘날입봉’이란 엉터리 지명이 표기돼 있다. 한때 지형도에 ‘喇叭峰’(나팔봉)이라 한자로 표기한 적이 있는데, 그후 그것을 한글 표기로 다시 바꾸는 과정에서 날입봉이라 잘못 읽은 것 같다. 주민들은 수리가 날개를 편 형상이라 해서 수리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팔봉은 현재 정선군 산림과에서 등산로 개설ㆍ보수작업이 한창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강변을 따르는 북동릉, 남릉, 그리고 서쪽 양치고개 세 방향으로 가파른 곳엔 목제 계단을 놓고 절벽엔 난간을 세우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정상 북서릉의 급경사 구간에 목제계단 설치는 이미 끝난 상태이며, 11월 중으로 등산로 안내판 설치작업을 모두 마칠 것이라 한다.
- ▲ 병방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나팔봉 능선. 오른쪽의 쐐기꼴 능선 끝을 잡아 주능선까지 오른 다음 기암능선을 오르내리며 서진, 한 가운데 좌우 대칭형으로 불끈 솟은 피라밋형의 나팔봉 정상에 오른 다음 오른쪽 인삼밭으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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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해본 결과 가장 권할 만한 산행로는 광석교~배수구~490m봉~정상~양치~망하 마을~광석교에 이르는 원점회귀형 산행이다. 총 산행거리가 약 8km로 계봉보다 조금 짧은 정도이지만 극심하게 가파른 구간이 정상 북면길 단 한 곳뿐이어서 산행 시간은 계봉보다 짧은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 북사면 길이 워낙 가팔라서 겨울에 빙판이 졌을 때 하산하기는 극히 위험해 보인다. 또한 북서릉 끄트머리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하산을 시작해야 할 지점(좌표 N 37 21 17.9 E 128 37 03)을 찾기도 까다롭다. 그러므로 산행 방향은 위에 이른 대로 따르는 것이 좋다. 정상에서 남동쪽 귤암리로 능선길을 타도 좋으나, 이렇게 하려면 누군가 귤암으로 차를 돌려대야 한다.
두 군데 멋진 동강 조망처 있어
- ▲ 나팔봉 북사면에 최근 개설된 통나무 계단길. 겨울에 빙판이 졌을 때 이 길로 하산하기는 위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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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하교에서 평창 방면으로 500m쯤 가노라면 왼쪽에 광하주유소가 있다. 차량을 가져갔다면 이곳에서 얼마간 주유 후 주유소에 하루 주차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그외 근처에 별달리 주차할 공간이 없다. 길 건너의 주유소로 가려면 100여m 더 가서 광석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한 뒤 차를 되돌려 오도록 한다. 혹은 망하 마을 드는 길 입구의 다소 넓은 곳, 아니면 평창쪽으로 더 500여m 더 가서 상평 마을 안에 차를 세우고 되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주유소에서 광석교쪽으로 가노라면 광석교 직전에 왼쪽 아래 강기슭으로 내리막 콘크리트 포장길이 뵌다. 이 길로 내려가서 차단기를 지나 강변 자갈밭으로 내려서서는 자갈밭 가장자리를 따라 200m쯤 가면 눕힌 디귿자( 줼)형의 수로 끝부분이 나온다. 이 수로 끝 왼쪽 샛길로 하여 수로 옆을 따라 100m쯤 거슬러 오르면 왼쪽으로 붉은 리본이 매인 능선길 초입부가 나온다. 혹 리본이 없어졌다고 해도 족적이 뚜렷하므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왼쪽 가파른 절벽지대와 오른쪽 완경사면 사이의 지능선 등날을 따라 곧장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주능선을 100m 남짓 남겨둔 지점의 능선에 정선전씨 묘가 한 기 있다. 일단 주능선을 만나면 길이 뚜렷하고 능선으로만 이어지므로 길 잃을 염려가 거의 없다.
주능선에 오른 이후 100m쯤 가면 지름 1m쯤 되는 구멍이 휑하니 뚫린 ‘바람굴’이 주능선 상의 첫 지표물로서 길옆에 뵌다. 길은 능선을 따라 기껏해야 표고 30~50m 정도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왼쪽은 마치 반으로 뚝 쪼갠 듯 가파른 절벽으로 연이어지므로 주의한다.
절벽쪽으로 고개를 빼면 어디든 동강 물줄기 주변 풍경이 바라뵈지만 그중 특히 빼어난 조망점이 두 군데 있다. 능선길을 가다 이곳에 다다르면 저절로 걸음이 멈추어지게 되며, 두 군데 모두 여럿이 모여 앉아 쉴 만한 곳이다.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선 상봉 턱밑으로 다가든 이후 길은 우사면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들어가다가 곧 급경사 계단길로 변한다. 둥근 통나무로 좁게 단을 지은 길을 150m쯤 오르면 이윽고 서릉 상의 오랜 능선길로 올라선다. 이후 넓적한 능선 가운데 길로 100m쯤 오르면 정상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선 정상에 오르면 지나온 바위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 ▲ 나팔봉 정상.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으며, 주변 조망을 위해 잡목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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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서릉길로 한다. 아까 오른 계단길 끝지점을 그대로 지나쳐 능선길을 계속 따른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기저기 서서 숲속 공간이 시원스런 기분 좋은 능선길을 800여m 내려가면 임도가 지나는 양치 고개다. 양치에서 방향은 오른쪽. 숲이 울창하여 일부러라도 걷고 싶은 임도가 산록의 인삼밭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진다. 인삼밭 사이 콘크리트 포장길로 내려가면 ‘비행고갯길’, ‘망하길’안내판이 붙은 전봇대가 선 곳으로 나서며, 그후 정선읍내쪽으로 3km쯤 걸으면 출발점인 광하주유소다.
나팔봉은 정선군이 우정 등산로 개보수를 하는 만큼 연중 등산이 가능하게끔 개방할 예정이다. 다만 산불예방기간에는 정선군 산림과(전화 033-560-2330)로 미리 입산 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 정상 산불감시초소엔 감시원이 낮동안 상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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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ㆍ숙박은 계봉 르포 160p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