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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신년사> 南에는 '경직', 美에는 '유연'

화이트보스 2009. 1. 1. 10:29

<北신년사> 南에는 '경직', 美에는 '유연'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9.01.01 10:04



"통미봉남 전략 확연"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한 정부에 대해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험구로 일관한 반면 이달 말 출범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선 '비핵화' 협상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년사격인 공동사설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6.15통일시대와 더불어 활력있게 전진하던 조국통일운동은 지난해 남조선 보수 당국의 집권으로 엄중한 도전에 부딪치게 됐다"며 "우리는 역사적인 북남 공동선언들에서 탈선하는 그 어떤 요소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두 선언의 이행 없이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올해에도 남북 어느 한쪽의 결단이 없는 한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12월31일 통일부 업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어설프게 시작해 돌이키기 힘들게 만드는 것 보다는, 어렵지만 제대로 시작해 튼튼한 남북관계를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린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한 신년 공동사설의 남북관계 대목은 이 대통령의 이러한 말에 '대구(對句)'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올해 경제난으로 어쩔 수 없이 남북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본 북한의 대남기조는 작년 한해의 완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은 지난해 신년공동사설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사실에 대해선 침묵했으나 대남 단골 비방 메뉴인 '반한나라당', '반보수' 등의 표현조차 자제한 채 두 선언의 이행에 대한 기대만 나타냈다.

이에 따라 당시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반한나라당, 반보수 대연합과 같은 비판이 사라진 데 대해 긍정 평가한다"며 "북측의 유연한 반응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현한다"는 반응까지 내놓았었다.

그러나 올해 북한의 공동사설은 비록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북남대결에 미쳐날뛰는 남조선 집권세력의 무분별한 책동" 등 거친 표현들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남한 국민들에게 "숭미사대주의와 동족에 대한 적대의식에 사로잡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반통일 세력"과 "사대매국적인 보수 당국"을 반대해 투쟁할 것을 선동하기도 했다.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남한 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 표현을 사용한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엔 없던 일이어서 이명박 정부와의 대립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동사설은 특히 군사분야를 다룬 대목에서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사회주의 제도를 건드리는 자들에 대한 인민군대의 입장은 단호하다"며 "우리의 총대는 원수들의 그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주장해 남한 정부의 대북 인권문제 제기와 군사력 강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등에 대해 나타냈던 위협을 되풀이했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 실장은 "북한은 지난해 공동사설에서 남측 정부에 대해 직접적 비난을 삼가고 남북경협의 기대를 가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이명박 정부를 파쇼독재, 반통일 세력 등으로 비난했다"며 "남측의 대북 기조의 변화가 없는 한 지금의 대남 강경 입장을 고수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공동사설이 남한에 대해선 기존의 강경입장을 고수하면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면 미국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나마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화 입장을 나타냈다.

공동사설은 대미관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작년과 달리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정당성은 날이 갈수록 더욱 힘있게 과시되고 있다"고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 문제를 언급했다.

작년에는 북한에 "우호적인 모든 나라와 친선협조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일반적인 대외정책만 언급한 것에 대비된다.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핵문제를 언급한 것은 2004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표명한 것과 2006년 핵실험 후인 2007년 "우리가 핵억제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패의 국력을 갈망해온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실현한 민족사적 경사였다"고 주장한 게 전부다.

이에 따라 올해 비핵화 언급은 이달 20일 출범하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를 향해 핵협상 의지를 밝히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북한의 '기대'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전후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북한 고위 관계자의 방미 추진, 작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뉴욕을 방문한 리 근 외무성 미국 국장과 오바마 진영의 한반도 정책팀장인 프량크 자누지와 접촉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2008.12.12)는 "조미(북미) 관계의 청산으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조선(북한)의 목표는 확고부동하다"며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된 이후도 (행동대 행동) 원칙에 기초한 (북한의) 대담한 외교적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미 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이같은 적극적인 의지는 '통미봉남' 전략으로 남한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포함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 출범 직전에 던질 수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공동사설"이라며 "공동사설에서 비핵화 언급은 핵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오바마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상하자는 표현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또 "북한은 동북아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나 안보문제에 적극 참여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근식 실장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입장을 지켜보되 오바마 행정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올 경우 북한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며 "대남.대미 기조에서 확연한 통미봉남의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h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