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주산, 현무봉에서 낙맥된 산줄기가 묘터를 정확하게 작혈

화이트보스 2009. 1. 15. 13:46

[풍수기행]주산, 현무봉에서 낙맥된 산줄기가 묘터를 정확하게 작혈

[풍수기행]<15> 명문가를 일으켜세운 烈女
光山金氏중흥터전 일군 양천 許氏부인(중)
‘천하대지는 하늘이 땅에 비밀스럽게 숨겨 둬’
정교한 통맥 진혈 핵심에 안장, 절로 감탄사
밖에서 육안으로 살필수 없는 기세등등한 맥


 


김극뉴를 비롯한 그 후손들의 산소가 줄지어 자리잡은 묘터는 마흘리 동구밖 길목에서 육안으로도 훤히 볼 수 있다.

용마초등학교에서 100m쯤 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마흘리로 진입하는 농로를 따라 마을에 도착한다. 다시 마을뒤 제실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다가 좌측 비탈길로 오르면 명터 천마시풍형의 혈장(穴場)에 다 다르게 된다.

산도에서 보듯이 제일 상단에서 3번째의 산소가 김극뉴의 묘이고 가장 위에 자리한 묘소가 남원 감찰을 지냈으며 이 혈을 찾아서 점혈했다는 김극뉴의 장인 함양 박씨와 그 부인이 합장 돼 있다. 또 그 바로 아래의 산소가 박씨의 딸이자 김극뉴 부인의 묘이다.

그리고 혈장 상단의 3개의 묘소중 제일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묘소가 김극뉴의 산소이자 이 혈장내에서 가장 중심이며 핵심의 진혈처가 되는 자리라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곳 명당 자리는 본래 함양 박씨의 소유였다고 한다. 김극뉴의 부인 박씨 묘가 뒷편에 자리잡고 있어 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부인 박씨는 김극뉴보다 17년 앞서 타계 했는데 그 친정 아버지이자 당시 남원 감찰을 지낸 함양 박씨는 관직에 봉직하면서도 틈틈이 풍수지리학 연구에 몰두해 전북 3대 지사로까지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러자 외손의 번성을 기약하기 위해 이렇게 유명한 천하대지를 사위에게 내 주면서, 그 중심의 진혈처 핵심에는 사위 김극뉴 산소자리로 소점해 두고, 본인과 부인의 묘소는 상단에 정해 합장하게 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이 명당음택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해가 가고도 남겠지만 큰 혈터를 만들게 되는 이곳의 국세는 크고도 장엄하다.

호남정맥이 내장산맥과 백암산, 백학봉, 곡두재와 감상굴재, 대각산, 금방동 하령을 건너 추월산, 천치재를 지나 강천사로 유명한 강천산(583.7m)을 만든다.

호남정맥은 산성산과 광덕산을 거쳐 옥과의 설산을 지나 광주 무등산으로 기복 비룡해 가고 강천산에서 동쪽으로 분맥한 한 산맥이 무리산(557.5m)과 순창에서 임실로 가는 27번 국도 갈재를 지나 마흘리 용마산 뒷쪽 장덕산을 일으켜 세운 다음, 거기에서 짧게 낙맥 과협한 용맥이 천마시풍형의 주산 용마산을 멈춰 세웠다.

주룡맥과 주산이 강한 만큼 이 혈을 둘러싼 사신사(四神沙·현무 청룡 백호 조·안사) 모두 크고 장엄해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풍수지리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용마산에 올라가서 혈장 쪽으로 급하게 경사를 이루며 내려 쏟는 맥락의 기세며 그 기맥에 깃들어 있는 바위와 암반 등 소나무 숲에 가려서 바깥에서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조악하고 기세등등한 래용맥에 놀라게 된다.

그처럼 기세가 강하게 급경사로 내려 쏟는 산맥이 과연 주산 바로 아래쪽에 접근돼 있는 묘터에 혈을 맺을 수 있는 것인가.

이렇듯 의아스럽고 궁금증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심룡(尋龍·혈을 맺으려고 행룡하는 맥을 자세히 살펴서 분석함)에 임해 본 사람이라면 공통된 소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혈처가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기우에 불과함을 확인하게 된다.

급작 조악하던 주룡맥은 묘터를 50~60m쯤 남겨놓고 평맥이 부드러운 맥으로 전변(轉變) 박환하면서 마치 볼록렌즈를 통과한 광선이 초점으로 모아지 듯, 한 곳으로 초점화되면서 벌의 허리와 같다고 하는 속기(束氣·지기를 한곳에 묶음)의 결인처를 만들고, 결인처를 지난 입수맥(혈처를 형성시키기 위한 마무리 용맥)부터는 언제 그렇게 조악했느냐는 듯 다양한 색깔이 황갈색에 섞여서 윤색이 감도는 토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겉흙만 보고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석맥에 토혈의 전형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하겠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묘터를 형성하기 위해 주산, 현무봉에서 낙맥된 산줄기가 묘터를 정확하게 작혈하려고, 그 나아가는 맥의 꺾여 도는(龍脈交度) 형태가 그토록 정교하고, 전광석화와도 같이 빠르게 형성 돼 튼실한 용세를 타고 흘러온 땅의 기운을 혈처에서 감돌게 하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다시말해 용마산에서 급하게 내려 쏟은 용맥이 우선해 90도 가까이 절룡(節龍)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룡하는가 싶더니, 잘룩한 결인처에 이르러 다시 다른 방향으로 살며시 돌아서,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변국된 맥이 기어 오르듯 살며시 솟아 오른다. 이어 좌선으로 꺾여진 그 곳에 김극뉴의 산소가 자리잡고 있어서, 작혈으로 정교한 통맥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면 ‘천하대지는 하늘이 땅에 비밀스럽게 숨겨둔다(天藏地秘)’는 터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어 절로 눈을 비비게 된다.

이렇듯 참된 묘터를 다시 확인하면서 부자간에도 시샘한다는 명당대지의 중심터를 선뜻 사위인 김극뉴의 묘터로 내주고 자신은 진혈을 맺으려고 돌아 꺾어지는 곳을 지나쳐 래룡하는 과맥 가까운 곳에 비껴 안장케 한 박 감찰을 생각해 보면서, 풍수지리에서의 이른바 살신성인(?)의 어려움을 몸소 실천한 그 배려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어떤 풍수연구가가 평하기를 김극뉴의 산소자리는 바로 천마의 기가 가장 많이 응집돼 작용하는 콧구멍이라고 분석하고, 그 하단에 안장된 후손의 묘터에 대해서는 가벼이 언급한 것을 보고, 동호인 입장에서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아 지금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다.

거기에 스민 깊은 뜻이 있을테니 더 이상 언급은 피하려 한다.

물론 중국 주자가 지은 물형풍수서인 ‘산릉의장’이 세간에 퍼져 많이 읽혀짐으로써 묘터나 집터를 사물의 생김새에 비유해 명명한 탓에 매우 흥미를 유발했고 또 빠르게 널리 파급돼 일반화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물형으로 혈을 지칭하고, 또 그 물형에 의존해서 혈의 핵심자리를 찾으려는 허황된 노력이 뒤따랐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물형에서 말하는 말의 콧구멍은 과연 어디 만큼이고, 알을 품는 모양이라는 포란형의 둥주리는 어떤 것이며, 옥토끼가 달을 바라본다는 옥토망월형의 눈은 대체 어디쯤인가를 변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따져 들어가면 십인십색, 백인백색으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물형론은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게 할지는 모르지만 진혈을 찾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 현장에 가면 절로 느끼게 된다.

보다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심룡기법과 심혈의 방법을 정립해야 풍수지리학이 일반화되고 모든 사람에세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두가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기가 서리어 감도는 자리를 찾아내는데 깊은 연구와 격조있는 고민을 해 나가야 된다고 제언해 둔다.

하기야 필자도 명혈대지에 대한 간산을 하고 나면 속으로 느끼고 어설프게 이의점을 제기하는 속성이 발동되기는 매 한 가지인듯 싶다.

앞서 소개한 민 할머니 산소에서 “어줍잖게 상석에 있는 민 할머니 진혈에서 방장산 방향으로 손진맥으로 완만하게 내려간 맥을 밟아보면서 차석의 자리는 없는 것인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갖고 발길을 돌린다”고 언급했던 것이 바로 이런 사례가 아닐까.

그러나 ‘새로운 탐구는 합리적인 회의와 의문점에서 싹이 튼다’는 어느 과학자의 말에 힘입어 용기를 내 보기도 한다. 또 풍수지리학 강의를 통해 학문적 동지애로 맺어진 150여명의 수강회원들의 문제제기와 질문에 응답해야 할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면 나름대로 견해를 밝혀야 한 탓에 절제된 몇 마디로 응대하곤 한다.

조선 8대 명혈대지임이 도선국사의 결에서 밝혀졌으며 특히나 그 혈의 주체가 된 김극뉴의 발음에 의해 광산 김씨가 명문중의 명문으로 번성함으로써 이미 검증된 천마시풍의 진혈에 대해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런데도 7~8회에 걸쳐 이 혈을 다녀오면서 상석의 진혈 핵심에 안장된 김극뉴 선생의 산소에 감탄하고 나서는 거기서 서남쪽으로 비스듬이 내민 북동맥의 연장으로 인해 시누대가 우거진 비탈진 언덕을 돌아다 보면서 상석 아래에 차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궁금증에 사로 잡히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경솔함으로 인한 후회가 남는 것은 아닐까 또 스스로 고민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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