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비룡이 물을 뿜어내는 飛村 황룡이 배를 짊어진 舟山마을”
<25> 명혈대지의 穴名에 따라 지어 부른 地名-순천 비촌(飛村)·담양 주산(舟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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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신앙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공간에 들어서자 20여년전에 봤던 명당의 산도가 그대로 있었다. 반갑기 그지 없었다. 전시코너에는 무등산의 명혈 등 5개소의 명당산도가 짜임새 있게 게시돼 있었으며 왼쪽에 비룡분수형이 자라잡고 있었다. 이제 비룡분수형의 명혈이 인접한 곳에 꽤 큰 마을이 비촌(飛村)으로 불리게 된 연유를 살펴볼 차례다. 그 마을과 주위의 마을을 학군으로 삼아 세워진 섬진강변의 초등학교도 비룡초등학교라 불렀다. 이런 사실을 알고 부터 그 지역 어딘가에 마을이름이나 학교이름과 깊이 연관된 이름난 명당이 자리잡고 있음을 예측했다. 그래서 현지답산 이전에 박물관을 찾았던 것이다.
비록 호남 56대 명혈의 반열에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일지스님과 도선국사의 유산록(결록)에 빠짐없이 실린것을 보면 예사로운 음택명당은 아닐 듯 싶다. 그보다 더 큰 등급의 자리가 아닌가도 여겨졌다.
앞서 소개한 광양 진상면의 비촌마을은 마을이 날아가듯 없어질 것을 선대의 혜안으로 미리 내다보고 지어 부른 예언성 지명인 곳에 비해 이름은 동일하지만 순천시 용림에 있는 비촌은 날비(飛)자가 들어간 명혈대지가 있음을 암시해 주는 지명이라는 점에서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끔 구례 고향길을 가다 순천 용림 비촌마을앞을 지나면서 마을 바로 앞에 하늘 높이 날아 갈 듯 드높게 솟아 있는 비룡봉을 바라보며 비룡분수형의 명당이 과연 어디쯤에 그 신비의 터를 감추고 있는지 궁금하던 터였다. 박물관을 나와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곡성을 거쳐 압록땅을 지나 비촌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결록에 명시된 대로 구례읍에서 서쪽으로 20리 정도의 거리라 예측된 지점이다. 민속박물관의 명당도에도 그 혈에서 구례읍이 동쪽으로 20리라고 적시했다.
탐랑성(목성체의 준봉)으로 높이 솟은 주산의 기상은 가히 대혈의 작혈을 예측할만 했다. 마치 힘찬 물고기가 물길을 헤치듯 내룡한 맥은 수십절을 내려오다가 석암으로 봉우리를 형성하고 마무리 현무봉을 세워 놓았다. 또다시 3~4절을 꿈틀대며 내려오다 흡사 양팔로 혈장을 감싸안 듯 개장을 한 후에 중심맥이 좌선으로 박환하며 교도를 형성하다가 마침내 삼태교구(마무리 용맥이 지기를 서리게 하기 위해서 법칙에 맞게 굽어도는 모습)를 이뤄 대혈을 맺었다.
이는 필자의 견해일 뿐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우선 하나의 가설로 남겨 놓고 넘어 갈 수 밖에 없다. 이만하니까 ‘백자천손에 칠대장상지지’(7대에 걸쳐 장수와 재상이 배출)라고 결록에 명시했을 것이다.
혈앞에 포근하게 평면으로 적당한 넓이로 펼쳐진 내명당(혈 앞의 뜨락)과 이를 포응 하듯 감싸도는 청룡과 백호, 그리고 혈을 둘러싸듯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의 수세는 대지명혈이라는 확신을 갖게했다.
이렇듯 특출한 음택명당을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두고 마을이 형성됐으니 비룡분수형의 비(飛)자를 원용해 비촌이라 이름지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은 그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비룡분수형의 명당 주인은 어느 적덕지가에게 돌아갈 것인가. 세상이 알아주는 선덕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뒤로 한 채 담양 주산리로 발길을 재촉했다.
홍룡부주형(黃龍負舟形·황룡이 배를 짊어진 형국)의 명당 물형중에서 주(舟·배)자를 따서 주산(舟山)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이곳 역시 대지명당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땅이다.
주산리는 주산 마을과 주청마을, 그리고 노안동을 한 행정구역으로 하고 있는 담양군 고서면에 속한 지역이다.
모두 물위에 떠 다니는 배와 관련이 있다.
노동 또한 뱃머리와 관련이 있고 보면 지명을 지을때 이미 이 지역 인근에 배와 관련된 명당이 깃들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결록의 산도에 명시된대로 주산리는 청평소재지로부터 서쪽 10리쯤되는 거리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도에는 ‘이 자리는 백자천손에 백화(과거시험에서 초시 복시 전시를 거쳐 대과인 문과에 합격하면 임금으로부터 어사화를 받는데 기인함) 문과가 연이어 나와 삼공(조선시대의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리’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대지명혈이라면 주룡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사 결과 본혈이 작혈되기 까지 내려온 용맥은 무등산에서 발원해 향로봉, 장원봉, 대봉으로 내려와 도동고개를 넘어 월각산을 지나 대포리봉에서 깃대봉으로 분지시킨다. 그 중 한줄기가 고서면 방향으로 출맥해 117.7m의 주산을 세워 긴 내룡의 매듭을 짓고 사뿐히 내려 앉아 결인처를 만든후 살며시 올라서서 대지의 요건을 갖춘뒤 황룡부주형의 명혈을 짓고는 끝을 맺는다.
마을뒷산인데도 여기저기 혈처가 됨직한 곳에는 어김없이 산소들이 자리잡고 있어 마치 공동묘지가 될 뻔했다고 한다.
결록에 쓰여진 대로라면 진혈은 매우 찾기 어렵다. 왜냐 하면 진혈처는 이미 쓰여진지 오래돼 고총이 일척지간에 자리잡고, 혈구는 지곡(지실이라고도 하고 무등산 뒤의 가사문화권에 자리잡은 양택명당마을)의 정씨 묘가 놓였으니 진혈이 비어 있어도 용사(用事)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아쉬운점은 주산 뒷쪽으로 옛 도로 2차선의 큰 길을 내면서 마무리되는 용맥을 절토해 손상시킨 것이다. 다행히 석맥이 드러나지 않고 절토지점이 결인처인 까닭에 혈맥이 끊기지 않았으므로 황룡부주형의 명혈은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선덕을 쌓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황룡부주형이 배의 형국을 갖췄으니 혈전에 펼쳐진 고서면 창평땅은 결록에 적힌대로 대해평(大海坪) 즉, 드넓은 들을 바다로 보고 혈 뒷편의 주산이 마치 황룡이 짊어진 배와 같이 보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인근에 대지 명혈이 있어 그 물형을 본떠 지역이나 마을이름을 지어 부른 연유를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풀어봤다. 후대에게 국토를 사랑하고 보호하면서 천혜의 땅을 잘 가꿔 질 높은 삶의 보금자리로 요긴하게 쓰라는, 선대의 긴 안목과 끈끈한 애정에 옷깃을 여미어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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