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자료

식초에 대하여

화이트보스 2009. 1. 16. 11:35

 식초에 대하여...

                                        









- 본 자료는 맥스원에서 식초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만든 교육용 자료입니다 -

식초산업의 유래와 변천


[성서에 기록된 식초]

  성서에는 이스라엘인의 지도자 모세의 언어를 기록한 것 중에서 "essiggenus"라는 말이 등장한다. 식초가 매우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Essiggenus의 "Essig"는 오늘날의 독일어로 「식초」를 뜻하는데 고대에 산미료로 포도주가 이용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아비큐스의 요리서」에는 종종 포도주나 신맛이 나는 포도주가 등장한다. 이 신맛이 나는 포도주는 아마 초산발효가 진행된 포도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식초는 로마의 병사들의 음료였다고도 한다. 신맛이 나는 포도주로는 오늘날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노동자가 마시는 「포스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고대에는 이 신맛 나는 포도주를 식초로 불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유태인 율법학자의 구전, 전설 등을 모은 「탈무드」에는 유태인이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여정을 떠날 때, 많은 양의 포도주와 맥주가 식초로 되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식초]

  그리스나 로마시대에는 조미요리가 발달하였고, 오늘날의 서양요리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기원 1세기경의 사람 피키우스가 썼다고 전해진 「요리서」에 의하면 당시, 「칼륨」-그리스어, 혹은 「리구아민」-라틴어 으로 불리어진 어장(생선과 소금을 함께 발효시켜 만든 발효 조미료)이 있었고, 이것은 동남아시아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향신료가 사용되고, 또 포도주나 식초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향신료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장은 가공어패류냄새를 가지는데, 그 향의 주성분은 질소화합물이나 유황화합물이므로 냄새 외에도 산성으로 인해 중화 또는 안정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포도주나 식초는 어장의 냄새를 제거 또는 좋게 할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의 야채 샐러드처럼 야채를 생으로 먹는 것은 이 시대부터 활발했고, 학자에 의해서도 예견되었다. 로마시대 초기의 학자 Cato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의 하나인「농업에 관하여」에서 양배추를 많이 먹을 것을 권장하고, 「양배추는 찌거기나 생으로 먹을 수 있으며, 생으로 먹을 때는 소금을 곁들여 먹으면 소화가 매우 잘되고 설사약과 이뇨제로도 우수하다」고 하였다.  또, 「양배추를 썰고, 씻어, 말려서 소금과 식초로 맛을 내어 먹으면 그것 이상 건강에 좋은 것이 없고, 이 경우에 포도로 만든 식초를 이용하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만약 연회에서 술을 실컷 마시고 싶으면 그 전에 식초로 맛을 낸 양배추를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더욱이 연회 후에도 5,6장의 잎을 먹으면 좋다」고 하고 있다.


  당시 클레오파트라(기원전 69년∼30년)가 안토니우스와 「1회 식사에 100만 시스타세스의 재산을 쓸 수 있을까」하는 내기에서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이미 식초가 진주나 석회암을 녹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증거가 되고 있다.  식초는 고대로부터 많은 질병의 치료제로도 이용되었던 것 같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Hippocrates(기원전 400년)는 식초의 살균작용에 주목, 호흡기병, 옴, 광견병에 물린 상처, 소의 고창병 등의 치료제로 이용하였다.

  또 앗시리아의 의학자는 중이염의 치료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피부병의 치료에 나무재와 식초를 섞은 것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들 중에는 오늘날에도 민간요법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다.

[중세의 식초]

  14세기가 되면 요리에 있어서 식초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져, 육류요리와 생선요리에도 식초는 다른 조미료나 향신료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빵을 식초에 적신 것은 소스류의 농도를 조절하는데 사용 되었다. 14세기의 프랑스요리에서는 식초에 절인 빵에 물냉이 등을 넣은 소스가 「산뜻한 녹색의 소스」로 불려 졌고, 바이네그렛또로도 라고 하며 식전의 샐러드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식초의 살균작용에 대해서도 점점 관심이 높아졌다.

  

  14세기경에 프랑스에서 4명의 도적들이 페스트가 유행하여 죽은 시체가 많은 곳을 유유히 다니며 활동하였는데 그 비결은 식초를 이용하여 만든 음료수를 애용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식초의 미생물에 대한 살균 또는 성장억제 작용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근세의 식초]

  근대에 이르면, 프랑스 요리의 발달과 식초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스터소스, 마요네즈, 샐러드드레싱, 토마토케첩 등의 새로운 복합조미료가 발달하는데, 모두 식초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양질의 식초를 필요로 했으며, 유럽의 복합조미료는 식초에서 파생된 조미료라고 할 정도이다.


  또한,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해양 시대에는 장기간의 항해 동안 신선한 야채나 과일의 결핍으로 비타민 결핍에 의한 질병인 괴혈병이 선원들의 큰 적이었다.  이 밖에도 괴혈병은 전쟁 중이나 긴 모험생활 등에서 관찰되었는데, 그들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섭취하지 못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크리미아 전쟁(1853∼1856년)에서는 프랑스군만으로 23,000명의 병사가 괴혈병에 걸렸다고 하며, 아메리카 전쟁(1861∼1865년)에서는 사망자의 15%가 괴혈병 때문이었다.  16세기는 괴혈병에 대한 방지책이 적극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던 시대였다. 식초에 각종 향신료나 야채 및 과일 등을 절이는 것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시대에는 괴혈병치료에 목적을 둔 「항괴혈병식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신선한 오렌지나 레몬이 없을 때 이용되었다.


  이외에도 식초의 약효에 관해서는 많은 의견과 이용사례가 있었는데, 손트임, 벌레상처, 양치약, 습포 등에 이용되었다.

 

  오늘날에 알려져 있는 식초의 용도는 19세기까지 대부분 나와 있었고, 근대에 와서 식초 산업은 제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포도 재배지역에서는 일찍부터 포도 식초의 제조가 활발하여, 17세기에는 식초의 선진지대로 번창하여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식초로 몰트식초를 만들었으며, 영국에서 식초제조업이 맥주양조업의 부업형태로부터 독립하여 17∼18세기 무렵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또한 옥수수, 당밀, 사탕 등도 이용되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 식초의 제조는 프랑스보다 늦었지만 Schuetzenbach가 개발한 방법은 독일식 방법으로 알려졌고, 독일의 식초 산업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프랑스의 화학자 겸 세균학자인 파스퇴르는 발효, 부패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였으나 초산발효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다.  중세의 신비주의나 권위주의가 붕괴하고 근대에 이르러서 전분이나 당류로부터 알콜을 거쳐 초산에 이르는 식초의 생성과정을 밝힌 것은 현대과학의 확립기에 이르는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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