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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하드코어 룸살롱? 오래 못 갑니다

화이트보스 2009. 1. 17. 17:18

강남 하드코어 룸살롱? 오래 못 갑니다”
최초 룸살롱 주식회사 CEO 김성렬 씨가 본 ‘화류계 변천사’ … 2차는 ‘도우미’가 원해야, 세트 메뉴와 퍼블릭이 대세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삭풍의 계절, 극한의 경제 한파에도 서울 강남 주루(酒樓)의 홍등(紅燈)은 꺼질 줄 모른다. 대한민국 화류계 1번지. 그곳은 지금 등 돌린 손님을 끌기 위해 때아닌 ‘성전(性戰)’이 한창이다. 무릇 불황에는 박리다매가 으뜸. 손님이 서비스를 받는 건지, 서비스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던 최고급 룸살롱들은 하나하나 문을 닫고 있다. 그 대신 값을 대폭 내리고 야한 서비스를 강조한 북창동식 하드코어 업소들이 판을 친다. 최근엔 술은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룸에서 바로 ‘2차’까지 가는 ‘풀살롱’도 등장해 화류계의 물을 흐린다.

이런 상황에 ‘건전 유흥주점’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화류계에선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삼위일체’(박리다매, 좋은 시설, 고급 서비스)를 실현한 업체가 있다. 한국 최초로 샐러리맨 고객들의 소액 투자를 받아 설립된 주식회사형 룸살롱 ㈜GMC(Genuine Membership Club)가 그곳. 강남에서 술깨나 마셨다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강남 보라카이와 옛 보라카이 체인이 GMC 계열 업소들이었다. 지금은 강남 보라카이와 토마토가 이 회사 소속이다.

강남의 새바람 ‘퍼블릭 룸살롱’

GMC 대표는 강남 유흥업계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김성렬(41·사진) 씨다. 1986년 부산의 최고급 요정 웨이터로 업소생활을 시작한 그는 웨이터 생활 13년 만에 강남 룸살롱의 전문 경영인이 됐고, 2006년 7월 GMC를 설립했다. GMC는 주주들에게 매분기 재무제표를 공개하고, 배당을 하며, 주주들은 25% 싼 가격에 계열 업소들을 이용할 수 있다. 그의 명함에는 ‘CEO’라는 직함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1월5일 오후 5시. 강남 보라카이에서 만난 그는 대기업 총수가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듯, 부장과 마담들을 대상으로 그날 상황을 점검하고 서비스 교육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접대문화의 최상층에 있는 전문 서비스맨입니다. 명심하세요. 우리가 최고급의 서비스를 드려야 그쪽도 우리를 전문직업인으로 대합니다. 당장 매출을 올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고객이 만족해서 스스로 다시 찾는 업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은 특히 신년 회식이 많으니 분위기를 띄워야 합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아가씨는 웬만하면 (룸에) 넣지 마세요.”

김 대표가 강남 유흥가에 ‘무서운 청년’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0년 전인 1999년. 웨이터 생활을 청산하고 룸살롱의 경영 대표가 된 그는 당시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먼저 업소에서 도우미 아가씨들을 가게에 묶어놓기 위해 빌려주는 고리(高利)의 대출금, 이른바 ‘마이킹’을 완전히 없앴고, 마담이 도우미의 봉사료 중에서 떼는 공제금을 20%대에서 9%로 크게 낮췄다. 도우미가 받는 봉사료가 10만원이면 마담 수수료가 2만원에서 9000원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 ‘예쁘고 잘 노는’ 아가씨들이 그의 업소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업소의 ‘수질’이 전국 최고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

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상류층, 고위층 위주의 접대 장소이던 강남 룸살롱을 샐러리맨도 접할 수 있는 대중 업소로 바꿔놓았다. 도우미 봉사료를 포함해 1인당 25만원이면 최고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룸살롱 가격 구조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 고급 룸살롱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이지만 서비스 수준은 그 이상이었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 강남 화류계의 최상층을 구성하던 ‘텐프로’‘점오(15%)’‘클럽’ 등 최고급 룸살롱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후 그가 만든 신개념 세트 메뉴와 아가씨 서비스 시스템은 ‘퍼블릭 룸살롱’이라 불렸고, 지금은 강남 룸살롱의 대세를 이룬다.

당시 그가 만든 세트 메뉴는 양주 1병에 안주와 음료수 무한 제공 기준으로 25만원이었다. 술을 1병 더 시키면 22만원으로 떨어졌고, 3병째 시키면 18만원으로 내려갔다. 손님 2명이 아가씨 둘을 부르고 양주 세트 1개를 먹으면 총가격은 45만원으로, 1인당 25만원도 채 안 됐다. 서울 강북의 고급 바, 강남의 웨스턴 바에서 먹는 술값이면 최상급의 룸살롱 접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위 ‘2차’ 문화도 싹 바꿨다. 2차를 나갈 것인지 아닌지는 아가씨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2차를 나갈 의사가 없는 아가씨는 팔에 링을 차고 룸에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 구분이 된다. 마담에게 떼이는 수수료가 적은 데다 2차를 나가지 않아도 되니 텐프로 룸살롱 등에 있던 미모의 아가씨들이 그의 퍼블릭 업소로 모여들었다.

당시 이런 시도는 룸살롱 업계에선 쿠데타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퍼블릭 시스템 때문에 벼랑으로 몰린 최상급 룸살롱은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느라 바빴지만, 위기에 몰린 룸살롱 전주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해댔다. 그는 망해가는 업소의 전문경영인으로 스카우트되면서 가는 곳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그때부터 ‘유흥 컨설팅의 귀재’ ‘룸살롱 대중화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연예전문지에 칼럼을 쓰기도 했고, 스포츠 신문들에서 경영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때는 ‘유흥 컨설턴트’라는 명함도 갖고 다녔다.

김 대표는 2개의 룸살롱과 웨스턴 바를 거느린 CEO지만 여전히 23년 전 웨이터 생활을 할 때처럼 흰 와이셔츠와 검은색 바지 차림으로 룸에 들어가 서빙을 한다. 단골이 아니면 그가 사장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손님은 왕이며 손님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념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유흥 컨설턴트이자 전문 CEO

“용산공고 3학년 2학기 때, 그러니까 1986년 9월쯤 산업체 연수기간에 친구를 따라 부산에 내려갔다 친구의 친척이 운영하는 요정식 룸살롱 웨이터로 취직했는데, 그곳 대마담이 전설적인 인물이었어요. 국회의원, 지방경찰청장, 보안대장 등이 손님이었고 팁이 10만원이었어요. 엄청난 액수였죠. 그때 서울 아가씨를 구하러 번화가를 뛰어다녔는데, 괜찮은 아가씨를 발견하면 몇 시간씩 따라다니며 꼬드겨서 결국 다음 날 출근하게 만들었어요.”

김 대표는 1990년 서울로 올라왔는데 당시는 80년대 성업하던 서울 종로의 룸살롱들이 강남으로 대거 이전하던 때였다. 여성 접대부를 고용할 수 있는 유흥주점(룸살롱, 나이트 등)의 허가가 묶여 권리금이 수억원에 달했고, 주류 판매 시간이 자정까지로 제한돼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엔 룸카페가 유행했어요. 업소 중앙에 테이블이 있고 룸은 몇 개 안 되는, 요즘 일반음식점 같은 업소의 업주들이 불법적으로 경영하는 럭셔리 바 같은 곳이었죠. 그때 아가씨들은 참 재주가 많아서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뤘어요. 정(情)도 많고 뒤처리도 깔끔하고. 하지만 겪어보니 역시 ‘쿨’한 아가씨가 고객이나 업장 모두에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통 룸 문화가 확립됐고 2000년대 들어선 텐프로, 점오, 20프로 같은 최고급 룸살롱이 유행했죠. 누구나 다 흥청망청할 때니까요. 그땐 정말 주류(主流)층 사람들만 이용했는데, 제가 퍼블릭 시스템을 만들면서 강남 룸살롱에 비로소 샐러리맨들 같은 진짜 ‘주류(酒流)’들이 오게 됐어요.”

1980년대의 룸살롱과 2000년대 룸살롱(오른쪽).

그에게 ‘전문 용어’ 설명을 부탁했다.

-텐프로, 점오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텐프로라고 하면 대부분 한국에서 10% 안에 드는 미인들이 서비스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마담이 도우미에게서 챙겨가는 수수료가 10%면 텐프로인 거예요. 점오는 15%, 수수료가 20%면 20%라고 부르죠. 텐프로는 공식적으로는 2차가 허용이 안 되는 곳이에요. 점오나 20%는 되고요. 텐프로 아가씨는 모두 최상의 미모를 갖췄기에 몇 개 룸을 동시에 뛰어도 마담이 수수료를 10% 이상 못 챙겨요. 그렇지 않으면 아가씨들이 그만두거든요. 그래서 제가 텐프로와 경쟁하기 위해 수수료를 9%로 낮춘 거예요. 그래서 퍼블릭 가게를 9%라고 부르기도 하죠. 지금은 텐프로, 점오, 20%들이 거의 사라졌어요. 남은 건 클럽이나 비즈니스 클럽, 하드코어 같은 곳인데 다들 허접해요.”

 

-아가씨들이 업소 밖에서 손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게 다 아가씨들에게 매출을 강요하니까 생기는 일이에요. 주대에 비례해 봉사료를 주면 아가씨들이 바로 ‘작업’에 들어가거든요. 손님에게 일부러 술을 많이 먹이고 2차 나가자고 보채고, 심지어 밖에서 보자고 꼬드기는 아가씨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가게에는 그런 경우가 전혀 없어요. 아가씨의 2차에 전혀 관여하지 않죠. 룸에서의 서비스만 제 관리대상이에요.”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라”

-하드코어 업소와 GMC 업소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하드코어 업소에선 농도 짙은 애무와 쇼를 하지만 퍼블릭에서는 간단한 스킨십만 허용해요.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강남에서도 하드코어와 풀살롱 같은 게 유행하는데, 오래 못 갈 거예요. 제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가끔 권하는 것은 얼음 녹이기 게임 같은 거예요. 손님과 아가씨들이 입에서 입으로 얼음을 전해주다 자기 입에서 녹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거죠. 그 정도는 재미로 용인하는 편이에요.”

-동네 건달이나 조직폭력배 같은 사람들이 영업을 방해하진 않나요.

“저희 업소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그런지 그런 일은 없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보스급 조폭이 더러 왔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점잖은 편이에요. 어쩌다 뜨내기손님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제가 들어가 온더록스 잔에 양주를 가득 채우고 딱 두 잔만 마시면 질려서 나가버리죠. 그래도 안 되면 정중하게 나가달라고 해요. 아가씨의 옷을 벗긴다든지 하는 매너 없는 손님은 바로 퇴장이고요.”

-어떤 손님들이 많이 옵니까.

“1990년대까지는 국회의원, 고위 관료, 대기업 임원이 대부분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니까 연예인들이 많이 오더군요.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들이 많이 와요. 지금은 그야말로 대중화 시대예요. 웬만한 샐러리맨들은 다 온다고 보면 돼요.”

-대기업에서 접대문화에 대해 강의도 했다면서요.

“접대받는 사람의 유형에 따른 업소 선별법, 입장 시 자리 위치, 도우미 선택 요령, 웨이터에게 팁을 주는 방법, 텐프로에서부터 하드코어까지 룸살롱 형태, 업소 유래, 각 업소별 도우미의 미모 차이, 가격대, 가짜 위스키 감별법 및 그 대처법 등에 대해 강의했어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 다들 좋아하시더군요.”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경영 지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객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상의 서비스라는 거예요. 돈, 권력, 지식, 무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사람의 몸뿐이죠. 마음은 못 움직여요. 서비스업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