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 금까마귀가 시체 쪼는 형의 명당 ”

화이트보스 2009. 1. 19. 12:02

[풍수기행“ 금까마귀가 시체 쪼는 형의 명당 ”

[풍수기행] <38>역대 대통령 생가와 선영(2) -박정희 前대통령의 생가터


 






박정희 전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171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구미시를 품에 안은 듯 하늘높이 치솟은 금오산(금까마귀의 상징성을 간직한 산)의 후중함과 서기어린 자태에 답산한 사람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우뚝 솟은 금오산의 정기를 오롯이 간직한 채 마치 천리마가 내 달리듯 선산땅으로 꿈틀대며 내려가는 용세에 다시 한번 놀라기도 한다.

정기어린 산줄기가 그토록 내딛다가 그 정기를 응결시킨 선산땅 어딘가에 이르러 예사롭지 않은 유명한 명당대지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해발 933.2m의 위용을 자랑하며 마치 만산을 거느리고 호령이라도 하듯 우뚝 솟은 금오산은 일찍부터 무학대사가 왕기설을 언급한 명산이다.

풍수지리에서 강조하는 대지 명혈은 우선 그 혈을 맺는 배경의 산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산도에서 보듯 근조산인 금오산까지의 정기를 공급해주는 산맥은 백두대간에서 남하해 온 대간룡이 속리산, 지리산으로 꺾어지는 분지점에 이르러 명산 태백산을 일으켜 세운다.

이후 죽령, 조령을 거쳐 김천시에 이르러 대덕산과 수덕산(1317m)을 솟구친 다음 두 갈래로 크게 맥을 가른다. 한 맥은 동남쪽으로 내려가 가야산을 세우고 한줄기는 북방으로 뻗어나 염속산(870.3m)과 백마산, 영암산의 준봉을 거쳐 동남으로 몸을 틀어 금오산을 세우고는 이내 북동으로 줄기차게 김천시와 구미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이어져 제석봉을 세운다.

금오산은 지나치던 산맥이 세워놓은 과맥중의 산봉우리가 아니라 달려가던 산맥에서 별도로 뻗어내려, 빼어난 준봉을 일으켜 세워 하나의 독립된 주룡의 으뜸이 되는 수봉을 형성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준봉 금오산에서 곧장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동남남쪽으로 낙맥, 결인, 과협, 위이, 개장을 되풀이하면서 중조산과 도수령을 거쳐 소조산을 넘어서 드디어 탐랑성의 수봉으로 치솟은 효자봉을 주산으로 삼아 그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작혈을 예고한다. 즉 현무봉을 세워 놓고 좌우로 날개를 펼치듯이 개방, 내청룡과 내백호 자락을 형성하고 마치 현무봉의 중심을 뚫고 나오듯 천심룡이 출맥해 이제까지 간직, 공급해온 지기를 혈처인 집터에 응결시키려는 행룡의 법도에 맞게 좌선룡으로 어어져 내려온다.

필자와 일행은 집터 바로 뒤에 마지막으로 솟구친 현무정까지 올라 그 용맥을 세밀하게 측정했다. 바로 이 점이 여러 정보매체에서 소개된 간산 내용과 크게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난해함에도 실제 측정된 용맥의 흐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산도 좌측편 용맥교도 참고>

현무봉에서 낙맥~ 곤신맥(서남방에서 동북방으로 진행하는 산줄기)~ 경유맥(서방에서 동방으로 진행하는 산줄기)~ 신술맥(북서방에서 남동동방으로 뻗은 산줄기)~ 건해맥(서북방에서 동남방으로 진행한 산줄기)~ 임자맥(북방에서 남방으로 뻗어내린 산맥)~ 간인맥(북동방에서 서남방으로 진행된 용맥)의 틀을 형성해 공급된 땅의 기운을 간인맥에 이르러 비로소 서리어 맴돌수 있는 이른바 삼태 교구통맥을 어김없이 이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마무리 지점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잉태되고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생가터가 사랑채로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학에서 강조되고 있는 양택의 기운이 미치는 영향력의 순위는 첫째 명당 기운을 받는 진혈의 집터에서 잉태돼 그 터에서 출생해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땅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는다. 둘째는 잉태되지 않았지만 그 터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사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출생해 명당 양택으로 이사해 거주하는 사람 순으로 명당에 서린 정기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렇 듯 용진혈적의 군왕지지에서 잉태돼 출생하고 그 곳에서 20년동안 성장기를 보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 말로 왕기가 서린 땅의 정기를 받았음이 입증된 셈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친인 박성빈씨는 칠곡군에 근거지를 두고 살림을 일으켜 구미땅으로 이전하기전까지만 해도 소작농을 두고 지낼만큼 부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관직에 오르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비운을 맞게되자 호구지책으로 그의 처가인 수원백씨의 선산이 자리잡고 있는 구미땅 상모리 효자봉 아래의 한 귀퉁이를 빌어 토담집으로 된 사랑채를 짓고 살게 된다.

그리고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 수원백씨는 45세에 늦둥이를 잉태하게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박정희였다.

그의 셋째형 상희씨가 똑똑하고 능력있어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인물로 기대를 걸었으나 1947년 10월 1일 대구 폭동때 좌익에 가담, 우익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기대를 받지 못한 박정희는 16세에 구미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에 진학한다. 이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교사직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 신경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해 최우수성적으로 수료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로 전학, 1944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 관동군에 배치된다.

해방 후 대한민국 육사 제2기로 졸업, 육군대위로 임관돼 37세에 장군이 되고 1961년 5.16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출마 46세의 나이로 당선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와 숱한 이야기는 풍수기행의 내용으로 설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보통 상식으론 도저히 성취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는 행운과 그 에너지를 끊임없이 이어지게 한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가 더 큰 관심사다. 역설적으로 인걸은 지령이라는 풍수지리의 이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면 이는 너무 황당한 논리일까.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친이 칠곡군에서 가산을 탕진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살았다면 구미땅으로 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상모리의 거처를 현재의 수원백씨 선영하의 제실쪽, 넓고 평평해 집짓기에 용이한 터를 잡았다면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당시 모두가 부러워하는 교사직을 유지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안주했다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는 삶의 구비구비에 얽힌 이런 사연들은 풍수지리적이거나 또 다른 어떤 힘의 작용에 근거하지 않고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변수일 수 밖에 없다.

필자가 분석한 견해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시대를 경영했던 통치권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에너지는 검증되지는 못하면서도 그 결과가 뚜렷이 나타난 풍수지리학적 측면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잉태되고 태어나 성장한 생가터의 생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다음회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선영 답산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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