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생가 정기에 조모산소 음덕이 상승작용해 대통령 배출”
[풍수기행] <39>역대 대통령 생가와 선영(3) -박정희 前대통령의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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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영 간산코스로 생가터에서 1㎞ 정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정총골이라는 문중산으로 잡았다.
간산 대상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관내동에 자리잡은 이른바 금오탁시형의 조부 산소로 정했다.
이곳은 수년전 우리나라 전역에 풍수열풍을 조성했던 육관 고 손석우씨가 그의 저서 ‘터’에서 소개했기 때문에 과연 책의 내용과 일치하고 그토록 천하대지인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 전대통령의 조모산소를 비롯 그의 친산, 그리고 형제들을 안장해 하나의 족장지로 설정된 정총골, 박씨 문중의 선산이 있는 곳은 생가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문중 선산지역은 생가터를 호종하는 외백호 자락인 것만은 틀림 없었다. 주산은 생가터와 같은 효자봉에 두고 있었고, 그 성봉에서 발달해온 용맥이 국세의 좌측맥으로 이어진 다음 산도에서 보듯 혈을 맺기 위한 목성체의 현무정을 수봉으로 일으켜 세우고, 우선룡으로 낙맥해 진혈을 형성하는 교도를 작성하면서 참된 용이 내룡하는 형세가 뚜렷했다.
그 곳 어딘가에 대통령을 배출한 이른바 비봉귀소형의 조모산소가 자리잡고 있을 것 같았다.
그 곳에는 조모산소와 함께 바로 좌측에 새로 이장해온 듯이 보인 또 하나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이 의문점은 칠곡군에 있다는 조부산소를 간산하러 갔다가 쉽게 풀렸다.
이는 이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그 혈처가 용진혈적의 진혈인지를 살펴봤다.
용맥의 교구통맥 여부를 가리기 전에 우선 현무정에서 확인한 결과 혈 주위와 국세를 두루 살폈다. 생가터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좌측용맥에서 발달한 혈까지의 용맥은 생기를 간직한 것처럼 보였고 혈처를 중심으로 좌우 청룡 백호를 따라 흐르다가 백호와 청룡이 상교하는 수구에서 합수돼 안산의 우측으로 구불거리며 빠져나가는 물줄기는 바람직한 수세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산인 효자봉으로부터 현무봉까지 이어진 용세 또한 생가터의 백호맥에는 해당되지만 기복과 위이를 반복하며 형기적인 측면에서도 살아 있는 힘찬 기상를 띠고 있었다. 또 청룡 백호가 교쇄해 혈전의 안산은 마치 한일자와 같다는 일자문성의 토성체 모양세여서 어느 결록에선가 밝혔듯이 도지목(나무가 가로 놓여 있는 모습)으로 안산을 이뤘다.
그 안산 너머로 생가터의 안산 역할을 하는 시신사(죽은 시체가 놓여 있는 모습)의 천생산 마저도 일자모양의 조산이 돼 안산과 2중의 쌍을 이룬다.
실망했던 마음을 추스려 가며 가장 중요한 용맥의 진위를 분별하기 위해 현무봉에서 혈까지 맥의 흐름을 정확히 측정했다.
그 결과 우선룡의 이태교구를 형성하는 성교혈이 분명했으며 그 중심지기는 오른쪽의 조모산소에 이르러 응결돼 감돌았다.
그러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수많은 풍수연구가들에 의해 소위 제왕지지로 회자되던 그런 정도의 보기드문 천하대지는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 첫째 이유는 비록 태교에 의한 용진혈적은 충족되지만 그 용맥의 진행교도가 2태교에 그쳤다. 또 혈의 진산이 되는 효자봉 주산은 본혈을 짓기 위한 단독적인 산봉이 아니라 생가터의 주산역할에 그 무게중심이 실려있다.
셋째는 현무봉에서 중심출맥(천심룡)해 내룡한 입수룡이 아니고 좌측룡(산을 바라보는 것을 기준)에서 비껴돌아온 섬입수(閃入水)에 의해 작혈한 음택이어서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태교혈은 군왕지지와 같은 천하대지는 아닐지라도 대지(大地)로 분류되며 탐랑성의 현무봉과 일자문성의 안산을 가진 묘터라면 비록 군왕이 난다는 제왕지지는 아닐지라도 국중인물이 배출되는 음덕을 발현할 수 있다.
이곳에 묻힌 할머니 성산이씨는 박정희가 태어나기 7년전인 1910년에 죽어 현재의 산소에 유택을 정했으니 묘를 쓴뒤 태어난 박정희가 풍수에서 말하는 동기감응론에 의해 가장 확실히 음덕을 받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할머니 산소의 발음에 의해 대통령이 됐다는 일방적인 해석은 생가터와 비교해 설득력이 낮다고 본다. 다시말해 생가터의 정기를 타고난 박정희의 진운에 시너지 효과를 낼수 있는 발음이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성이 있을 성 싶다.
박 전 대통령의 부모산소 아래로는 험한 바위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그 중에는 2m 정도되는 직육면체에 가까운 차돌이 금이 간채 서 있다. 조모묘가 박 전 대통령을 배출하게 한 큰 명당이라고 주장하며 떠들썩했던 당시에는 그 험상스런 바위가 임금의 도장인 어보사(또는 옥쇄사 등)에 해당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과연 정확한 평가였을까.
유명한 묘터에 가 보면 소위 혈의 증거라 해서 혈의 아래쪽 턱밑에 해당하는 곳에 요석이 박혀있어 혈장에 서린 지기를 흘러 유실되지 않도록 한다. 그 요석은 반드시 땅속 깊이 박혀 있어야 하며 노출된 부위도 깨끗하고 둥그스름해 살기가 없어야 한다.<사진참고>
그런데 이 곳에 놓인 바위나 주변의 크고 작은 돌덩이들은 산비탈에서 굴러내려온 부석에 지나지 않았다.
풍수지리학의 사격론에서는 혈앞에 금이 가고 깨진 흉석, 그것도 가장 험석이라는 차돌이 있으면 그 살기로 인해 흉액을 불러들여 자손이 살상을 당하는 재앙을 초래한다고 했다.
그 때문일까. 이 묘를 쓰고 나서 대통령을 배출하는데 음덕의 힘을 보탰을지 모르지만 묘를 쓴지 37년 후인 1947년 셋째 손자 박상희가 우익의 총에 맞아 숨졌으며 1975년 손자 며느리 육영수도 같은 변을 당했다. 또 69년 후인 1979년 박정희 마저 똑같은 비운을 당했다. 최근의 일이지만 증손녀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아찔한 순간을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묘의 발복이 왕성할때는 문제의 바위가 어보사로 역할을 해 대통령이 나왔다고 하다가도 묘의 발복이 끝났으니 그 어보사가 흉석으로 작용, 흉사가 발생했다고들 말한다. 왜 정통풍수지리를 강조하고 믿을 수 있는 풍수사를 기대하는 여론이 거센지를 가늠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조모 묘와 부모 묘의 간산을 마치고 하산하면서 조모산소는 분명 용진혈적의 진혈이며 그 바위는 옥에 티라 생각했다. 이어 필자는 금오산 2대 명혈중 하나였다고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부 박영규 산소로 향했다.
경북 칠곡군 관내동 들녘의 저수지 옆 소나무숲이 우거진 낮으막한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산소는 이미 이장해간 뒤여서 잡초만 무성해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여기가 바로 자칭 신안이라는 육관 고 손석우씨가 금오탁시형으로 제왕이 날 대명당터라고 강조했던 곳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어리둥절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곳은 금오산 자락이라기 보다는 영암산과 서진산, 비룡산의 연봉중에서 서진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는 혈터에 지나지 않은데다 관내동 마을은 들녘을 지나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나무숲속에 숨어 있는 혈은 회룡고조형으로 주산에서 들판으로 내룡한 지룡에 해당되며 저수지 윗쪽등을 타고 내려와 마지막 잘록하게 결인한 뒤 작혈한 곳은 파묘자리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몸을 맡기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터를 향하면서 “풍수는 곧 사람이 그 중심에 있고 사람은 자연의 순수함과 강직성을 외면해서는 풍수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는 옛 선사의 말을 되새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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