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부모산소가 용진혈적 명당 그 음덕으로 대권 잡은 듯”

화이트보스 2009. 1. 19. 14:26

[풍수기행]“부모산소가 용진혈적 명당 그 음덕으로 대권 잡은 듯”

<43>역대 대통령 생가와 선영(7) -노태우 前대통령의 선영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산 전경. 뇌두 위의 입수용맥이 펑퍼짐해 점혈하기가 쉽지 않은 혈처라 할 수 있다. 왼쪽 부친 산소는 50년 가까이 되고, 오른쪽 모친 산소는 오래되지 않은 쌍분 묘역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영은 생가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조부모 산소는 생가에서 500여m쯤 떨어져 있다. 생가로 내려가는 길에서 왼편에 띠엄띠엄 봉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 비교적 잘 단장된 묘소가 조부모 산소다.

생가를 만들기 위해 용진마을 쪽으로 내룡하던 용맥의 한 자락이 분지로 추켜세운 산 봉우리가 평지와 만나 평범한 밭자락으로 변하기 시작한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용맥의 교도형태가 지기를 모아 서리게하는 형세를 형성하지 못한데다 용맥의 흐름이 채 끝나지 않고 지나치고 있는 과맥에 정혈이 있어 혈증이 뚜렷하지 않아 크게 주목할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소 실망스런 마음으로 친산을 했다가 이장한 파묘처에서 50m쯤 윗쪽에 있는 증조부 산소를 찾았다.

이 산소도 진혈이라는 믿음을 갖기에는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용진혈적의 관점은 그만두고라도 산등성이가 변환의 과정없이 밋밋하게 경사진 아래쪽에 위치해 형기적 관점에서도 이미 생기를 머금을 수 없는 혈처였다. 땅기운도 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부모산소가 있다는 송정동의 안골에 기대를 걸고 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필자는 풍수지리에 대한 대화에서 늘상 “출생과 성장기를 보낸 생가터가 명당이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 터 기운으로 태어나 운세를 잘 갖췄다고 해도 후천적으로 그 운기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게 하는 에너지는 조상의 묘터가 길지에 들어서 거기서 얻은 유전감응의 발음이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중국 수나라때 수길이란 학자와 그를 신임했던 황제 문제가 나눈 풍수지리에 관한 이야기가 문득 떠 올랐다.

소길은 음양과 풍수지리에 능했다고 한다. 문제의 부인 헌황후가 죽자 문제는 소길에게 장지를 잡게 했다.

소길이 무산의 한 곳을 소점하면서 “이 자리는 2천년 지지에 자자손손 200세 후손까지 보존해 줄 자리”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전해 들은 문제는 “인간의 길흉화복은 타고난 것이지 묘터의 좋고 나쁨에 있지 않다. 이전 왕조들이 어찌 명당을 고르지 않았겠느냐. 그럼에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느냐. 만약 우리 조상들의 무덤자리가 나빴다면 나는 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좋았다면 왜 내 동생이 전쟁에서 죽었겠는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묘지와 인간의 길흉화복이 서로 관계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또 묘지보다는 태어난 집터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수 문제의 그 다음태도가 매우 흥미를 끈다.

그렇게 말해 놓고는 끝내는 소길의 말을 따랐을 뿐 아니라 그에게 큰 상까지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터는 제왕지지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선영은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만한 음택이 발견되지 않아 답답한 생각에 이런 말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권력과 풍수와의 상관관계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권력지향적 의지와 욕망에 의해 풍수지리를 끌어 들인다. 또 하나는 우연히 얻은 명당대지에 터를 잡아 살았거나 묘를 쓰게된 덕으로 권좌에 오르는 경우다.

필자가 주제로 삼아 쓰고 있는 역대 대통령의 생가와 선영편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직선이든 간선이든 대권을 거머쥐게 되는 불가사의한 운명적 에너지는 음·양택의 대지명당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풍수지리학의 정설로 굳어졌다.

산도에서 보듯 노 전 대통령의 부모산소는 보기드문 명당이었다.

태조산을 영산 팔공산에 근거하고 파계봉을 근조산으로 삼아 900m나 되는 탐랑성의 수봉을 주산으로 세운 다음 좌선으로 회두해 기복, 위이를 거듭하며 힘차게 행도를 이어오다가 용세의 마무리를 하면서 빼어난 목성체의 현무봉을 앉혀놓은 연후에 다시 우산룡으로 마리를 틀어 낙맥한다. 변국의 내룡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낙맥하면서 혈을 맺으려고 내려오는 그 용맥이 으뜸으로 치는 취기입수맥이라는 근거에 의해 보기 드문 명당대지라 일컫는 것이다.

취기입수라는 것은 풍수지리의 보편적 상식이다.

그런데 네번에 걸친 취기처와 그 취기맥이 돌 무더기로 뭉쳐진 뢰맥으로 형성된 것을 확인하고는 필자와 일행은 대혈을 예고하고 그 혈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무리 취기맥이 발달해 내룡한다 해도 그 기세를 정하게 멈추고 동반해온 땅의 기운을 어느 한곳에 맴돌아 서릴 수 있게 하는 용맥의 교도가 법칙에 맞게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허맥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 용맥의 나아가는 상태가 영락없는 우선룡의 교구통맥으로서 용진혈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이 산소에 대한 간산 기록마다 마무리 용이 넓직한 평맥이라 신통치 않다고 했지만 필자는 윗 용맥이 뢰맥의 취기입수로 음룡이면 그것을 받아 잇는 아랫쪽 용세는 드넓은 양맥인 것이 합법인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것은 전혀 흠이 아니었다.

그래야 살기를 벗을 수 있는 토살의 과정을 거치게 돼 맑은 기운만을 혈처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룡이 후중수봉에다 입수룡이 뢰맥의 취기형세에 우선룡의 교구통맥을 이뤘으니 용진혈적의 핵심에 접근했다.

그리고 좌우 용호는 물론 물이 모아져 나가는 수구에 일자문성의 안산과 그 너머에 둥글고 천마모양의 조산들이 출중하니 예상했던 것 이상의 대지명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노 전대통령의 부모산소가 불당골에 있을때는 군대에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데 이장 후 진급도 되고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전에 “1962년 소령으로 진급했고 1968년 중령진급, 중령진급 후 월남전에 참가해 무공을 세운 뒤 진급이 순조로웠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971년 연대장, 1974년 대망의 장군이 됐다는 대목을 보면 역으로 1962년에서 1968년 사이 6년간 소령으로 머물렀던 때가 가장 풀리지 않았던 시기였을 성 싶다.

일취월장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마침내 1988년 2월25일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것도 2개 야당후보가 단일화에 실패, 후보가 난립한 덕(?)에 어부지리로 직선 대통령에 올랐으니, 이를 두고 후세의 역사적 평가에서 당사자의 출중하고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과 역량 때문만이었다고 할까.

굳이 풍수지리의 이치를 대입하지 않더라도 천운을 타고 나지 않으면 가능할 일일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생가터 기운을 입은 것일까. 아니면 음택명당의 뒷받침에 의한 것일까. 두고 두고 검증하고 정립해야 할 학문적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터와 선영을 둘러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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