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91)=승주 상호정

화이트보스 2009. 1. 22. 15:11

정자기행(91)=승주 상호정


 


▲승주 상호정



▲ =500여년 흘러 온 '효 사상'의 요람

▲ =선비 조사문, 성삼문과 죽은 동생 기리며 은둔

▲ =선생 네 아들 선친 뜻 받아 정자 지어 孝 실천









나라 부흥의 기본은 가정에서 부터 시작된다. 형제가 화목해야 가족이 평안하고 나아가 나라 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앞서 간 큰 선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한결 같은 효자였다. 효자 가정에서 효자가 나온다는 옛 말이 있듯, 효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만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순천시 승주읍 주암면 죽림리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 상호정(相好亭). 이 정자는 조선시대 한 가정이 지켜냈던 효 사상과 형제간의 우애가 듬뿍 서려있는 곳 이다.

그러니까, 상호정의 건립 연대는 지금으로 부터 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호정은 조선 성종 때의 선비 옥천조씨(玉川趙氏) 참의공(參議公) 사문(斯文) 선생의 네 아들 지산(智山), 지곤(智崑), 지륜(智崙), 지강(智崗)이 형제지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며 동락했던 곳이다.

이들 네 형제는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나란히 하며 이 정자에서 세상의 번뇌를 잊은 채 화락친애(和樂親愛)하게 지내면서 낮이면 음악과 시문(詩文)을, 밤에는 고금의 역사와 학문을 토론했다해서 정자 이름도 ‘상호(相好)’라 불리웠다.

오늘날 이 정자를 있게한 조사문 선생은 사육신과 함께 죽음을 당했던 조숭문(趙崇文)과 친형제이다. 성종 5년(1474)에 건립된 이 정자는 현대인들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성삼문과 함께 생을 마감했던 동생 조숭문(趙崇文)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조사문 선생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나랏 꼴을 한탄 하면서 초야에 묻혀 후학들을 양성하며 평생을 보냈다.

조사문 선생의 발자취는 상호정 주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팔작 지붕에 골기와를 얹은 상호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인데 살림집과 유사하다. 현재 상호정 옆에는 조숭문의 부친인 조 유를 비롯해 선조 6위를 모신 옥천조씨들의 사우인 겸천사와 조숭문과 그의 아들이 세종 2년에 순절하자 조숭문의 손자가 추념하여 건립한 영모제(永慕齋)가 함께 들어서 있다.

네 형제의 두터운 정을 감싸안은 상호정 돌담을 돌아나오는 길 옆엔 새하얀 망초가 지천으로 피어 500여년 전의 형제애를 상기 시켜주고 있었다. 그림·사진/ 한국화가 장복수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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