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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된 용진정사는 후석 오준석 선생에 의해 1917년에 건립돼 나라잃은 슬품을 삭이며 지역 인재들을 강학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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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 갚기 전엔 상복 벗지않으리라”
▲ =한말 선비 오준석, 고종황제 승하 소식에 통곡
▲ =산 속 들어가 精舍짓고 인재 강학 민족혼 고취
‘원수를 갚기 전에는 결코 상복을 벗지않으리라.’
광산출신 한말 때의 학자 후석 오준석 선생(?~1931)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 하자 제자들과 함께 통곡하며 이 말을 남기고, 일생동안 백립을 쓰고 지냈던 조선의 선비 중 선비였다.
그의 체취가 묻어있는 용진산 기슭에 자리한 용진정사를 찾았다.
해발 349m로 지역의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용진산 자락에 묻혀있는 이 정사는 지역 유림들은 물론 그의 인품을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용진정사는 한·일 합방의 비운을 맞은지 7년이 지난 1917년 후석 선생에 의해 건립된 지역 학동들의 강학소다.
이 정사를 건립한 후석 오준석 선생은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선비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이었던 학자 오태규로 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다.
이어 18세 때부터 노사 기정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도학사상을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송사 기우만, 식재 기재, 현와 고광선 등과 사귀었다. 뿐 만 아니라 전재 임헌회와 입재 송근수 등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혀 한말 광산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로 추앙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후석 선생의 학문 체계는 경학을 비롯해서 성리학, 예학, 의리론 등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명사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이라는 금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후석 선생은 이를 단호히 거절, 조선의 선비로서의 민족 자존을 몸소 실천했다. 이에 일경은 후석 선생을 수 차례나 헌병대로 연행해 갖은 협박을 가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끝내 거절했다.
그후 후석 선생은 1917년 아예 용진산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600여명의 후학들을 길러냈다.
당시의 선비들이 모두 그러했겠지만, 도학에 능통했던 후석 선생은 유득 나라잃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날밤을 지새우며 국운을 걱정했다.
선생의 이러한 정신은 곧 행동으로 옮겨져 급기야는 이 곳 용진산으로 들어와 강당을 짓고 망국의 한을 달래가며 후학을 양성했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산구 임곡동 왕동 산 3의 2번지에 건립된 이 정사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슬픔과 한이 서려있어 어느 정자나 정사 보다 빛을 발하고 있다.
용진정사가 건립된 이 자리는 원래 용진사가 있던 곳으로, 당시 삼봉 정도전과 우암 송시열 등 조선의 대학자들의 출입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절(寺)이 허물어진 뒤 청안이씨들이 그 터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후석 선생의 민족 주체정신을 높이 산 소유주가 이 땅을 시사, ‘정사(精舍)’를 짓게해 민족정신을 일세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다.
1931년 후석 선생이 세상을 뜨자 지역 유림들은 정사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석지 채용신이 그린 우석 선생의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북파 오헌수와 둘째 아들 도호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있다.
후석 선생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을 소개 하자면, 1919년 고종 승하 소식을 전해들은 선생은 문하생들과 용진사 앞의 바위에서 통곡하며 슬퍼했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읍궁암’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후석 선생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명정에 ‘조선유민’이라 쓰도록 유언했을 정도였으니, 그의 민족 사랑이 어느정도였는가를 감지할 수 있다.
후석 선생이 타계한 3년 뒤인 1934년 후학들에 의해 그의 학문적 체계를 정리한 문집 25권 12책이 간행돼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한편 용진정사는 지방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돼 광산지역 유림들로 구성된 후석 오준석 유적보존회가 관리해오고 있다. 그림·사진/ 한국화가 장복수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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