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백두대간을 가다

[백두대간을 가다] 솔향 그윽한 숲길…삼림욕은‘덤’

화이트보스 2009. 1. 24. 17:07

제10구간/큰재-회룡재-개터재-윗왕실-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

 


백두대간은 사람들의 손에 자신의 허리가 파헤쳐진 산자락에서는 심술을 부리곤 한다.

밭이나 임도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한 작업도로, 산불이 났던 곳 등 인간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곳에서 종주자들은 지형파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큰재에서 지기재로 치고 나가는 길은 산세가 낮은데다 잡목숲마저 우거져있고, 밭과 농로 등이 얽혀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림1중앙#

새벽길을 달려온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큰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 지난 97년 폐교됐으나 백두대간 자락에 터를 잡은 유일한 학교이다.

금방이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인성분교의 나무울타리를 끼고 5분 정도 오르면 무덤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목장 진입로인 시멘트 포장길을 만나게 된다.

이 시멘트 길은 큰재가 지나는 920번 지방도에서 목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면 오른쪽으로 난 능선진입로를 찾을 수 있다.

각지에서 백두대간을 찾은 종주자들이 나무에 매달아 둔 ‘표지기’들이 많아 찾기는 수월하다.

그러나 진입로 앞 봉우리를 자칫 백두대간으로 착각할 수 있으니 표지기들의 위치를 유심히 봐야한다.

#그림2중앙#

능선으로 접어들어 잡목숲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를 타면 농로인 회룡재(큰재에서 40여분 거리)가 나온다.

회룡재에서 잠시 발을 푼 뒤 정면으로 난 오르막길로 오르면 평평한 지형의 능선이 나오고,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닿으면 나란히 누워있는 무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무덤 오른쪽 잡목을 빠져 나가면 개터재(회룡재에서 30분)에 이르게 된다.

개터재는 주위 지명을 따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이다.

개터재를 출발하여 작은 봉우리 하나를 짚고 넘으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20여분 따라가다 보면 봉우리 하나가 반긴다.

소나무와 잡목이 빼곡한 구간을 1시간 정도 거쳐야만 윗왕실에 도착할 수 있다. 앞을 가린 잡목숲에 답답함 마저 느껴지지만 그윽히 솔향을 맡으며 걷는 재미도 솔솔하다.

윗왕실 임도는 제법 넓직해 보이지만 절개지의 붉은 흙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어 보기 흉하다.

#그림3중앙#

경운기가 너끈히 다닐 수 있는 윗왕실 임도는 잡풀이 무성하고, 백두대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대간길과 나란히 다리가 놓여 있다.

잡목이 우거져 답답한 산행이지만 2시간여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백학산 정상에서 잠시 발을 풀 수 있다.

백학산은 3개의 봉우리가 엇비슷해 정상을 찾기 힘들지만 정상부에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세운 앙징맞은 표석이 있어 눈짐작을 돕는다.

세번째 봉에서 10m여 전진하면 길이 희미하게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임도(백학산에서 10분거리)가 나온다.

자칫 정면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르게 되면 성봉산(572m) 쪽으로 흐르는데 이때는 처음 만나는 임도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꺽으면 된다.

임도에서 잡목을 헤치며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원산마을과 함박골을 연결하는 임도로 이어진다.

#그림4중앙#

임도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능선을 따라 50분 가량 걸으면 또 다른 임도 하나를 지나치게 되고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올라 내려서기를 6분여, 왼쪽으로 검은 차양을 친 인삼밭이 나타난다.

인삼밭을 지나면서 부터는 왼쪽에 넓직한 밭들을 펼쳐지며 잡풀로 무성한 수풀지대를 통과하면 개머리재(백학산 1시간 25분)에 도착한다.

개머리재는 개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소정리와 함박골을 연결하는 비포장 도로이다.

개머리재를 건너 왼쪽으로 과수원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소나무가 우거진 봉우리로 진입하게 된다.

봉우리를 올라섰다 내려오면 농로가 나오고 다시 능선으로 붙으면 또 다른 농로를 거쳐 2차선 도로인 기지재(개머리재에서 50분)에 닿는다.

사과밭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지재는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적기지재라고 부르다 기지재라 이름 붙여졌다.

지기재 입구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성진항’의 묘비를 바라보며 산길에 굳어진 발을 풀었다.



#그림5중앙#


오광록 기자 kroh@k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