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가다] 고치령∼마구령∼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상)
때 늦은 꽃봉오리 분홍색으로 이름모를 들꽃 속속 파고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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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목적지는 도상 거리만 18㎞에 이르는 꽤나 긴 코스. 2장으로 되어있는 지도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가로등 만이 홀로 불을 밝힌 풍기읍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지방도를 따라 출발점인 고치령으로 향했다. 지난번 구간의 끝이기도 했던 고치령 까지는 40여분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비포장길로 꽤나 험난해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좀처럼 오르기 쉽지않던 고치령은 어느새 고갯마루까지 잘 포장되어 있어 승용차로 이동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
새벽 5시. 길가 풀섭에 맺힌 이슬이 일행보다 먼저 깨어나 있었고 어렴풋이 어깨를 맛댄 대간 능선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고치령 고갯마루에는 작은 산신각이 자리잡고 있다. 느슨했던 등산화 끈을 조이고 나서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에 곱게 고개를 숙였다. 해발 760m 인적이 드문 산속에 산신각을 세우고 수시로 기원했을 옛 선조들의 마음도 이러했을 터였다.
산신각 왼쪽에 나있는 등산로로 접어들자마자 하체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20여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림1중앙#
멀리 보이는 대간 능선을 아침해가 벌써 넘고 있었다. 해를 눈앞에 두고 한참 잡목숲을 헤치며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잠에 취해 이불을 걷어낼까 말까 고민할 시간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햇볕에 반짝이는 거미줄을 걷어내며 1시간여 희미한 옛 고개 흔적이 나타났다. 미내치(820m·고치령 에서 3.2㎞)다. 대간을 가로질러 난 희미한 고갯길을 넘나들던 옛 조상들은 이보다 이른 새벽 캄캄한 산길을 더듬으며 누군가를 키워냈을 터였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해는 꽤나 높이 솟아 있었다.
다시 지루한 잡목숲을 헤쳤다.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막이 심하다. 하지만 암석 지대가 없어서인지 한결 발걸음을 편했다. 그 사이 능선 곳곳 산철쭉은 어느새 뚝뚝 떨어져 대간을 물들이고 있었다. 약간 때 늦은 꽃봉오리들은 분홍색으로 탐스러웠다. 탁 틔인 전망을 볼 수 없어 잠시 심기가 불편해질 무렵 가까운 곳에 돌려진 시선으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속속 파고들며 소소한 즐거움을 더했다.
어느새 1096m봉. 시간은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른 아침을 먹고 충분히 쉰다음 다시 길을 잡아 40여분정도를 더 가자 또다른 고갯마루에 닿았다. 바로 마구령(810m). 아직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불편하지만 마구령은 고치령 보다 폭도 훨씬 넓고 승용차도 지날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닦여있다. 마구령에서 선달산 까지는 7.8㎞.
#그림2중앙#
마구령에서 35분즘 더가면 암릉이 나오고 이후부터는 다시 은근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계음에 익숙했던 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갖가지 날짐승 소리에 절로 열렸다. 작은 산새소리부터 바스락 거리며 낙엽을 밟는 산짐승 발자국 소리가 선명했다.
오전 9시30분 봉황산 갈림길(966m)에 도착했다. 일명 갈곶산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정북으로 굽돌아 선달산으로 이어지고 반대방향으로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를 품고있는 봉황산으로 뻗어 나갔다. 갈곶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선달산은 꽤나 위풍당당했다.
갈곶산에서 약 1㎞쯤을 내려서면 부석면과 물야면의 경계인 늦은목이에 닿는다. 늦은목이에서는 서쪽으로 50m쯤 내려서면 물을 구할수 있고 주변에 꽤나 넓은 평지도 있어 야영을 한다면 적당하다.
늦은목이에서 선달산까지는 이번 산행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 아름드리 춘양목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해발 800m 늦은목이에서 1236m의 고봉인 선달산 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정상까지 1.9㎞라는 이정표를 믿어보기로 하고 아득해진 마음을 추스렸다. 어느새 땀이 비오듯 했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며 1시간여 무너진 산불 감시 초소가 나타났다. 바로 선달산 정상.
선달산은 꽤나 높은 산이지만 주변 풍광은 그리 좋지 않다. 어느새 수미터씩 자라버린 잡목숲이 시야를 가렸고 그늘도 마땅치 않았다. 올라서기만 하면 그동안의 수고쯤은 한번에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무너졌다.
하지만 괜시리 툴툴 대면서도 백두대간 한 켠 단단히 버티고 서 있다는 자체 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움도 함께한 순간이었다.
강현석 기자 kaja@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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