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임진왜란

27년째 거북선 복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성

화이트보스 2009. 1. 25. 11:51

27년째 거북선 복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성(66)씨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김영성씨가 자신이 만든 거북선 모형을 보며 거북선의 후진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등에 철갑을 두르고 고개를 쳐든 전라좌수영 타입의 거북선이죠. 사진은 정광진 기자가 찍었습니다.

김씨는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친(1996년 사망)은 일본육사(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교) 2기였답니다. 친일파인 셈이죠. 김씨에겐 선친의 친일 전력이 원죄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해방이 된 후 귀국한 김씨는 전문대를 나와 신도양행(만도기계 전신)에서 금속관련 일을 하는 기술자가 됐답니다. 거북선과는 멀어 보이죠. 하지만 우연히 일본에서 겪은 황당한 경험이 김씨의 삶을 바꿉니다.

1978년 김씨는 일본 니가타(新潟)현 공업지대에서 한달 동안 기술연수를 받습니다. 열처리 기계제작 반자동화 연수였답니다. 니가타현은 북한의 만경봉호가 입항하는 곳이죠.

어느날 일본인 사장이 김씨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답니다. 일본인 사장 집엔 ‘거북선도’가 한 장 걸려있었죠. 김씨가 관심을 보이자 일본인 사장이 말합니다. “한국엔 이런 신기한 배가 없죠. 고대 일본의 전함이죠. 우리 일본의 자랑입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식사는 뒷전이고 설전이 벌어지는데 김씨가 ‘임진왜란’에 얽힌 짧은 역사지식을 끄집어내 설명해도 이 일본인 사장은 “그런데 왜 한국엔 거북선이 없냐?”며 오히려 성화였답니다. 열은 받았지만 기술자인 김씨는 당시만 해도 거북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그 일본인 사장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진 못했다고 하네요.

^70년대만 해도 거북선을 일본 배라고 믿는 일본인이 꽤 많았다는군요. 심지어 몇 년 전 미국 뉴욕에선 거북선이 일본 전함으로 알려지기까지 했답니다.

화가 치민 김씨는 귀국하자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난중일기, 임진장초, 속대전 등 80여종이 넘는 거북선 관련자료를 닥치는 대로 모았습니다. 전공이 금속 조각인지라 내친김에 모형을 만들어봤죠. 그때만 해도 김씨의 작업은 거북선 연구가 아닌 일종의 분풀이였던 셈이죠.

79년 마마전기로 회사를 옮긴 김씨는 개발실에서 근무하며 신제품 개발에 몰두합니다. 8개월 계획이던 전기보온밥솥, 전기압력솥 등 8종의 신제품을 2개월 만에 개발해 ‘도깨비’로 불렸다고 하네요. 그 공을 인정 받아 3개 팀의 겸임팀장을 맡는 영예도 누렸고요.

하지만 83년 퇴사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거북선 모형 만들기에 몰두합니다. 거북선뿐 아니라 장보고 주력전함, 해골선 등 고대 한국의 배와 세계의 함선도 만들기 시작하죠. 사비를 털어 이탈리아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마카오 홍콩 일본 등 해외에 나가 선박도서관이나 박물관 등을 돌며 자료를 수집했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배(故 김재근 박사 저)’란 책을 보게 됩니다. 거기엔 거북선 후진에 대한 설명이 있었죠. ‘배가 뒤로 가는 게 뭐 대수냐’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거북선의 후진은 현재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조선 함대의 돌격함이었다는 건 아시죠? 돌격해서 포격도 하지만 왜선을 들이받아 박살 내는 충파(衝破)도 담당했답니다. 부딪치고 빠져야 하니 거북선의 후진은 필수였던 셈이죠. 하지만 그 원리를 명확히 규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김씨는 ‘한국의 배’라는 책에 실린 거북선 후진 부분이 해가 갈수록 누락되었다고 하네요. 김재근 박사의 후학들이 거북선 후진 원리를 규명할 길이 없자 슬그머니 뺐다는 거죠.

거북선 후진 원리 규명을 위해 사료를 찾던 김씨는 조선왕조실록과 경국대전을 뒤져 그에 대한 언급을 발견했답니다.

제대로 된 거북선 모형을 만들기 위해 김씨는 2~3년 걸려 만든 거북선을 부수고 또 부수었답니다. “아까우니 팔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김씨는 완강하게 사양했습니다. 김씨 왈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말이 ‘얼마냐’입니다. 도공들 보세요. 공들여 지은 자기를 마음에 안 든다고 다 깨부수잖아요. 저 역시 연구가지 장사꾼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최근 김씨는 거북선 후진 원리를 규명합니다. 후진 원리를 밝힐 1.5m짜리 거북선(전라좌수영 타입) 모형도 만들고, 월미도 부근에서 사람까지 구해 바다에 배를 띄워 후진 실험까지 마쳤다고 하네요.


김씨가 만든 거북선 모형입니다.

그가 말하는 거북선 후진 원리를 간단히 전하면, “거북선은 내부구조가 아주 복잡해요. 그래서 규명이 안 됐죠. 그런데 사실 노를 젓는 격군의 위치만 반대로 바꾸면 수초 내에 후진을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진 사람들이 거북선 그림을 잘못 해석해서 그런 겁니다.”

김씨가 밝힌 재미있는 거북선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이번 글은 김씨에 얽힌 이야기니까요.

 규명한 김씨의 거북선 모형은 현재 대구KBS전시실에 있습니다.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세계 군함 모형전’에 출품했거든요. 30일엔 김씨가 ‘조선수군의 거북선 재조명’이란 주제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요.

김씨는 자신이 거북선 원형의 88%를 복원했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완벽한 거북선을 만드는 게 일생의 소원이죠. 현재도 그는 경기 고양시 벽제의 개인공방에서 거북선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또 조만간 ‘세계선박도감’을 간행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그린 526개의 선박 그림을 모아두었다고 하네요. 후계자를 키우고 싶지만 마땅한 사람도 없고, 경제력도 없어서 답답한가 봐요.

거북선 한 척 제조에 드는 90여만원을 마련하기도 버겁나 봐요. 후배인 함선모형제작자 정재춘씨(함선21)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부인과는 10여년 전 사별하고, 딸(35)은 뇌 세포가 괴사하는 불치병을 앓고 있답니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들(31)이 김씨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많은가 봐요. 김씨는 매달 13만원의 연금을 받는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9년 전 자발적인 일본군이었던 선친은 돌아가시면서 “(친일행위를) 반성한다. 너는 열심히 해서 (거북선을) 꼭 복원해라”라는 유언을 김씨에게 남겼다고 하네요. 김씨는 그제서야 아버지와 화해하고 더 열심히 거북선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 선친이기에 그 다음부턴 떳떳하게 남들 앞에서 선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잘 아시지만, 수많은 친일파 중에 친일행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례가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김씨와 그 선친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김씨는 콜라를 아주 좋아해서 늘 입에 달고 다니신다고 하는데 언제 한번 콜라 몇 병 사 들고 찾아 뵐까 합니다. ^다음 번엔 김씨가 들려준 ‘재미있는 거북선’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김씨가 제작한 장보고 주력함선입니다. 사진은 정광진 기자가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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