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山治水의 영웅, 朴正熙 대통령
신문과 방송마다 폭우로 쓸려간 강원도내륙지역의 피해상황을 보도하느라 지면과
이번 강원도지역에서 유독 극심한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산을
깎아놓은 절개지를 그대로 방치해 놓았다가 폭우때 토사가 물에 씻겨내려가 마을을
덮치는 바람에 생겨난 것이 제일 큰 이유고 다음으로는 물길을 막는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피해가 그 다음인 모양인데 사실상 인간들의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태도가 빚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재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마음가짐으로 그 피해를 대폭 줄일 수는 있는데
개발업자들의 무책임한 자세와 관리들의 부패가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를 확대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같다.
엄격한 工事사후관리와 꾸준한 준설사업 그리고 도심의 하수관을 비롯한 배수시설의
점검만 있었더라도 이번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준설사업과 하수관점검은 손놓은지 오래 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美化사업만
열심이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治山治水에 노력한 君主가 거의 없었는데 조선 500년을 통털어
백성들을 위해 토목공사를 벌였던 건 260년전의 英祖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해마다 한양의 도심지에 물난리를 일으키는 청계천을 다스리기 위해 20萬명의 인력을
동원해 청계천을 깊이 파서 인공하천을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청계천인데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걸 이명박이 건설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때 파낸 흙은 지금의 을지로 6가와 동대문운동장근처에 쌓아두었는데 그것이 저절로
山처럼 되었는지라 가짜산, 즉 假山이라고 불렀고 집없는 거지나 도망나온 상민들이
이 假山에 땅굴을 파고 얻어먹는 거지생활을 했었는데 나중엔 수백명으로 불어나
거대한 범죄조직이 되어 파워를 행사하는 바람에 장안의 행세깨나 하는 고위관리들도
이들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고 또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세도가의 앞잡이가 되어
선동꾼으로 나서기도 하고 경쟁자의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독립협회의
집회를 급습해서 테러를 감행했던 조직도 바로 이들 수구세력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
假山의 거지떼 소행이었다.
이 假山은 나중에 日帝가 한양의 건축공사때 이곳의 모래를 건축자재로 이용하는 바람에
저절로 사라졌다고 하는데 골치아팠던 거지떼들도 이때 모래와 함께 사라졌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다 싶은데 要旨는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고
살아온 것이 우리 조상의 인식이었는데 日帝때도 한강이 범람해 한양을 완전히 침수케
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서울이 물난리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청계천을 건설했던 英祖와 북한강, 남한강일대에 수많은 다목적댐을
건설했던 朴대통령 덕분인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강상류에 있는 6개의 댐, 소양강댐,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평화의 댐
中에서 日帝末에 건설했던 화천댐과 청평댐 그리고 물 저장능력이 없는 평화의 댐을
제외한 소양강댐, 의암댐, 춘천댐은 60년대에 착공했던 것으로 규모면에서나
기능면에서 日帝가 發電用으로 건설했던 소규모의 청평댐이나 화천댐과는 그 성격이나
규모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특히 소양댐은 건설당시 그 규모면에서 아시아 최대라고 했는데 기술과 재원조달문제로
고심하던 중, 설계를 담당했던 日本기술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토목지식이 별로 없었던
현대의 정주영회장이 자갈과 모래로 만들면 된다고 우겨서 최종결정권자였던 朴대통령이
결론을 내리지 못해 무척 망설이고 고심하다 결국 정주영회장의 손을 들어주어 마침내
자갈과 모래로 건설하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비하인드-스토리(코리안 잉글리쉬임)를
남긴 우리나라 토목공사의 금자탑같은 존재다.
콘크리트를 이용한 중력댐을 건설하게 되면 그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철근을 확보하는
문제와 엄청난 양의 세멘트 그리고 공사현장까지 들어가는 車道를 건설하는 비용문제,
자재를 외국에서 들여와 항구를 거쳐 강원도 북한강상류까지 운반해야 하는 문제등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지만 북한강상류에 지천으로 늘려있는 모래와
자갈만으로 만든다면 이런 문제는 일거에 해결할 수 있으니 더 망서릴 이유가 없었지만
문제는 과연 모래와 자갈만으로 그 엄청난 댐을 만들수 있느냐하는 "安全度의 문제"를
놓고 오랜동안 결정을 못내리던 朴대통령이 마침내 자갈과 모래를 이용한 사력댐을
건설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래서 엄청난 건설비용을 건질 수 있었다. 명함도 못내밀던
우리나라의 토목기술수준도 이 사력댐건설의 성공으로 "초보"딱지는 뗄 수 있게 되었고.
남한강을 다스리는 충주댐도 규모면에선 소양강댐과 견줄 만 한데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모르겠음) 홍수를 다스리는 것 말고도 연간 33억 8천만톤의 用水를 수도권에 공급하고
연간 8억 4천만kwh의 전력을 생산하는 다목적댐인데 적어도 이 소양강댐과 충주댐이
없다면 오늘같이 2000만 수도권인구가 수도물을 이용하고 물난리로 부터 안전지대에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번 폭우때 소양강댐과 충주댐에서 물을 가두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全 國土를
뒤덮고 있는 빽빽한 숲이 없었더라면 서울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이 생지옥같은
물난리를 겪었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훤하다.
60~70년대에 완공한 안동댐이나 임하댐 그리고 남강댐이 없었더라면 지금 5천만에
육박하는 인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씻고 살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60年代末까지만 해도 아이들이나 부녀자들의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가 물길러다니는
일이었는데 특히 달동네 여인들이 머리에 물통이고 비탈길을 오르는 건 정말 힘든
중노동이었다. 겨울에는 얼음이나 눈에 미끌어져 물통과 함께 굴러떨어지는 사고도
비일비재했었으니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겐 상상하기도 힘든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리라.
또 治山治水의 기본인 산림녹화도 60~70년에 朴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인데
UN발표에 의하면 2차대전이후 산림녹화의 모범국으로 대한민국이 첫째로 꼽히고
다음이 이스라엘이라니 먼 앞날을 내다보고 인기도 없는 나무심기에 꾸준히 매진했던
朴대통령의 혜안과 애국심에 저절로 고개 숙여지지 않는 인간은 슨상님만세족과
김정일만세족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요즘은 무슨 말인지 뜻도 모를 사람이 많지만 그 시절에 국민들도 잘 모르는 사이에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사업이 경지정리사업인데 뱀지나가듯 엉망진창으로 이루어진
논밭을 바둑판모양으로 반듯하게 새로 경계를 긋고 천수답대신 어디든지 물이 공급될
수 있도록 水路를 만들고 경운기같은 기계가 논밭에 출입할 수 있도록 農路를 만들어
농업 기계화의 인프라를 완성했던 것도 60~70년대였다.
시골 구석구석 전기와 전화가 들어가게 되었던 것도 70년대말이었고.
세계 역사상 18년만에 후진적인 쌀농사국가에서 중공업국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던
국가는 없었고 집권 18년만에 국민소득 70딸라에서 1600딸라로 만들어준 지도자도
박대통령을 제외하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어떤 놈은 노벨평화상으로 33억딸라의 경제적효과를 창출했다고 제 자랑하기도 하던데
박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산림녹화사업과 경지정리사업 그리고 치산치수로 우리
국민이 當代는 물론이고 後代에까지 자자손손 누리는 경제적 이득은 산술적으로
계산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공적을 기려 山林廳舍에 朴대통령의 浮彫 하나 달랑 걸려있는 것이 우리 국민이
박대통령에 대해 表하는 감사의 뜻의 전부이니 훗날 天罰을 받아 유태인처럼 떠돌아
다니는 부랑민족이 될지라도 하나도 애통할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다.
출처 :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글쓴이 : 운영관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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