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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을 쐈던 총은 어디 있을까

화이트보스 2009. 1. 28. 14:20

박정희 대통령을 쐈던 총은 어디 있을까
"오늘도 하루 지나면 역사가 된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
 

얼마 전 미국의 각종 도서관 및 유관 기관들을 방문했을 때 안내해 주었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인 직원 선애 에반스씨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스미스소니언은 지금 링컨 탄생 200주년 전시회 준비로 한창 바쁜데, 갑자기 한국의 일이 생각났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당시 쓰였던 총, 그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 술병과 술잔, 기타 소지품 등등이 잘 보존돼 있나요? 지금 저희가 준비하는 것들이 링컨과 관련한 그런 것들입니다. 한국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중요한 것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아, 벌써 10·26 30주년이구나. 그런데 과연 그런 유물들은 지금 보존돼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보존상태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군인들이 그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혹시 그 귀중품들을 단순히 '증(證)1, 증2, 증3'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만일 어떤 상태로든 현존한다면 이제라도 보존처리를 하여 그 엄청난 역사적 유물들을 30주년인 올해 국민 앞에 전시하면 어떨까?

역사가 짧은 미국은 '오늘도 하루 지나면 역사가 된다'는 인식이 투철하다. 그들은 수천 년 된 유물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작은 것'부터 모아 보존하고 전시한다. 스미스소니언만 해도 남북전쟁 때 장군이 신었던 군화·총칼·군복·계급장·훈장 등등 별의별 것을 다 모아서 볼만하게 전시해놓고 있다. 가로 10m 정도로 큰 미영전쟁 승리 기념 성조기는 소멸 직전 8년간 200여억원을 들여 온갖 과학자들이 참여해 보존처리를 하여 최근 일반에 공개했다.

대통령들의 유물은 전국에 산재한 대통령도서관에서 국민들과 만난다. 보스턴에 있는 케네디 도서관에는 백악관 책상을 비롯해 집무실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재클린이 여러 나라로부터 선물받은 화려한 장신구들은 미국의 힘과 함께 케네디-재클린 부부의 세계적 인기를 말해준다.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문화부장관이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가져와 전시할 때 지방시가 디자인하여 선물했다는 핑크빛 드레스는 흥미와 함께 세월의 무상함과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국가기록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 초고와 마그나카르타(대헌장) 등이 잘 보존 전시돼 있으며, 세계 도서관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의회도서관 역시 구텐베르크 성경 초판과 링컨이 대통령 취임식 선서 때 손을 얹었던 성경(오바마도 사용)을 비롯하여 진기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뉴지엄(Newseum·뉴스박물관)에는 신문 방송의 뉴스와 관련한 온갖 컬렉션들이 있다. 총에 난사당하여 벌집이 된 취재차량은 기자 출신인 필자의 뇌리에 지금도 생생하다. 3개층 정도를 터서 만든 커다란 벽에는 9·11테러 당시 세계 각국의 신문 1면을 붙여 놓아 당시의 충격을 증언하고 있다. 200여개의 전 세계 신문 속에는 한국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조선일보가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링컨 탄생 200주년 전시회에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연설문 자필 초고와 행복하지 못했던 영부인 메리 토드의 청보라색 벨벳 드레스 등이 전시될 것이다(필자가 방문했을 때 한창 보존처리 중이었다).

스미스소니언의 대중문화 담당 큐레이터는 오늘도 할리우드에 들락거리면서 배우들의 장신구와 옷·구두·모자 등을 수집하고 있으며, 의학 담당 큐레이터는 아기 기저귀까지 주워 모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이처럼 기록·수집·보존·전시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내일이면 역사가 될 귀중한 유산의 가치를 모르고 흘려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일들은 더 늦기 전에 누군가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당연히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