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일터는 일본 도쿠시마(德都)縣(현)에 있는 산간 마을 가미카쓰조(上勝町). 195가구 2021명이 사는 이곳은 일본의 여느 산촌처럼 젊은이는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奧地(오지)다. 마을 전체 인구 중 절반이 65세 이상이다. 이 마을이 몇 년 전부터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 할머니들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젊은이들이 일본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줄을 잇고 있는 것. 지난 1년간 4000여명의 방문객이 이 마을을 다녀갔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상품으로 내놓는 것은 산과 계곡에서 채취하는 갖가지 나뭇잎과 들꽃이다. 단풍잎에서부터 감나무 잎, 댓잎, 연잎 등 종류만 320여가지에 이른다. 할머니들이 매일 채취하는 나뭇잎은 가까이는 오사카와 교토, 멀리는 도쿄와 요코하마까지 대도시 지역으로 팔려 나간다. 산골의 정취가 묻어 있는 이 나뭇잎은 고급 음식점이나 요정에서 요리를 장식하는 데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요리 장식물을 ‘쓰마모노(妻物)’라고 통칭하는데, 가미카쓰 마을 할머니들이 채취하는 나뭇잎은 일본 쓰마모노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나뭇잎으로 버는 연간 수입은 많을 경우 800만엔에서 1000만엔 수준으로 일본 大卒(대졸) 사원의 연봉보다 높다. 10년 전만 해도 정부에서 나오는 연금이나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보내 오는 용돈으로 연명했던 할머니들이 지금은 적지 않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廢村 위기의 마을을 구한 농협 직원
가미카쓰 마을의 쓰키노야도 온천장은 계곡 절벽에 자리 잡고 있어 경치가 뛰어나다. |
가미카쓰 마을은 면적의 86%가 산림이어서 전통적으로 목재 산업과 감귤 등의 과수 농업이 발달한 곳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이곳 경제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일본이 목재 수입시장을 개방하면서부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무렵 사상 유례 없는 한파가 덮쳐 감귤 농사까지 망쳤다.
마을 경제는 바닥을 쳤다. 첩첩산중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아이들은 자라면 너도 나도 마을을 떠났다. 그 시절 공부 안 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말은 “너 공부 안 하면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廢村(폐촌) 위기에 처한 마을의 구세주로 나타난 지도자가 전직 일본 농협(JA) 직원이었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였다. 그는 ‘마을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타 지역 사람이 필요하다’는 마을 이장의 강력한 주장과 요청으로 이 지역 농협 직원으로 급파됐다. 그리고 자포자기의 마을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뭇잎 비즈니스’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1998년 ‘이로도리’라는 영농조합 주식회사를 설립, CEO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쿠시마현으로 향했다.
오사카에서 도쿠시마현 소재지까지는 승용차로 3시간이 걸렸다. 시코쿠마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가미카쓰 마을은 이곳에서 다시 좁고 가파른 산길을 1시간이나 달린 끝에 당도할 수 있었다. 로키산맥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과 깊은 계곡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농가는 계곡을 사이에 둔 숲속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해발 1439m의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서 오후 6시가 되기도 전에 마을은 어둠에 잦아들었다.
‘나뭇잎 비즈니스’의 창시자인 요코이시 도모지 대표. |
필자가 짐을 푼 곳은 (주)이로도리가 운영하는 온천장. 쓰키노야도(月の宿)라 이름 붙여진 온천장은 작고 아담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모텔급 숙소였지만 서비스와 시설 면에서는 5성급 호텔을 능가했다. 먼지 한톨 없는 다다미방에 펼쳐 놓은 새하얀 이부자리며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되어 있는 유카타 등 구석구석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1층 로비에는 이곳 지역민들이 가공한 농산물과 갖가지 공예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젊은 지배인은 온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라고 일러 주었다. 온천장 건물 1층에는 온천탕과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이 있고, 4층에는 (주)이로도리 사무실이 있었다.
늦은 시각이라 우선 1층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갖가지 생선 요리가 깔끔하게 세팅된 음식이 나왔는데, 일본의 여느 식당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싱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결은 요리를 장식한 나뭇잎과 들꽃에 있었다. 요리 색에 따라 장식된 단풍잎, 동백잎, 원추리 등의 이파리들 때문에 요리가 훨씬 풍성하고 격조 있어 보였고, 생선튀김마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신선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급 음식점에서는 나뭇잎을 사용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80세 노인들 인터넷 척척
주문 품목과 자신의 매출 실적을 점검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 쇼부 마키코 할머니. 할머니들이 작동하기 편하도록 마우스가 공 모양으로 생겼다. |
요코이시 (주)이로도리 대표를 만난 것은 다음날 오전 10시였다. ‘나뭇잎 비즈니스’와 <그래, 잎사귀를 팔자!>의 저자로 이미 유명인사가 된 그는 각종 세미나와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도 이웃마을에서 견학 온 주민 50여명을 상대로 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그 때문에 한 시간 이상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그에게 (주)이로도리가 어떤 회사인지부터 물었다.
“이로도리는 주민들을 대신해 기획,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입니다. 나뭇잎 시장과 관계된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후 정확한 수요를 파악, 공급량을 조절하는 일을 하죠. 저희 나름의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통해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기도 하고요. 사업 초기에는 생산과 판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가미카쓰의 나뭇잎 판매는 民官(민관)이 함께 협력하는 구조다. (주)이로도리가 주는 정보에 맞춰 주민들이 상품을 생산하면, 농협이 전국에 퍼져 있는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운송하는 방식이다. 농협은 소비자들을 통해 얻는 정보를 다시 (주)이로도리에 전달한다. 주문은 팩시밀리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오사카에 있는 한 요정에서 가로 30cm, 새로 50cm 정도의 토란잎 30장을 농협에 주문한다. 농협은 이 내용을 농가에 있는 팩스로 발주한다. 그러면 농가는 각자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주)이로도리에 전화로 통보한다. 선착순이라서 처음에 전화한 사람이 30장 모두 소화할 수 있다고 하면 발주는 끝난다.
(주)이로도리는 발주 상황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막대그래프로 공시한다. 각 농가는 집안에 있는 컴퓨터 홈페이지에 뜨는 이 그래프를 보고 주문량에 비해 생산량이 얼마나 부족한지 파악한다. 가령 주문 들어온 토란잎이 30장인데 막대그래프 눈금이 20까지 가 있다면, 나머지 10장은 누구든 먼저 신청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각 농가는 신청한 만큼의 나뭇잎을 오전에 따서 손질한 후 포장하고 고유의 바코드를 붙여 지역 농협에 출하한다. 농협은 농가에서 모인 상품을 모아 12시에 각 도시로 보낸다. 포장비와 배송료는 농가가 부담한다. 가구당 판매 실적은 당일 오후 인터넷 홈페이지에 막대그래프로 표시된다. 농가들은 컴퓨터만 켜면 그날그날 각자의 매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각 농가에 돌아가는 순수익률은 5%의 수수료(이로도리 3%, 농협 2%)를 제해도 판매가의 60~70%나 된다.
요코이시 대표는 “수요에 맞는 공급과 좀 더 신속한 운송 서비스를 위해 생산 농가에 팩시밀리와 컴퓨터를 한 대씩 공급했다”고 말했다. 현재 가미카쓰 마을 전체에 인터넷망이 구축되어 있고, 195세대 중 122세대에 컴퓨터가 보급되어 있다. 요코이시 대표는 “할머니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느라 애를 먹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 마우스 조작이 어려운 할머니들을 위해 공 모양의 새로운 마우스를 개발했습니다. 홈페이지 프로그램도 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화했죠. 시력이 나빠도 쉽게 볼 수 있게 그래픽을 많이 사용했고, 글자도 크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컴퓨터를 두려워하는 할머니들에게 ‘이것만 익히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응원해 드렸더니 모두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더군요. 할머니들에게 컴퓨터 키보드는 이제 녹슬어 가는 뇌를 깨우고 단련시켜주는 ‘氣(기)보드’입니다. 8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돈을 버는 곳은 아마 전 세계에서 우리 마을이 유일할 거예요.”
“그래, 나뭇잎을 팔자”
가미카쓰 마을은 시코쿠 도쿠시마현에 있다. |
(주)이로도리 사무실에는 요코이시 대표 외에도 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도쿄나 오사카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자원해서 이곳까지 내려온 젊은이들이다.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우에노 아야 씨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靑山)대학 재학 중 환경단체에서 실시하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졸업 후 이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이곳에 내려와 파워포인트 작업을 많이 하는 그녀는 “내가 가진 재능을 이곳만큼 알아주는 곳이 없다”며 “조용하고 아름답고, 마을 분들 모두가 한가족처럼 지내는 이곳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연봉은 도시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적지만 대신 주택비라든가 교통비가 들지 않아 실제 수입은 비슷하다”고 했다.
농가 소득에서 떼는 3%의 수수료만 가지고 (주)이로도리 운영이 가능한지 요코이시 대표에게 묻자 그는 “회사 운영은 각종 강연료와 온천장 수입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답했다.
요코이시 대표는 사무실의 젊은 직원들을 바라보며 “이곳의 할머니들 이야기가 전국에 퍼지면서 저희 회사에 와서 일해 보고 싶다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온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뭇잎 사업은 평소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자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케이스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가치를 창출한 경우죠. 이것이 최근 들어 일본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는 시골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려는 젊은이들의 전화 문의가 폭주하고 있어요. 일본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나뭇잎이 일으킨 작은 바람이 마을은 물론 일본을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20년 전 요코이시 대표가 처음 마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두 손 두 발 든 채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만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에게 나뭇잎이 황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 주는 일은 정말 인내력을 요하는 싸움이었다”고 회고했다.
요코이시 대표가 나뭇잎을 돈으로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농협 직원이었던 그는 지역 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오사카나 교토 등의 대도시에 나가 사람 만나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오사카의 고급 식당에 들른 그는 젊은 여자가 초밥 위에 장식된 단풍잎을 손수건에 고이 싸서 핸드백에 넣는 것을 보고 ‘그래, 바로 저거야’ 하며 무릎을 쳤다.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됐습니다. 단카이(團塊) 세대(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1949년 사이 베이비 붐으로 태어난 세대)의 대부분은 농촌 출신이죠. 이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 항상 산골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죠. 나뭇잎은 바쁜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자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좋은 오브제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눈에는 가미카쓰의 아름다운 자연이 황금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는 “산과 계곡이 편의점의 진열장처럼 보였다”며 웃었다.
요정에서 물벼락 맞으며 시장 개척
도시로 운송되기 위해 집하장에 모인 나뭇잎들. |
곧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나뭇잎을 팔아 돈을 벌자”고 외쳤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흔해 빠진 나뭇잎 따위가 무슨 돈이 되느냐”며 “쓸데없는 짓 벌이려거든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화를 내는 이가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한편 시장 개척에 앞장섰다. 오사카와 고베 등의 고급 요정을 찾아다니며 수요를 분석한 것이다. 돈이 없어서 주인들에게 쫓겨난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님으로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돈이 없어 도둑고양이처럼 뒷문으로 숨어들곤 했죠.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는 천하에 둘도 없는 고관대작처럼 대접하지만 뒷문으로 들어갔을 때는 거지 취급을 하는 곳이 고급 요정입니다. 종업원들에게 물벼락을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요정뿐만 아니라 유명 온천의 식당을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그의 집념에 감동한 업소 주인들이 하나둘 그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였고, 상품을 받겠다고 나섰다. 이제 남은 문제는 주민들의 참여였다. 그는 “나뭇잎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귀를 닫아 놓은 주민들에게 최후 극약 처방을 썼다.
“말로는 도저히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아 현장 탐방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민들 수십 명을 모시고 오사카의 요정으로 갔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모두들 좋다고 따라 나서더군요. 그곳에서 나뭇잎이 요리를 어떻게 돋보이게 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게 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주민들은 마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나뭇잎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일이 쉽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여전히 “나뭇잎 팔아 얼마나 벌겠느냐”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깨뜨린 이가 올해 83세의 쇼부 마키코(菖蒲增喜子) 할머니였다. 쇼부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해 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 도와야지 않겠느냐”며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요코이시 대표가 예정된 강연을 하는 사이 온천장에서 2km 거리에 있는 쇼부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작업실에 앉아 다음날 출하할 참나무 잎을 다듬고 있었다. 전지가위로 필요 없는 줄기를 자르고, 스티로폼 용기에 10장씩 담은 뒤 투명비닐 랩으로 포장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참나무 잎은 10장들이 1팩당 250엔을 받는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참나무 잎을 직접 딴 것이냐고 묻자 “나뭇잎 따기는 위험해서 남편이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오전에 작업한 상품을 출하하기 위해 집하장인 농협에 가고 없었다. 할머니에게 “건강하시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아픈 데가 없어졌어요. 치매에 걸릴 일도 없죠. 일이 보약입니다. 이 나이에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에요. 예전에는 대처에 나간 자식들한테 용돈을 받아 썼는데, 지금은 되레 내가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고 있어요. 그랬더니 한번 올 거 두번 세번 옵니다.”
무슨 일이든 솔선수범
가미카쓰 마을 쓰키노야도 온천장에서 저녁 식사로 나온 요리에 장식된 나뭇잎. |
이 지역의 많은 농가들이 그렇듯 쇼부 부부도 젊은 시절에는 감과 감귤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과수 농사만으로는 자식들을 공부시킬 수 없어 남편이 토목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일하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즐거워요. 이 일은 우리 같은 늙은이도 쉽게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나뭇잎은 무겁지 않잖아요. 마당에 있는 감나무 잎이 돈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쇼부 할머니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매출량을 보여주었다. 쇼부 할머니 집 마당에는 100년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가을과 함께 붉게 물들어 가는 감나무 잎이 빳빳한 지폐처럼 보였다.
요코이시 대표는 “자연이 보물”이라며 “주민들이 이제는 이곳에 있는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끼가 낀 돌멩이를 주문한 거래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갈수록 고객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반쯤 벌어진 밤송이를 보내 달라는 곳도 있고, 이른 봄 매화 꽃봉오리를 주문하는 고객도 있어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고객이 원하는 색상과 모양에 맞추다 보니 지금은 산에서 채취한 것보다는 비닐하우스 등을 이용해 재배하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오전 12시, 온천장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는 농협 집하장에는 각 농가에서 포장한 갖가지 나뭇잎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감잎부터 연잎까지 종류와 크기도 다양했다. 이날 집하장은 태국에서 견학 온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신기한 듯 포장된 나뭇잎에 연방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적는 여학생 하나를 발견했다. 와세다대 인간과학부 3학년에 재학중인 나카토 마유 양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밤차로 왔다는 그녀는 “대기업에서 1주일 동안 인턴십 과정을 밟을 예정인데, CSR(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관련 제안서를 내기 위해 공부하러 왔다”고 말했다. 나카토 양의 이야기다.
“여기 오기 전 마을에 있는 쓰레기 분류장을 보고 왔어요. 생활 쓰레기를 34가지로 분류해 놓았는데 놀랍더군요. 환경을 소중히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미카쓰는 나뭇잎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쓰레기 없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요코이시 대표는 “참여를 통해 성취감을 맛본 이후 주민들은 무슨 일에든 열심이고, 솔선수범한다”고 했다.
“농촌에 인력이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기 부여만 되면 젊은이 못지않은 힘을 발휘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이고, 누군가가 희생을 감수하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코이시 대표는 “할머니들의 신바람 나는 삶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일식 요리가 세계화된 만큼 이제 ‘나뭇잎 비즈니스’도 세계로 뻗어나갈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화 전략까지 세워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