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일본

일본 농산물 직매장 판매 1위 - 메케몬 히로바(廣場)

화이트보스 2009. 2. 5. 21:15

일본 농산물 직매장 판매 1위 - 메케몬 히로바(廣場)
 
B급 농산물로 연간 매출 25억 엔을 올리는 비밀
 
徐喆仁 月刊朝鮮 기자 (ironin@chosun.com
메케몬 히로바 매장.
 ‘농업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오사카에서 와카야마(和歌山)현으로 가는 길 곳곳에 붙어 있는 일본 농협(JA)의 표어다. 와카야마현 중심부에 위치한 ‘메케몬 히로바’(廣場이란 뜻)는 농협의 이런 의지와 와카야마현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탄생한 일본 농산물 직매장 판매 1위 업체다. 2000년 문을 연 농산물 직매장 메케몬 히로바의 올 매출은 25억6000만 엔.
 
  메케몬 히로바는 오사카에서 1시간30분, 나라에서 5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매장 총면적(주차장과 사무실 포함)은 6696㎡, 농산물이 진열돼 있는 순수 매장은 967㎡로 그리 넓지 않다. 시골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농산물 직매장의 성공 신화가 궁금해 지난 9월 초 이곳을 찾았다. 메케몬은 ‘발견하다’는 뜻의 이 지역 방언이라고 한다.
 
  오전 8시. 개장 시간을 한 시간 앞둔 메케몬 히로바는 분주했다. 올해 팔순의 호쿠나카 씨 부부는 금방 따온 과일과 야채를 자식 다루듯 정성스럽게 진열하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통통하게 살이 오른 세 개들이 가지 한 봉지가 120엔이다. 허리가 90도로 휜 호쿠나카 씨는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채마밭이 있어서 매일 아침 수확한 가지와 콩을 들고 나온다”며 수줍게 웃었다.
 
  “수확량이 적어 전에는 이웃끼리 나눠 먹었는데, 메케몬 히로바가 생기고 난 후 이렇게 팔 수 있어서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요. 저희 집 가지는 맛이 좋아 오후가 되면 다 팔리고 없습니다.”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매장에 진열하고 있는 호쿠나카 씨.

  메케몬 히로바는 대도시의 유통업체와 계약재배를 하는 대규모 영농인보다 호쿠나카 씨처럼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좋은 판로다. 작고 못 생겨서 도시에 있는 대형 매장의 구매 담당자가 외면하는 농산물도 이곳에서는 불티나게 팔린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은 외형이 볼품없는 야채지만 신선도나 영양 면에서는 오히려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사가구치 유코(65) 할머니는 매장 뒤편에 있는 사무실에서 손바닥만한 화분에 부지런히 바코드를 붙이고 있었다. 돈벌이보다 소일거리로 화분을 가꿔 판다는 할머니의 월 평균 수입은 5만 엔 정도. 사가구치 할머니는 “지난 여름에는 올림픽 중계를 보느라 메케몬 히로바에 통 나오지 못했다”며 소녀처럼 깔깔댔다.
 
  “내 화원은 1000㎡(300평)가 채 안 됩니다. 온실이 없어서 재배하는 화초 종류도 많지 않아요. 그렇지만 난 내 자식처럼 온 정성을 다해 화초를 가꾼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내 화분을 구입해 가면 자식을 分家(분가)시키는 것처럼 섭섭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요.”
 
  성격이 명랑한 사가구치 할머니는 “고혈압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이 일을 하면서 다 나았다”며 “앞으로 2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출하할 화분에 바코드를 붙이고 있는 사가구치 유코 할머니.

  매장 안 가공식품 코너에서 만난 모리시타 가오리(36) 씨는 아침에 구운 빵을 진열한 후 막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녀 곁에는 다섯 살배기 아들이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리시타 씨는 “이 지역에서 나는 천연재료로 빵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했다.
 
  “다섯 개들이 빵을 매일 아침 30봉지씩 만들어 출하하고 있는데, 재고가 거의 없어요. 상품가치만 없을 뿐 신선하고 맛이 좋은 과일이나 야채를 재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정용 오븐에 굽기 때문에 별도의 투자비용이 없어서 좋아요.”
 
  모리시타 씨가 빵을 만들어 올리는 한 달 수입은 30만 엔. 이혼 후 두 아이와 함께 친정에 살고 있는 그녀는 “메케몬 히로바 덕분에 생활비 걱정 없이 산다”고 말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과수 농사를 짓는데, 힘쓸 남자가 필요하다”며 “괜찮은 한국 남자 하나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농담까지 했다.
 
  매장 밖 휴게실에는 진열을 끝낸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올해는 감귤 밭에 퇴비를 많이 주었더니 수확이 늘었다”라든가 “내년에는 복숭아 품종을 바꿀 계획”이라는 등 주로 농사 정보가 오고 갔다. 모두가 70대 이상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메케몬 히로바 매장 입구.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

 
  일본 유일의 식품 전문 마트
 
다섯 살배기 아들과 함께 나온 모리시타 가오리 씨.

  아침 9시. 오전 6시부터 시작된 메케몬 히로바의 손님맞이 준비가 끝났다. 생산자들이 떠난 매장을 오사카, 교토, 나라 등지에서 온 소비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과일 코너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고르고 있던 오노 씨를 만났다. 오사카에서 왔다는 그녀의 카트에는 감자와 연근 등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한 달에 서너 차례 이곳에 오는데, 야채나 과일 가격이 오사카의 절반 정도로 싸다”고 말했다.
 
  “집에서 여기까지 승용차로 오는 데 1시간30분이 걸립니다. 고유가 시대에 기름 값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은 없어요. 그렇지만 산지에서 금방 출하된 것이기 때문에 신선하고, 생산하신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안심이 돼요.”
 
  오노 씨가 메케몬 히로바에서 쓰는 돈은 한 달에 2만~3만 엔 정도다.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의 소도시에서 왔다는 구지카 씨 역시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로 ‘신선도와 안전성’을 꼽았다. 그녀는 “저온 창고에서 며칠씩 묵은 야채보다는 밭에서 금방 따온 야채가 더 신선하고 안전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가장 좋은 냉장고는 자연”이라고도 했다.
 
  메케몬 히로바는 공산품을 취급하지 않는 일본 유일의 식품 전문 마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이곳에서는 와카야마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가공한 농산물 1200~1500여 종류가 1년 내내 판매된다. 매장 관리 책임자인 스즈키 마사토미(鈴木雅富) 점장은 “이곳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친구가 되는 곳”이라며 “오사카에서 오는 고객이 전체의 50%를 차지하지만 고베나 교토 등 승용차로 두 시간이 넘는 곳에서 오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메케몬 히로바는 기노사토 농협(인근 5개 마을의 단위조합)이 마련한 매장에 생산자들이 각자의 농산물을 포장하고 상표를 붙여 진열해 놓으면 매장 직원들이 관리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오픈 마켓이다. 스즈키 점장은 “매장 직원은 파트타임까지 합쳐서 56명밖에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농촌 출신입니다. 農家(농가)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좀 더 많이 판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농가 생산자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힘들 때도 많지만, 그분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절로 힘이 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보람도 느끼고요. 메케몬이 죽어 가던 이곳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요.”
 
  기노사토 농협은 판매 수익금의 15%를 수수료로 제하고 나머지 85%를 농가에 배분하고 있다. 농가 소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아 벤치마킹하러 오는 地自體(지자체)가 많았다. 연 매출 20억 엔이 넘었을 때부터는 농업 관련 연구원들이 몰려와 메케몬의 유통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며 연구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느 분야든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숨은 노력이 있게 마련이다. 메케몬 히로바 역시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숱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했고,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메케몬 히로바의 설립과 성장 과정을 기노사토 농협의 모리다 다이지(森田泰次) 상무에게 들었다. 그가 필자를 안내한 메케몬 사무실 벽에는 ‘농업이 건강해야 지역이 건강하고, JA가 건강하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B급 농산물 판매로 승부
 
매장 관리 책임자인 스즈키 점장(왼쪽)과 기노사토 농협의 모리다 다이지 상무.

  메케몬 히로바의 역사는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와카야마현은 일본의 여느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기노사토 농협은 외부 전문가 팀에 의뢰해 ‘앞으로 농업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컨설팅을 받았다. 모리다 상무의 말이다.
 
  “컨설팅 결과 못생기거나 긁힌 상처 때문에 버려지는 농산물까지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하루속히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조합원 대표와 농협 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무려 3년여 토론을 벌였고, 지금의 메케몬 형태의 마켓을 만들기로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물론 농협 이사회까지 반대하고 나섰어요. 대형 양판점까지 철수하고 있는 마당에 B급 농산물을 위한 마켓이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1995년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농촌의 경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1994년 150억 엔이던 와카야마 현 전체 농가 수입이 2000년에는 50억 엔으로 줄었다. 운영위원회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칼을 뽑아 들었다. 맛과 영양 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모리다 상무는 “출범 당시 운영위원회는 ‘앞으로 3년 동안 매출이 5억 엔이면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8억 엔 이상이면 괜찮은 것’이라는 말로 반대자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 출범 첫해에 참가한 농가는 700여 가구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매출이 10억 엔을 뛰어넘자 참여 농가가 1500여 농가로 불어났죠. 매출은 계속 증가해 설립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20억 엔을 돌파했습니다.”
 
  메케몬 히로바의 경쟁력은 외형상으로는 B급이지만 맛과 영양 면에서 뛰어나고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데 있다. 품질과 신용으로 승부하는 곳인 만큼 생산자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였다. 모리다 상무는 “매년 생산자인 농가에 협정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며 품질과 신용 관리 노하우를 소개했다.
 
  “모양보다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제공하자는 것이 우리의 원칙입니다. 이를 위해 5년 전부터 생산 이력제를 실시하고 있어요. 참여 농가에 한해 언제 씨를 뿌리고 어떤 농약을 쳤는지 등을 기록하는 재배일지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재배일지가 없는 농산품은 메케몬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메케몬 히로바에는 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 잼이나 통조림 등 가공품도 상당수 진열돼 있다. 가공품의 경우 들어간 재료와 가공 방법을 기록한 재료 증명서가 있어야 출하가 가능하다. 이런 제도 덕분에 소비자들이 클레임을 거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문제가 생겨도 시정이 빨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가 탄탄하다고 한다.
 
  먹거리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깐깐한 일본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B급 농산물 전문 매장이었던 메케몬 히로바는 이제 A급 농산물까지 취급하는 매장으로 성장했다. 모리다 상무는 “메케몬 히로바의 내년 매출 목표는 30억 엔”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유통 시스템 진화 중
 
(주)농업총합연구소의 오이카와 대표.

  메케몬 히로바는 출범 3년여 만에 와카야마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황폐화되어 가던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일본 농업과 유통이 가야 할 모범 사례로 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메케몬 히로바가 모든 농업인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메케몬 히로바는 와카야마현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가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소규모로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대형 매장에 납품하고 남은 자투리 농산품의 판매처로 문을 연 곳이기 때문. 메케몬 히로바가 유명해지자 대규모 농가들 사이에서는 “농협이 우리의 판로는 개척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메케몬 히로바의 이런 맹점과 대규모 농가들의 불만을 해결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주)농업총합연구소의 오이카와 도모마사(及川智正ㆍ30) 대표다. 그는 대규모 농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유통회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매상에 공급해 주는 새로운 전산 시스템을 구축, 일본 유통업계로부터 주목 받고 있다. 메케몬 히로바에서 멀지 않은 와카야마시의 (주)농업총합연구소에서 오이카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젊고 의욕적이었으며, 농촌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그는 “도쿄농대 졸업 후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다 뜻한 바가 있어 도쿄에서 3년 동안 농사를 지었고, 오사카로 내려와 야채 가게를 운영하다 5년 전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시스템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의 기존 농산물 유통 시스템은 대형 유통 업체를 통해 대도시로 출하된 후 다시 소도시로 공급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산자에게는 가격 주도권이 없었고, 소도시의 소매상에는 신선도가 많이 떨어진 농산품이 산지보다 몇 배나 높은 가격에 공급됐다. 이런 유통 구조 때문에 생산자는 품질과 상관없이 평준화된 가격만 받아야 했다. 오이카와 대표는 오사카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던 당시 이런 폐단에 주목, 새로운 농산물 유통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그의 설명이다.
 
  “제가 개발한 농산물 유통망은 산지에서 가까운 도시에 메케몬 히로바 같은 위탁판매소를 설치한 후 그날 출하된 농산물을 각 도시의 매장에 공급해 주는 방식이죠. 이 경우 위탁판매소는 생산자들로부터 수수료를 뗄 필요가 없습니다. 생산자와 매장 간 직거래 시스템을 해당 소매상에 팔아 수익을 내면 되니까요.”
 
  그가 개발한 시스템은 쉽게 말해 소매상의 재고 상태를 위탁판매소에서 체크하고 부족한 농산물을 바로 공급해 주는 전산망 시스템이다. 그는 “이렇게 하면 생산자는 소매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매장은 다품종 소량의 농산물을 가장 신선할 때에 공급받을 수 있어서 고객 확보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업 초기라 와카야마현에 있는 수퍼마켓들을 고객으로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사카나 고베 같은 대도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에요. 일본의 소매상들은 좀 더 신선하고 믿을 만한 농산품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사업은 비전이 밝죠.”
 
  현재 생산자와 판매자 간의 판매 수익 배분은 78% 대 22%다. 그의 사업에 동참한 농가는 현재 300가구가 넘는다. 오이카와 대표는 “생산자와 판매자가 다 같이 풍요로운 농촌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 태국, 두바이 등 세계 곳곳에 와카야마현의 특산품인 감과 귤을 수출한다는 밑그림까지 그리고 있었다.
 
필자(맨 오른쪽) 일행과 기념촬영한 (주)농업총합연구소의 오이카와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젊은이를 농촌으로 모십니다”
 
(주)농업총합연구소의 생산자 대표인 후미오 고다마 씨.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생산자 대표인 후미오 고다마(兒玉典男) 씨가 함께했다. 감귤과 대봉(감)을 5ha 경작하고 있다는 그는 “오이카와 대표처럼 똑똑하고 의욕적인 젊은이가 많아야 농촌이 발전한다”며 이렇게 당부했다.
 
  “꽃이 피기 전에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꽃이 피고 나면 가만히 있어도 많은 분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와카야마현은 도시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와카야마현 농업공사 사무실에서 만난 일본 농림수산부 농지활용팀의 마에다 기미히로(前田公博) 씨는 “와카야마현은 고령농들이 내놓는 농지를 매입한 후 농사 짓기를 희망하는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일정 면적의 토지를 2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해 주고 있고, 歸農(귀농) 자금도 2800만 엔까지 무이자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와카야마현의 농지는 총 3만6000ha 정도 됩니다. 이 중 농사를 포기한 농가로부터 146ha의 농지를 와카야마현 농업공사가 매입해 소유하고 있어요. 현은 이 농지를 도시에서 귀농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 줄 뿐 아니라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의 농지를 저렴한 조건에 경작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농지의 위치나 지질에 맞는 작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 주기도 합니다. 그밖에 자녀 교육, 주택, 농기구 지원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노력의 결과 와카야마현은 해마다 귀농인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연 평균 140명의 젊은이가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농업공사의 모토하루 무카이(向井元治) 사무국장은 “현을 빠져나가는 인구가 연 평균 200명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귀농인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외국인도 농사를 짓겠다고 오면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느냐”고 했더니 “일본 여자와 결혼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열심히 자료를 뒤적이며 와카야마현의 농업 인구 변화를 설명하던 요코가와 히로요시(橫川弘義) 씨는 필자와 동행한 한국의 농협중앙회 농촌사랑추진단 직원에게 ‘1社(사) 1村(촌)’에 관한 질문을 던져 일행을 놀라게 했다. 결국 이날 자리는 양국의 농촌지원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국제 세미나장으로 바뀌어 약속된 인터뷰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초과했다. 일본 농업공사팀은 “기회가 되면 한국을 꼭 방문해 1사 1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와카야마현을 떠나 오사카로 가는 길 곳곳에 내걸린 ‘농업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표어는 비단 농협뿐만 아니라 일본 전 국민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