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3·1 운동 90돌]동굴벽 꾹꾹 눌러쓴 민족혼

화이트보스 2009. 2. 24. 09:13

[3·1 운동 90돌]동굴벽 꾹꾹 눌러쓴 민족혼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태극기와 대한독립군의 명단(위). 아래 사진은 태극기 등이 그려져 있는 동굴 입구. 태극기와 명단은 비바람에 일부가 희미해진 상태여서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사진(위) 제공 김춘선 연변대 민족역사연구소장
옌볜서 항일운동 유적 발견

은거지 동굴 입구에 ‘대한독립군’ 글자와 4명이름 적혀


일제강점기의 태극기와 독립군 이름이 적혀 있는 동굴이 중국 지린() 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발견됐다.

2000년대 초 랴오닝() 성에서 독립군 장교가 은신하다 아사()했던 동굴이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독립군의 은신처로 사용된 동굴에서 태극기 벽화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는 3·1운동 90돌을 맞아 김춘선() 연변대 민족역사연구소장,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 장세윤 연구위원과 함께 간도() 지역 독립투사의 혼이 어린 3·13운동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 동굴을 직접 확인했다.

동굴이 발견된 지점은 옌볜 자치주 왕칭() 현 뤄쯔거우() 진 타이핑거우() 촌 인근의 산 중턱. 동굴은 높이 10m, 너비 4m, 길이 4m 크기로 앞자락이 급경사여서 은신이 용이하고 계곡으로 올라오는 적을 탐지하기가 쉬운 곳이다.

2007년 3월 동굴을 처음 확인한 김 소장의 안내에 따라 16일 동굴로 올라갔다.

동굴 오른쪽 입구 벽에 가로 40cm, 세로 30cm 크기의 태극기가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태극기에서 왼쪽 위로 30cm 떨어진 곳엔 (대한독립군)이라는 글자와 함께 (이준) (양희) (지승호) (장태호)라는 4명의 이름이 세로로 적혀 있었다.

동굴 벽화의 태극은 상하로 구분된 현재의 태극기와 달리 좌우로 구분돼 있고 4괘 중 건곤()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었다. 또 가로 세로의 비율도 현재와 같은 3 대 2가 아니라 4 대 3이었다. 먹물로 그린 듯한 태극기와 명단은 비바람 때문인 듯 4괘의 형태가 일부 흐려졌고 ‘대한독립군’ 글자 중 ‘독립군’은 희미해진 상태여서 정부의 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와 전문가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송명호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은 “태극의 방향이나 괘의 위치로 보아 1923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에 내걸렸던 태극기와 비슷하다”며 “1920년대 간도 지역의 독립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극기 전문가인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동굴에 피신한 독립군이 당시 태극기 정본을 그대로 그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태극기 형태만으로 연대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초 이 동굴은 1962년 북한 역사학자들이 김일성의 항일 유적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했으나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대한독립군이라는 글자가 나오자 사진 한 장만 간단히 찍은 뒤 조사보고서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소장은 “이 사진을 뒤늦게 옌볜박물관에서 발견하고 동굴의 소재 추적에 나서 2년 만에 소재를 확인했다”면서 “동굴에 적힌 4명의 이름은 지금까지 드러난 독립군 명단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칭(옌볜)=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