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색마을]잉어마저 감동시킨 효자마을
[전라도이색마을]<26> 장흥군 부산면 효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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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생인 안세룡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 섬김이 ‘출천지효’(出天之孝)였다. ‘하늘이 낳은 효자’ . 신마저 감동케 한 것이 다섯차례였다. 선몽을 통해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감화시켰다. 이웃들이 본을 받았다. 하찮은 미물까지 숙연케했다. 까마귀가 오이를 물어다 줬고 눈 속에서 구렁이가 나와 스스로 약이 되기를 청했다. 얼음속에서는 잉어가 뛰쳐나왔으며 크고 사나운 개는 꼬리를 흔들며 순응해 부모 봉양에 도움이 됐다.
민심이 하늘에 이르고 궁에 닿았다. 예조에서 표창을 내렸다. 그러나 후손은 미약해 자그마한 정려도 버거웠다. 사림들이 개탄하고 애석해 했다. 1894년 갑오년 춘기 석전제 다음날 동리에 사는 이들, 특히 이교근, 김익용, 백의인, 김한용 등이 발의했다. 향중 유림들이 나섰다. 이용태 장흥부사에게 천장(일종의 건의문)을 올렸다. 이 부사는 이를 가상히 여겼다. 부사는 마을 이름을 효자리로 개칭했다. 유림들은 같은 해 8월 효자비를 세웠다. 효자비는 원래 큰 길가에 있었으나 지금은 군도 확장공사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졌다.
효자 안세룡의 직계손인 종기씨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갔다 만주에서 여생을 마쳤다. 5대손 동화씨는 중국 흑룡강에서 살고 있다. 전남 장흥군 부산면 효자리. 탐진강을 앞에 두고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먹을 거리도 풍부해 인심이 넉넉하다. 마을 앞 쉼터에서 예닐곱 분의 어른들이 여름한철 더위를 피하고 있다.
‘효자리’에 대해 물었더니 너나없이 자랑에 여념이 없다.
남다른 교육열에 ‘출세한’이들을 열거했고 의와 절개를 보인 의마총을 들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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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마총’(義馬塚).
조선 중기의 무신인 문기방 장군. 본관은 남평. 자는 중률(仲律). 고려 강성군(江城君) 문익점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무예에 뛰어났다.
선조 24년(1591년)무과에 급제, 수문장이 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라병사 이복남의 휘하에서 활약했다.
1597년 재침한 왜적들과 남원에서 싸우다가 몇 겹으로 포위되자, 옷소매에 혈서를 쓰고 격전 끝에 이복남과 함께 전사했다. 당시 타던 말은 전사한 주인의 죽음을 알리려 남원에서 효자리까지 달렸다. 말은 이후 구유통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이 말을 먹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말은 주인의 뒤를 따랐다. 마을사람들은 말을 고이 장사지냈다. 말 무덤은 지금도 동네사람들이 때가 되면 벌초를 하고 가꾼다. 주인인 문기방 장군은 남원의 충렬사에 배향됐다.
효와 절개에 관한한 장흥 부산면 효자리를 첫손에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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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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