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칼럼]‘벼룩의 간’을 빼 먹는, 참 나쁜 사람들 |
논설실장 kimsg@namdonews.com |
입력시간 : 2009. 03.18. 00:00 |
세상살이가 아무리 험악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탈을 쓰고서 해서는 안 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어린이나 부녀자를 유괴·납치하는 행위요, 또 하나는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처지보다 못한 이들의 등을 쳐먹는 행위이다. 이 모두 하나같이 파렴치한 짓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지탄받는 행위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과 다름없는 마지막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벼룩의 간’을 빼먹는 인간들이 부쩍 늘어 사회적 충격이 크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 이어 해남지역에서도 일선 공무원이 기초생활대상자에게 지급돼야 할 생계비·주거비 등 복지급여 10억원대를 횡령한 사건이 발생해 지역민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해남군 모 읍사무소에서 복지급여를 담당한 7급 여직원 장모(40)씨가 지난 2002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5년 동안 복지급여 10억원을 횡령해 쇠고랑을 찾다. 장장 5년이라니,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장씨는 횡령을 위해 남편과 아들 등 친인척 차명계좌 9개와 지인·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 부탁해 만든 차명계좌 25개 등 총 34개의 통장을 개설해 돈을 쏙쏙 빼먹은 것이다. 정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는다.
더욱 우리를 공분케 하는 것은 장씨는 횡령한 10억원 중 5억원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5억원은 토지 취득과 채무변제, 고급 승용차 구입, 해외여행비 등의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씨는 횡령사건에 앞서 본인과 가족 명의로 해남군 일대에 2만4840㎡에 달하는 전답을 소유했으나, 복지급여를 빼돌려 부동산을 3만9780㎡(1만평) 규모로 불린 것이다. 세상에 그 돈이 무슨 돈인가. 최상위 계층들의 생계자금으로 나가야 할 돈을 개인의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며, 일벌백계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씨가 5년에 걸쳐 10억원의 복지급여를 빼돌리는 동안 해남군은 도대체 뭘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을 해남군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과연 이 엄청난 사건을 여자인 장씨 혼자서 했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번 사건에서 보듯 사회복지 보조금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있다. 현행 시스템은 대상자 선정에서부터 지급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담당 공무원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그들이 불량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조금을 가로챌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이상 사회보조금이 다른 곳으로 새 나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사회보조금이 새 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키 위해선 먼저 예산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각 기초단체에서 은행을 통해 지급하는 사회복지 급여의 개인 입금 내역서를 확보, 주기적인 대조작업을 통해 지급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또한 차명계좌를 이용한 횡령사건을 방지키 위해 실명의 급여 전용통장을 발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문제다. 그리고 내부감사 외에 외부기관에 감사를 의뢰해 대상자 선정과 보조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제아무리 제도를 보완하고, 입 아프게 투명성을 강조한다해도 공직자들의 ‘공직 윤리’가 바로 서지 않으면 말짱 도루목이다.
특히 노령인구와 사회취약계층이 많은 전남지역은 연간 사회복지 보조금 지급액이 무려 7천억원에 달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해남 사건이 말해주듯 해당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해남과 같은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해남 사건을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