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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해야

화이트보스 2009. 4. 24. 10:38

노 전 대통령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도록 해야

입력 : 2009.04.23 22:27 / 수정 : 2009.04.23 23:32

 

검찰이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측이 이번 주말까지 답변서를 보내오면 이르면 다음 주 중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의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포괄적 뇌물죄는 직무 범위가 넓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적용돼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007년 6월 100만달러, 2008년 2월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거쳐 아들 건호씨 사업 자금으로 들어간 500만달러,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고 밝힌 3억원, 회갑 선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 2개 등 70억원가량의 수뢰(收賂) 의혹을 받고 있다. 대부분 우리 돈이 아니라 달러로 주고받았고 그 장소도 대통령 관저 안방이었다. 다른 공직자였다면 검찰은 백발백중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것이고 법원 역시 틀림없이 영장을 발부했을 사안이다.

권양숙 여사는 지난 9일 정상문 전 비서관의 3억원 수뢰 혐의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때 법원에 팩스를 보내 "그 돈은 내가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노 전 대통령도 홈페이지에 똑같은 주장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이런 주장이 감안돼 정 전 비서관은 일단 풀려났으나 그후 이 돈은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그대로 있는 게 드러났다. 전직 대통령과 그 부인이 거짓말과 입 맞추기로 대한민국 사법 절차를 공공연히 방해했다는 혐의까지 받게 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예산인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도 빼돌린 게 밝혀져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측은 박 회장과 오간 돈 거래에 대해 "퇴임 후에 알았다", "최근에야 알고 크게 화를 냈다", "집(부인 권 여사)에서 빌렸다"는 식으로 말해왔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은 해외의 조세피난처에 세운 유령회사 등을 이용해 500만달러를 받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 검찰이 증거를 들이대면 증거를 댄 만큼만 시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증거 인멸과 조작의 가능성'이란 측면에서도 구속을 피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그것도 부패와 부정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었다고 자임(自任)해 온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의(囚衣)를 입고 수갑을 찬 채 다시 법정에 서는 모습을 봐야 하는 현실에 참담해하고 있다. 전 세계의 안방에 이런 망신스러운 모습이 비친다는 것만 생각해도 자존심이 상한다.

노 전 대통령은 22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했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처지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이 탄압받는 약자(弱者)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모종의 법정 드라마를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검찰은 지금까지 박연차 게이트 관련 피의자를 상대로 숱하게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벌였으면서도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계좌에 대해선 추적을 하지 않았고 봉하마을 집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무리하게 몰아붙이는 수사로 비칠 경우, 뇌물비리 사건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대한민국 법률의 엄정함을 보이고 최고 권력자 일족의 윤리적 타락의 실상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현재의 권력에 대해서도 교훈을 주면서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신을 더 이상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엄정하게 하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하고 법원이 그 죄를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에 모든 것을 다 거는 듯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박연차씨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현 정권의 실세로 꼽히는 사람, 현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을 했던 사람, 검찰의 검사장, 법원 고법부장판사, 경찰 고위간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추궁해 진실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 가차 없이 수사를 벌여야 한다. 검찰은 자신의 비리(非理)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부패 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공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번 수사의 목적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