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 ⑦`율곡'(栗谷) 입안과 한미연합사 창설

화이트보스 2009. 5. 18. 19:57

제1話 溫故知新 ⑦`율곡'(栗谷) 입안과 한미연합사 창설

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이 재 전 예·육군중장

나는 30년 군문(軍門)에 있는 동안 합동참모본부에서 두 번 근무했다. 한 번은 소장 시절 합참 전략기획국장(1974~75년)으로, 다른 한 번은 중장 시절 합참본부장 겸 대간첩작전본부장(78년)으로 근무했다. 나는 그 기간 중 개인적으로 한국군 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된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하나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곡'(栗谷)사업이라는 한국군 최초의 전력 증강계획을 입안·추진하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부의 정권 교체를 계기로 주한미군의 재편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재검토가 한·미 간의 현안으로 `공식화'되었다. 리언 J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0일 한국국방연구원(KIDA)·미 헤리티지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동맹관계를 변혁(transform)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한국 내의 반미 정서와 이른바 `동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노무현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아예 양국 간 동맹체제의 근간인 상호방위조약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근간인 한미연합사 창설에 관여한 당사자로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게 된 것도 유엔군의 철수에 따른 주한미군 지위변경론과 주한미군 철수론이 그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50년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각국 군대는 53년 전쟁이 끝난 뒤 바로 철수를 시작했다. 따라서 이미 50년대 말부터는 미군을 주축으로 한 2~3개국 군대만이 국제연합군의 이름을 지켜왔다. 그러다가 72년 미군과 함께 남아 국제연합군으로서 유엔군의 성격을 유지시켜준 태국군이 중대 규모의 잔여 병력을 철수함으로써 유엔군은 사령부와 깃발만 남게 되었다. 이로써 주한미군은 탈(脫)유엔군화라는 중대한 변화를 맞게된 것이다.

이와 같은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에 뒤이어 74년부터는 작전명령 계통 및 지휘부의 변화가 잇따랐다. 즉 74년 7월부터 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 및 미제8군사령부의 기능이 통합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이듬해인 75년 2월 미 상원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병력과 정책에 관한 보고서'에서 뒤늦게 밝혀져 당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이 보고서는 “한국에 있는 3개 사령부가 통합 주한미군사령부로 개편되어 407개의 직책과 28%의 인원 절약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즉 미군은 발표가 있기 훨씬 전부터 행정의 능률을 꾀하기 위해 인사·정보·작전·병참 등 3개 사령부의 유사한 참모 기능을 일원화해 마치 1개 사령부로 통합한 것과 같았던 것이다. 한편 74년 12월에는 미 육군 태평양사령부가 해체되면서 주한미군은 워싱턴 직할이 되었다. 이로써 형식상으로 유엔에 속해 있던 유엔군에 대한 작전명령권은 미 합참으로 이관되었다. 비로소 이제 명실상부한 운용체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동은 미군 철수에 대비해 주한미군 기구를 축소 개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미국은 69년 7월25일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 안보의 아시아 국가 부담'을 강조한 `괌 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계획을 잠정적으로 수립, 실천해왔다. 또한 이런 상황 변동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국제 여론을 감안한 미국의 외교정책적 고려에서 나온 결과였다.

미국은 75년 6월27일 30차 유엔총회를 앞두고 “중국과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의 권능과 책임을 한·미 양국 군에 이양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한·미 양국은 76년 1월1일을 기해 유엔군사령부를 자진 해체하겠다”는 내용의 서방 측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그리고 이같은 제의는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이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 임무를 직접 맡고 있는 주한미군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고 있는 대다수 미군 요원들과의 구별을 분명히 한다는 데 뜻이 있었다. 다시 말해 언젠가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더라도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쌍무협정에 따라 계속 주둔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조처였다.

이렇게 해서 50년 7월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588호 `국제연합군 통합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안' 제5항에 따라 모든 주한미군 시설에 게양되어 오던 유엔기(旗)는 25년 만에 내려졌다.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 진주한 미군은 이를 계기로 명실공히 완전한 주한미군으로 남게 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의 이러한 지위 변경 및 철수 움직임과 맞물려 한미연합사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이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주한미군 감축·재편론과 한·미동맹관계 변혁론은 이러한 대안 마련 장치도 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상황이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다.

2003.02.25 정리:김당오마이뉴스기자 dangki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