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방송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ROTC 출신의 장기 복무 희망자는 많지 않았고 어떤 해는 지원자가 10명 미만인 때도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처우 때문이었다. 노력에 비해 박봉이고 직업군인으로서 비전이 없다는 점이었다. 참고로 내 조카 중에 서울대 상대 출신이 있는데 이 아이가 대학을 졸업, 무역 회사에 취직해 받은 첫 월급이 18년 군 경력의 대령인 내 월급보다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군인은 여대생들의 신랑감 순위에서 하위에 처져 있었다. 미국과는 영 딴판이었다. 미국의 ROTC 출신들은 대학 내에서도 인기가 높고 대학의 전쟁사 교육을 이들이 맡아 인기가 있었다. 전쟁사는 바로 문명사이자 흥미 있는 종교사여서 수강률이 높은 과목 중 하나였다. 직업군인에 대한 처우가 좋고 해외 주둔 혜택이 주어져 공짜로 해외 여행할 수 있는 특전도 주어진다. 단기 복무를 마치면 사회 진출률이 높고 연봉도 일정 부분 가산점이 붙었다. 그래서 미국의 ROTC 장교는 육사생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이와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방송에 나가 ROTC의 장점을 얘기하며 장기 복무를 권유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대안으로 특별 간부 후보생 제도를 입안했다. 하사관 중 지원을 받아 6개월의 단기교육을 시켜 소위로 임관하는 제도다. 의외로 우수한 고교 출신 하사관이 대량 지원, 높은 경쟁률 속에 300명을 선발할 수 있었다.
모 군단이 식목일을 맞아 묘목 식수를 하면서 출신 장교들을 대상으로 업무 수행 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다. 즉, 임관 종류별로 구분해 똑같이 묘목을 나눠 주고 업무 수행과 지휘 방법을 파악한 것이다. 그 결과 가장 잘한 장교가 단기 간부 후보생 출신이고 2위 OCS(일반 간부 후보생), 3위 ROTC, 4위 육사 출신으로 나타났다. 코믹한 현상이지만 그만큼 실병 지휘 기법이 다른 것이다. 전쟁에서 현지 임관 출신 활용도가 높듯이 묘목 식수에서도 단기 후보생 출신은 물불 안 가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악착같이 매달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사 출신과 ROTC 출신은 민주적 과정을 중시하지만 단기 후보생 출신은 군인 세계의 덕목으로 비쳐지는 목표 달성주의가 그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인력활용과장의 과제는 육군 병과(약 20종)의 전 편제를 분석해 계급별·신분별·직능별·주특기별 인력 소요를 결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신규 초임 획득, 상위 계급 진출 숫자, 전역 대상자를 계수로 제시하는 일이었다. 편제상 소요 병력과 임무 기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 하는 능률 평가를 비롯해 인력 활용 감사를 실시하고 병력 증감 조치의 다른 한편으로 예상 병력과 편제상 고유 병력, 각종 사고를 제외한 현재 병력을 적절히 배분하는 등 인간 공학적인 관리 기법을 써야 했다. 그러나 특수한 임무 기능이라는 데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육군의 인력 관리가 모든 군의 소요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제공돼야 했기 때문에 정확하고 현실적인 인력 운용 계획이 수립돼야 했는데 하나가 잘못되면 제 병과의 계급별·직책별 보직 소요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마치 벽돌 한 장 잘못 쌓으면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던 어느 날 일단의 육사8기생 출신 장군들이 인사관리처장실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흥분한 얼굴로 “최갑석 나오라!”고 호통 쳤다. 그들은 바로 5·16 주도 세력이었다.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 장군들이었다. 인사관리처장의 긴급 호출 명령을 받고 처장실로 달려가 보니 4∼5명의 장군이 소파에 둘러앉아 들어서는 나를 노려보며 험악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0.07 |